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 네가 제일 필요 없는 존재야

너한테 하는 말이 아니야

by 껌딱지

매일 아침 교통사고가 일어나길 기도하며 출근한지도 어느덧 5개월, 시간은 아무 일 없다는 것 마냥 계속 흘러갔고 2021년도 어느덧 중반을 지나고 있었다. 올해 여름은 참 길었던 것 같다. 분명히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매일 아침 눈을 뜨며 금요일이 아닌 것에 혼자 울분을 토하며 꾸역꾸역 출근 준비를 했었다. 그리고 출근 후에는 온갖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센터장에게 폭풍처럼 몰려왔고 난 그 폭풍의 여파를 온몸으로 그저 맞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센터 장말로는 본인이 제일 실력이 좋아 성과가 높지만 윗사람들에게 할 말 다 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가끔씩 윗분들이 기를 잡는다고 이런 식으로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또 나에게 '학사'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미 지칠 때로 지쳐있던 터라 또 시작하는가 보다 하며 매 맞는 강아지처럼 무기력하게 듣고 있는데


' 00아 너한테 하는 말은 아닌데, 네가 이미 뽑혀서 할 수 없지만 지금 이 연구원에서 제일 필요 없는 존재가 무기계약직들과 ㅁㅁ연구직들이야, 지금이야 100% 출자 출현 기관(*국가에서 운영비 전액을 지원하는 기관)이지만 나중에 바뀌면 박사들이 무기계약직 살려두겠니? 나라도 너 제일 먼저 너부터 정리할 거야, 제일 필요 없는 존재가 너네야'


면전에서 아무런 잘못도 없는 사람에게 '네가 제일 필요 없는 존재야'라고 막무가내로 말하는 그녀는 소시오패스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아니면 본인이 과거 이런 비슷한 경험으로 상처를 받았고 그것을 나름 '박사'라는 사회적 지위를 얻고 난 후 남을 깔아뭉개며 본인의 낮아진 자존감을 세우려는 것일까? 센터장의 행동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아니 이해할 수 있는 선을 넘어가고 있었다.


진짜 저런 말들은 직장 갑질이 될 수 없을까? 어디 인권위원회에 신고라도 할 수없을까? 정말 많이 고민하고 생각했지만 원장의 엄청난 신임을 받고 있는 센터장에게 감히 그럴 수 있는 용기는 생기지 않았다. 신고를 한들 센터장과 대면해서 날 쳐다보는 그 눈빛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자신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함께 이 부조리를 신고하고 아니라고 외칠 동료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 연구원에서 그 이상을 바라보아야 하는 사람들이었고 나보다 정신력이 강해서인지 아니면 참는데 이골이 나서인지 움직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직장 내 부조리는 함께 해줄 사람이 존재하지 않으면, 회사 내 시스템이 정확하게 갖춰져 있지 않으면 그 어떤 직장인이라도 쉽게 '신고하겠습니다.'라고 말하기 매우 어렵고 그 과정 또한 험난하기에 용기를 가지고 나설 수 있는 사람은 내 곁에 아무도 없었다.


나조차도 무서워서, 겁이 나서, 지쳐서라는 이유로 이 상황을 묵묵히 견디고만 있었기에 누구도 원망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구인구직 사이트를 열심히 검색하고 이직 준비를 하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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