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나는 '최고의 선택은 없다, 그저 차악을 선택할 뿐이다.'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3년이 지날 무렵 서울에 있는 모 재단에 취업을 한 적이 있었는데 신입사원 연수를 받으러 간 다음날 5명의 신입사원이 전원 채용보류가 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유는 '신입사원 전원이 연수내용을 따라오지 못한다.' 였는데 우리는 업무스킬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있던 상황이 아니라 재단 이사장의 업적과 그것을 설명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기에 채용보류 결정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쫓기든 서울에서 짐을 챙겨 본가로 내려왔다.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올라갔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갑작스레 백수가 되어버렸다. 그나마 내 사정을 들은 이전 직장 팀장님께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도와주셔서 금전적인 부분은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했지만 정신적인 충격은 쉽사리 나아지지 않았다. 분명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모두의 축하를 받으며 떠났는데 나는 다시 돌아와야만 했다.
이 일을 계기로 아무리 신중한 선택이라도 무조건으로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후 결정의 순간이 올 때면 이 일을 떠올리며 더 잘되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어느 것이 덜 최악일까를 생각했고 그것이 현재 나의 좌우명으로 자리 잡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계약직과 무기계약직 그리고 안정성과 흥미 이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차악을 선택했고 그렇게 계약직 회사에 임용 포기 서류를 전송했다. 차악이라 하더라고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남편과 나는 22년에 자녀계획이 있었고 전세계약 연장도 했어야 했기에 육아휴직을 쓸 수 있고 은행 심사에서 안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무기계약직은 사실 좋은 선택 쪽에 가까웠다. 다만 걸리는 게 있었다면 업무가 나의 성향과 너무 달라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가 걱정되었다. 하지만 수많은 직장인들이 하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일이 많고 안 맞는 건 견디는데 사람이 안 맞는 건 못 견딘다.'
일이 조금 성향에 안 맞더라고 함께 일하는 동료와 상사가 좋은 사람이라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가지며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첫 출근 일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 또한 얼마나 부질없는 헛된 희망이었는지는 출근하고 4시간 만에 깨닫게 되었다. 역시 최고의 선택은 없었다. 그저 차악을 선택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