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 캔디가 되어야만 하는 순간

혼자 알아서 해야 해요.· 이유를 알려주지 않거든요.

by 껌딱지

나에게 주어진 업무는 국책사업(*국가에서 진행하는 사업)에 피해를 보는 주민들을 위한 지원사업을 알아보고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3년 동안 사업기획업무를 주로 담당하긴 했지만 1개 사업을 기준으로 기획을 하는 업무였기에 적응하는 것이 크게 어렵진 않았지만 지금 업무는 8개의 사업 내에, 소분류 51개, 177개 세부사업의 사업계획 작성해야 했다. 더군다나 177개 세부사업과 관련된 타 지역 사례가 있는지 국내에 없다면 외국 사례가 있는지 까지 살펴봐야 하는 말 그대로 방대한 양이였다. 경찰학, 심리학 전공자로서 경제분야, 교육분야, 의료분야 등 생소한 부분까지 다뤄야 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직장생활에서 '못한다'는 절대적으로 있을 수없는 일, 못한다면 할 수 있는 부분만이라도 해서 업무를 수행해야만 했다.


그런데 문제는 소분류 51개가 대다수 중복되는 내용이었고 주제 자체가 중복이 되니 당연히 세부사업까지 중복으로 발생되어 전체적인 흐름이 원활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인재양성, 교육지원사업이라는 소분류 내에 전문인력양성기관 설립이라는 세부사업을 세팅했는데 또 주력사업 육성사업이라는 소분류 내에 인력양성기관 설립이라는 세부사업이 한번 더 세팅이 되어있던 것이었다. 해당 부분에 대해 이유를 알기 위해 센터장님께 물어보았는데 '그거 00 부서 A랑 B가 한 거야, 걔들한테 가서 물어봐'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센터장님이 진행하던 사업인데 전혀 상관없는 부서의 사원들에게 물어보라는 게 이상했지만 일단 이유를 알아야 하니 A와 B에게 메신저로 업무협조 요청을 했고 다소 황당하면서도 이상한 말을 듣게 되었다.


'저희도 몰라요, 묻지 말고 혼자 알아서 해야 해요. 이유를 알려주지 않으시거든요'


무슨 일인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있으니 숨을 한번 깊이 들이마시고 지난 1년 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이게 공적인 기관(정확하게는 지방 출자 출현 기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다소 불편한 감정이 올라왔다.


취업준비생들이 그렇게 기를 쓰고 국가에서,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기관을 가려고 하는 이유는 어떠한 국가적 재난에도 흔들리지 않고 평생 일할 수 있는 직업 안정성도 있지만 공적인 기관이기에 철저하게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일할 수 있고 불합리한 일, 직장 갑질과 관련된 행동은 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동료들은 전혀 보호받지 못했고 감정 쓰레기통으로 지난 1년을 살아가야 했었다.

동료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문득 만화 '들장미 소녀 캔디'의 주제곡이 떠올랐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우는 것조차 이해받을 수 없었고 모든 게 자기 잘못이어야만 했던 지난날, 견디어 낸 것이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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