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인생의 전환점
'여자의 인생에는 다양한 전환기가 있는데 그 중 한가지가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거야, 박사학위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40대 여자의 인생은 남들과는 다르게 살 수 있는데 왜 그걸 하지 않으려고 하는지 알 수 가 없어'
이쯤 되면 '박사학위'는 인생의 치트키(*게임을 유리하게 만드는 일정한 프로그램 또는 문장)를 넘어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는 만능열쇠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하나의 학문을 깊이있게 연구하고 거기에 따른 결과물이자 보상으로써 학위가 가지는 의미는 훌륭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상황과 사람에게 동일한 의미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센터장은
이미 '박사학위'는 무조건 대단하고 훌륭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세상 모든 잣대를 '박사학위' 네 글자에 맞춰서 바로 보고 그 기준이 채워지지 않으면 가치가 없는 것인냥 바라본다.
전문연구원들에게 대학원과 학위의 중요성을 열거하며 '너희가 기회를 만들어라'라고 늘 말하던 센터장은 신기하게도 막상 우리에게 대학원진학에 따른 유연근무제(*대학원 진학 시 주40시간 내에 출퇴근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제도)라는 기회가 왔을 때 누구보다 먼저 그 제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말하며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물론 유연근무제의 대학원이라는 단서조항이 대학원을 준비하지 않는 직원들에게 차별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는 부분은 맞다. 하지만 센터장이 제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부분은 차별성을 우려한 것이 아닌 지극히 개인 업무적인 이유였다.
유연근무제 확대시행 관련 안내가 연구원 내 공유되기 전 센터장, 나, 다른팀 직원 B씨가 함께 저녁식사를 한적이 있다. 그때도 연구원의 바뀌길 희망하는 행정적 부분을 언급하며 '대학원이나 자기계발에 대한 계획이 구체적으로 서면 눈치 보지말고 유연근무제를 누구나 사용 할 수 있게 해달라'라고 노사위원회에 요청을 권유했다. 그러면서 본인은 '너네가 성장하길 바라고 이제 너네도 힘을 가지고 연구원 내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길 바란다.' 라고 우리를 응원했다. 분명히 따뜻한 분위기 속 응원하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실제로 해당 제도가 시행됐을 때 센터장이 처음으로 한 말은 '내가 일하고 있는데 전문연구원이 집에가?' 였다.
어떻게 받아들여야하고 해석해야할지 처음엔 감이 서지 않았다. 장난으로 하는 말인가? 진심인가? 헷갈리는 시간도 잠시 센터장은 정말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전문연구원들의 업무는 박사의 과제를 지원하고 행정적 처리는 하는 일인데 박사의 업무가 끝나지 않았고 당장 시켜야 할 일이 있는데 전문연구원이 퇴근하는 것은 말이 안되는다는 것이다. 센터장은 모르고 있었다. 이러한 말을 입 밖에 꺼내는 순간 얼마나 본인이 무능력한지 광고하는 것 밖에 안되는 사실을, 또한 문제를 인식했다면 해당문제를 전문연구원들에게 말할 것이 아니라 정식으로 연구원 측에 이의 제기를 하는게 맞았다. 눈치보지 말고 힘을 가져라 말하던 센터장은 막상 전문연구원의 편의가 개선되려는 그 순간 전문연구원들을 다시 막아서고 있었다.
이쯤되면 센터장이 말하는 연구원의 모든 부조리함은, 사내정치는 모두 센터장 본인만 느끼는 불편함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불편러(*매사 예민하고 별것도 아닌 일에도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해서 논쟁을 부추기는 유난스러운 사람)가 되어 연구원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 모든 것들은 이상하고 불합리 한것이며 본인의 부정적인 기류를 부하직원에게 강제로 주입시킴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있는것만 같았다. 센터장 스스로는 남에게 그래도 되는 사람이라 착각하며 나는 조직에서 일을 가장 잘하는
'박사'이기에 정당하다는 듯 행동하고 있었다.
조직에서 가장 피해야 할 사람을 나는 가장 가까운 직속상사로 두고 있었고 괜찮아지기위해 했던 나의 모든 노력은 숲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의 내면에 사라지고 있던 나약함이 다시 천천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