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의 배려는 나에게 독이었다.
남들이 보는 나의 성격은 대체적으로 무난한 편이다.
화를 내지 않고, 늘 웃으며, 이상한 말을 해도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그런 사람.
내가 그럴 수 있는 이유는, 크게 마음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열과 성을 다해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도와줬던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냥 넘기지 않겠지만
사회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기에 신경 쓰지 않고 한 귀로 듣고 흘렸다.
그런데 이번 공무원사회로 오게 되면서, 이런 성격이, 이런 마인드가 독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직장생활 20년 차, 18년 동안은 이렇게 살아도 특별히 피해를 보거나 호구가 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리더십이 있다고, 일을 잘한다고, 상사비위를 잘 맞춘다고 칭찬만 가득가득 받았었다.
경력이 애매해서 연봉협상에서 밀릴 때, 이런 내 성격을 귀하게 여겨준 분을 만나(후에는 원수가 되었지만)
실제 내 경력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여러 조직 속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
18년을 잘한다 잘한다 칭찬만 듣고 살았기에 이 성격이, 이 방법이 맞는지 알았다. 그런데 공무원 사회로 들어오고나서부터는
이 성격은 함부로 해도 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참았었다. 왜? 오래 볼사람들이 아니니까 끽해야 5년 정도니까
그게 독이 되었다는 걸 2025년 12월 31일 오후 4시에 알게 되었다.
우리 부서에는 정말 일 못하기로 유명한 동료 1명과 일은 잘하지만 1년 미만의 동료 그리고 나 이렇게 3명이 있었다.
또 하필이면 일 못하는 동료와 1년 미만의 동료는 사이조차 좋지 않아, 알려주고, 분위기 조절하고, 트러블 만들지 않기 위해서 어려운 거 내가 하고
그렇게 1년을 살았다. 그사이 너의 노고는 인정하지만, 얘가 일을 잘하잖아, 얘가 너보다 연차가 많잖아, 무엇보다 너는 착하잖아 또 이해해 줄 거지?
라고하며 1년의 노력과 성과를 깡그리 무시당한 채 2025년 연말 인사고과 평가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40년을 넘게 지켜오던 연공서열이라는 평가 기준은, 41년째 되던 해에, 내 앞에서 무너졌다.
왜? 일을 못해도 너보다 오래 다녔잖아, 왜? 일도 잘하고 나한테 잘해주잖아.
그런데 너는 걔보다는 연공서열이 낮고, 얘보다는 나한테 잘한 게 없잖아
대체 무슨 기준인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조직생활을 못하는 거라고 생각하기엔 18년간의 나의 직장생활은 어떻게 봐야 할까
그렇게 도망쳐왔던 공무원사회에 내 발로 기어들어온 게 잘못인가? 운이 좋으면 종합평가에서 일부 바뀔 확률도 있다고 하지만
지금 내가 너무 짜증 나는 건, 본인이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평가기준을 바꾸고 나를 버렸다는 거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일 웃긴 건 일 못하는 동료는 재계약을 앞두고 있어서 도와줘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동료와 나는 똑같이 재계약을 앞두고 있고 나는 인사지침에 따라 2년 연속 종합평가가 최하위 일 경우 2026년 말 재계약이 안될 수 있다.
그 동료는 2025년 상반기 처음.. 최하위 평가를 받았었다. 정말 웃기지 않나, 본인 신념도 지켜야 하고, 예뻐하는 친구도 챙겨야 하니 그저 만만한 나를
착한 나를, 호구 같은 나를 그냥 희생양으로 삼은 것 같다. 그냥 이렇게 생각하는 게 내 건강에 이로울 거 같다. 그게 아니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예뻐하는 동료는 또 이해가 된다. 정말 일도 잘하고 개인적인 일도 많이 도와주고 했으니 그 친구가 나보다 앞서는 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모두의 걱정거리였던 동료는 이해하기도 싫고 이해할 수도 없다. 본인의 말대로라면 재계약을 위해서 챙겨줘야 했던 건 나다.
하지만 나를 2순위로 주면 본인이 40년 동안 지켜온 연공서열의 기준이 없어지는 거니 스스로 혼란이 놨을터, 그러니 늘 웃는 나를 버린 거다.
2026년은 이직과 퇴사의 한 해로 삼아야겠다. 나를 이용해 먹는 곳에서 내가 아득바득 다녀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내 성격을 바꾸는 건 어렵지만 내가 일하는 공간을 바꾸는 성격을 바꾸는 것보다는 쉬우니까
이렇게 나를 모르는 곳, 여기저기에 울분을 토해내고 2026년 1월 1일을 마무리해 보려 한다.
혹시나 나처럼 부당하게 성과를 받았다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짜증 나지만 억울하지만 우리 같이 삼켜보자
물론 무작정 삼키면 탈 나니, 적어도 직근감독자랑 이야기는 해보자. 그러고 나면 조금 삼키기 쉬워지지 않을까
그리고 이 나이에, 이경력에 어딜가겠냐 가 아니라 내경력에 내 나이에 어디든 못 가겠나라고 생각하며
현실의 벽 앞에서 조금은, 아주 조금은 건방을 떨어보자. 힘이 안 나겠지만 같이 힘내보자.
착함의 끝이 호구였더라고, 영영 착함의 끝이 호구일지라도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착한 사람을 이용해 먹는
세상이 잘못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매너리즘 빠지지 말고 우리 같이 무조건 힘내보자. 착함은 죄가 아니다.
착함은 말도 안 되는 이 세상에 꼭 필요한 하나의 가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