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 면접날의 기억

불쾌한 빨간정장

by 껌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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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취업준비생들이라면 알 것이다. 면접을 준비하면 제일 처음 하는 것이 기업정보 탐색이다. 특히 공공기관, 지방 출자 출현 기관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이기 때문에 경영평가보고서와 해당 기관 관련 뉴스를 꼭 찾아봐야 한다. 그래야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하고 그것이 얼마만큼의 성과를 냈는지를 파악할 수 있어 여러 돌발 질문에도 대응할 수 있다. 무기계약직이기 때문에 면접을 조금 더 디테일하게 준비했고 기관 설립일부터 2021년까지의 모든 기사를 검색하고 관련 이슈를 확인했다. 그리고 면접날이 다가왔다.


그동안 꽤 많은 면접을 보았지만 이곳은 면접이 조금 남달랐다. 면접장에 들어가기 전 어떤 상자에 종이를 뽑으라고 했고 거기에는 영어로 된 문장이 가득했다. 담당자는 '지금 종이를 보지 말고 면접장 안에서 틈이 있을 때 펼쳐봐라'라고 했다. 틈이 있을 때? 난생처음 듣는 안내멘트였다. 정리할 새도 없이 면접장에 들어갔는데 면접관이 무려 8명으로 내가 본 면접 중 역대 최대 인원이었다. 더 당황스러운 것은 8명의 면접관이 8개의 질문을 한꺼번에 한 다음 그것에 대해 답하는 형식의 면접 진행 방식이었는데 8개의 질문을 정리하는 최고위원이 질문 내용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고 우왕좌왕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틈이 있을 때 뽑은 종이를 보라는 인사 담당자와 질문 내용을 정리하지 못하는 면접 최고위원, 33살 내 인생의 다른 의미로 어려운 면접이었다.


그래도 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기관마다 면접을 보는 형식의 차이는 있고 그들도 사람이니 실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있었다. 빨간 정장을 입은 면접관 한 명이 있었는데 면접이 진행되는 20분 동안 다리를 꼰 채 의자에 거의 누워 매너 없는 행동으로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갑과 을을 굳이 나눈다면 분명 그 장소에서 면접관이 '갑'의 위치에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나의 경력과 직업능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이지 '나라는 사람' 평가하는 사람은 아님에도 빨간 정장은 오만한 자세로 지원자들을 내려보며 평가를 하고 있었다. 면접이 다 끝나고 약간 불쾌한 감정이 남아있었는데 예전에 직업상담사로 일하며 만났던 인사담당자의 말이 떠올랐다. 가끔씩 외부면접관을 초빙해서 무례한 콘셉트로 앉아있으라고 부탁을 하고 지원자가 얼마나 마인드 컨트롤을 잘하는지를 지켜본다고 했다. 그때는 그저 웃고 넘겼는데 내가 실제로 마주하니 정말 기분이 나쁘고 불쾌했었다. 면접을 마치고 나오면서 '저런 면접관을 초빙하는 건 회사 이미지에도 별로 좋지 않을 텐데'라며 생각하며 합격하게 된다면 꼭 경영지원팀에 건의해야지라고 다짐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아마 빨간 정장을 내가 외부면접관이라고 확신했던 이유는 몇 년 치 기관 관련 뉴스 기사에서 그 면접관의 얼굴을 보지 못했기 때문인데 지금 그 얼굴 알고 기사를 다시 찾아보면 꽤 많은 기사에서 빨간 정장 면접관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내가 기사 내용에 신경 쓰느라 사진은 꼼꼼히 보지 못한 명백한 나의 실수였다.


최소한 면접 보고 난 후 기사를 다시 찾아봤더라면 내가 과연 여기에 입사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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