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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다르고 '어' 다른 말의 무서움

입에서 입으로 전달된 말이 불러온 비꼬움

by 껌딱지

아마 대다수의 직장에는 규정으로 명문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관행'처럼 해오는 업무가 있을 것이다.

현재 내가 다니고 있는 직장 역시도 그 어디에도 명문화된 규정은 없지만, 한 번도 공식적으로 업무분장에 대해서 논의한 적은 없지만, 특정인을 지정하지 않고 전화로 지시받는 업무는 '전화받는 사람'이 그 업무를 처리하게 된다. 물론 여기서 공식적인 서류 작업은 담당자가 업무를 인계받아 진행하게 되지만 단순 업무지시는 비교적 빠르게 정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굳혀진 것 같았다.


나 역시도 그렇게 업무를 배웠고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 다른 직원의 물음에 그동안 해왔던 방식을 설명하자, 온갖 비꼬움이 나에게로 화실이 되어 날아왔다. 상황을 설명하고, 억울함을 토로할 순간도 없이, 비난의 화살은 순식간에 날아왔다.


오늘 A라는 직원이 상사에게 전화로 받은 업무지시가 어렵고 낯설었던 탓인지, 전화로 받은 업무는 어떻게 처리를 하는지 물어봤다. 지금껏 일하면서 처음 들어본 질문이었지만, 그저 내가 일하고 있는 부서의 압묵적인 방식대로 '보통은 전화받는 사람이 처리하는데, 왜요? 어려워요? 같이할까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A직원은 '아니다, 00님도 바쁜데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괜찮아요"라고 했지만 신경 쓰이는 마음에 '아니에요, 이거 같이 찾아봐요, 어렵다면서요, 같이하면 금방 해요"라고 도움의 의사를 내비쳤음에도 끝까지 사양하길래 더 이상 답하지 않고 나는 내가 하던 업무를 계속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아주 큰 목소리로 "전화받은 사람이 한다고? 내가 받았다고 하고 하면 되지" 라며 비꼬듯이 말하는 게 아닌가? 이어폰을 끼고 있음에도 잘 들릴 정도로 큰소리였다.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인지 싶어 이어폰을 빼고 대화소리를 들어보니 아까 그 A직원이 C대리님에게


"이거 너무 어려운데 00님이 전화받은 사람이 해야 한대요. 저는 이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라고 하소연하고 있는 게 아닌가? C대리는 매우 어이없다는 듯이 "내가 할게요! 내가 전화받았다고 하고 하면 되지"라고 똑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것으로 보아 이건 누가 봐도 나 들으라는 식이었다.


"00님이 도와주신다 했는데 제가 혼자 해보려니 안돼서요, C대리님 도와주세요" 도 아니고

다시 나한테 와서 "00님이 도와주시다고 했는데, 제가 혼자 못하겠어서요. 같이해주실래요?" 도 아니고


이건 마른하늘이 날벼락도 아닌 상태에서, 갑자기 '나 못한다고 했는데 쟤가 나보고 하래요"라는 식의 도움요청은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그 자리에게서 갑자기 내가 일어나 "제가 언제 그렇게 이야기했어요?'라고 반박하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해서 다시 이어폰을 꽂고 못 들은 척하며 내 일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자꾸 나를 비꼬는듯한 대화소리가 점점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황은 지났고, 다시 상황을 설명하기엔 이상해서 그대로 있었지만 왜 그렇게 말을 전달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말이 '아' 다르고 '어'다르다고 의도하지 않았든 의도했든 타인을 깎아내릴 수 있는 말은 조심해서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한 사람 말만 듣고 그렇게 큰 목소리로 비꼬듯이 대답한 C대리는 뭘까?


같이 일하기 괜찮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지금 부서로 발령받은 걸 안심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 하루였기에 괜한 부하가 치밀어 짜증이 나고, 화가 난다.


'일어서서 말할껄','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라고 말할껄'


직장생활에서 겪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억울함은 도대체 어떻게 풀어야 할까? 아니 풀수는 있는것일까?


좋은글을 쓰기위해 시작했던 브런치는 언제부턴가 나의 감정을 풀어내는 일기장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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