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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에 1번씩 내용 증명받는 법

정보전달형 카드뉴스 제작하면 날아오는 등기우편물

by 껌딱지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6년이 지날 무렵, 10번 가까이 입사와 퇴사를 반복했지만,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는 직종에 지겨움과 심각한 권태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변하지 않는 일 진행방식, 새로운 사람을 볼 수 없는 직장 환경, 사회트렌드와는 전혀 무관한 나의 업무, 이 3박자는 삶을 무료하게 만들었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머리를 쓰고 사회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운명처럼 찾아온 '청년'센터 구인공고를 보고 재빠르게 이력서를 제출했고, 믿지도 않는 온 세상 신이 나를 돕고 있는 듯 별다른 어려움 없이 최종합격했다. 면접을 너무 평화롭게 통과해서일까?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일들이 나에게 닥쳐왔다.


나는 주 업무 이외에도 자잘한 업무를 병행하고 있었는데, 그중 한 가지가 '카드뉴스'만들기였다. 센터 홍보 이외에도 청년일자리 동향, 사회 주요 트렌드 등을 제작하면서 주 1회~2회 SNS 및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이일에 재미를 느끼며 드디어 머리를 쓸 수 있음에 기뻐했지만, 이 카드뉴스 하나가, 정기적으로 내 심장을 쿵 내려앉게 만들 줄을 상상하지도 못했다.


초반에는 카드뉴스를 SNS에 업로드해도 반응이 거의 없었다. 조회수가 낮아 조용히 지나갔던 콘텐츠들이, 센터가 자리를 잡고 노출이 늘기 시작하자 예상치 못한 우편물이 배송되었는데 바로 '내용증명'이라고 적힌 등기우편물이었다.


"내가, 우리가 법을 어기다니, 저작권을 침해하다니!!!"


배송된 내용증명의 주내용은 "카드뉴스에 사용된 폰트가 000 디자인 업체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유료폰트이며 불법사용에 따른 손해배상 또는 해당 폰트 라이선스를 구매했다는 증빙서류를 제출하라'였다.

말로만 듣던 '저작권' 문제에 내가 당사자가 되다니,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이 덜덜 떨렸었다. 폰트를 선정할 때 무료배포 사이트에서 다운로드하였고 비상업적용도가 가능한 폰트만 사용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불거질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급히 다운로드 사이트를 방문해서 사용가능범위를 확인했고, 허용범위 안에서 사용했다는 점을 확인하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문득 '이건 좀 아닌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료폰트 사이트에서 다운로드를 하였고, 내가 사용한 폰트는 무료 폰트로 크게 홍보가 된 폰트였에 해당카드뉴스에 쓰인 폰트가 '유료폰트'일 리가 없지 않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라이선스 사용범위는 내가 꼼꼼하게 확인하지 못한 탓일 수 있지만, 폰트가 유료일 순 없는데...."


그리고 등기우편물 봉투에 적힌 법무법인과 내가 유료로 사용했다는 폰트명을 인터넷으로 확인하니, 이미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많았다. 누군가는 실제로 금액을 지불했고, 누군가는 대응을 포기했다. 그때부터 나는 저작권의 세부적인 조건들을 하나씩 따져보기 시작했다.


1. 해당폰트의 저작권을 가진 업체

2. 사용가능한 매체 : 인쇄, 웹사이트, 영상, 포장지, 수정 및 배포 범위

3. 추가안내문구 - 정확한 사용범위는 폰트 다운로드 사이트에서 확인해야 하며 서체 제작사의 규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 일을 계기로 '저작권'의 의미와 중요성, 사용에 따른 주의사항 등을 뼛속 깊숙이 숙지하게 되었고 내가 창작물을 만들 때 타인의 창작물을 함부로 침해하는 것은 아닌지, 꼼꼼하게 확인하게 되었다. 두 번 다시는 그런 두근거림과 불안함을 느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드뉴스 제작은 매월 해야 하는 고정적인 업무였기에, 폰트 사용 시 앞서 말한 3가지 중요사항을 점검하며 만들었고 이제는 '문제없겠지'라고 안심하고 있을 무렵, 첫 번째 내용증명을 받은 지 3개월 만에 또다시 '폰트 저작권 위반'으로 내용증명을 받게 되었다. 과장해서 말하면 이후에도 내가 해당 '청년'센터를 잘릴 때까지 3개월에 한 번씩 폰트 저작권 위반 내용증명을 받게 되었지만, 단 한 번도 문제가 생겼던 적은 없었다.


이 경험은 내게 창작물에 있어 저작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실히 깨닫게 해 주었고, 동시에 보호를 넘어선 압박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도 알게 해 주었다. 저작권 보호는 창작자를 위해 꼭 필요한 제도지만, 그 보호가 공포로 다가올 때 오히려 신뢰를 잃을 수 있을 것이다. 확인되지 않는 무분별한 내용증명 남발과 과잉대응은 창작자와 사용자 간의 신뢰를 해치고 상생대산 불신을 조장하게 된다.


이제는 창작자와 사용자 모두가 불안과 공포에 떨지 않는 명확하고 따뜻한 저작권 문화가 자리 잡길 바란다.


인간의 삶이 지루해지지 않으려면 '창작'은 필수이고 '보호'는 책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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