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의 주 업무는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시정정책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일이었다. 머리를 많이 쓰는 곳이라 그런지 처음 연구원에 입사했을 때 가장 적응 안 되었던 것 중 하나가 사무실에서 진성(*소리 비중이 크고 선명한 소리)으로 대화를 할 수 없고 무조건 속닥속닥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속닥속닥 대화조차 길게 할 수 없고 짧고 굵게 끝내야 했다. 한마디로 사무실 안에서는 박사급들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대화가 불가능한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하라고 누가 강요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한다. 다만 진성으로 업무적인 대화를 조금만 길게 하고 있어도 상사들은 사내 메신저로 쪽지를 보내 저번에 시킨 일을 다했냐고 물었고 이 부분이 반복되자 자연스레 이런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라고 했다. 속닥속닥 대화 이외에도 한 가지 더 적응 안 되는 일이 있었는데 인사를 하면 인사를 받아주는 사람이 있고 안 받아 주는 사람이 있었다.
심지어 입사 첫날부터 그랬다. 한껏 긴장한 채로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분들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눈길 한번 안 주고 지나가는 분들이 꽤 있었다. 나도 모르게 실수한 것이 있나? 싶을 정도로 차갑게 지나가서 다음날 기존에 일했던 동료에게 물어보니 정말 간단명료하게 설명해 주었다.
'박사님들끼리 사이가 안 좋으면 그 박사 밑에 있는 직원도 곱게 안 보이는 거죠'
응? 나 어제 입사했는데? 더군다나 전문연구원은 정기적으로 로테이션(*사람을 일정한 순서에 따라 교대하는 일)되는 직급이었기 때문에 언젠가 한 번은 같이 호흡을 맞출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막 입사한 직원에게 색안경을 끼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 아닌가? 이상하고 이상한 별세계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첫날의 아리 송인 이 느낌은 '학사'공격이 더해져 연구원에 대한 이미지를 점점 부정적으로 만들며 내 정신력을 무너트리고 있었고 어느 날 갑자기 들어온 가시 돋친 말 한마디로 나는 더 이상 지탱할 힘을 잃고 말았다.
정말 어느 날 갑자기였다.
아침에 출근해서 내 할 일을 하고 점심도 맛있게 먹고 산책도 열심히 하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며 퇴근을 기다리는데 센터장이 웃으며 내 자리로 걸어왔다. 퇴근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기도 해서 같이 수다나 나눌 겸 일어섰는데 '내가 널 왜 당겨왔는지 아니?'라고 물어봤다. 면접점수가 얼마고 몇 등으로 합격했는지 공개된 것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저 눈만 꿈벅이며 센터장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데
' 면접을 봤는데 네가 조직 내 협업을 깰 거 같았어 그리고 박사들한테도 그럴 거 같았고
말하는 게 딱 그렇더라고 그래서 내가 너 기 잡으려고 내 쪽으로 당겨달라고 했어.'
라고 말하고는 그렇게 센터장은 퇴근해 버렸다. 말을 조금 길게 했을 뿐 한 마디로 표현하면 내 첫인상이 매우 건방지며 좋아 보이지 않았다는 것 아닌가? 난 면접 때부터 입사한 지 반년이 지나가는 지금까지 이해할 수 없는 암묵적인 규칙도 불만 불평하지 않고 다 지켰고 센터장이 본인 잘못을 내 탓할 때에도 내가 먼저 죄송하다 말했었다. 그리고 혹시나 오해를 살까 근무시간에 화장실을 제외하고는 사무실 밖을 나간 적이 거의 없었다. 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조심스러움과 수동적인 자세로 면접 순간부터 지금까지 일했다.
그런데 대체 어떤 이유로, 어떠한 근거로 나에게 저렇게 말하는 것일까? 이유라도 설명해 주며 내 행동에 대한 여러 가지 피드백을 준 것이라면 반성하고 이해하려 노력했을 텐데, 이건 막무가내였다.
센터장이 무심히 가버린 이 날, 살면서 처음으로 말이 정말 칼이 될 수 있구나를 처절하게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