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 퇴사를 전하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거짓말 아닌 거짓말

by 껌딱지


퇴사를 결정하고 실행하는데 까지 단 이틀이면 충분했다. 사람이 아프면 병원에가서 치료를 받아야하는 것이고 의사에 진단에 따라 쉬어야 하면 쉬어야 하는게 맞기에 더 생각하고 깊게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공적기관의 무기계약직 자리를 포기한다는 것은 많이 아쉬움이 남을 수 있다. 내가 큰 잘못을 하지 않는한, 갑자기 기관의 예산이 줄지 않는 한 해고될 위험이 적었고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을 눈치는 보더라도 쓸 수 있는 시스템이 충분히 갖춰져 있었기에 33살의 자녀출산계획이 있는 여자가 다니기에는 사실상 좋은 직장에 속했다. 그렇기에 동료와 지인들에게 회사를 그만둔다고 말했을 때 하나같이 다시 생각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내가 나는 내가 너무 소중했다.


아무리 돈이 중요한 세상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짜증받이(*타인의 짜증풀이 대상)가 되면서 까지 돈을 벌고 싶지 않았고 나의 우울감을 남편에게 전달하며 남편의 삶에도 영향을 주는것이 싫었다. 복잡하고 힘든세상 웃으며 살기에도 벅찬데 어떻게 매일을 우울해하고 슬퍼하며 지낼 수 있을까? 여기서 멈추는 것이 맞았다.

그러면서도 퇴사를 어떻게 전해야할지 많은 고민이 되었다. 퇴사만 하면 안 볼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그동안 받았던 모든 억울함을 다 이야기하고 싶다가도 센터장의 날카로운 눈을 마주보고 1분1초도 견딜 자신이 없었다. 하물며 센터장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연구원 내에 퍼질 여파과 관심에 대해서도 감당할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현재 나는 상대를 마주하는 것보다 피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컷기에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만들어 내야만 했다.


물론 사람에 따라 이야기는 하는것이 무엇이 어렵냐고 할 수 있지만 마음이 아파보았던 사람, 혹은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없는 상사를 만나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도 있을 것이다. 마음이 아프기 시작하면 세상에 모든 용기를 잃게 되고 내 머릿속 공포의 공간에서 헤어나올 수 가 없어 나의 이야기를 상대에게 전달하기 쉽지 않다. 그리고 상식선에 이해할 수 없는 상사와 함께 일한다는 것은 나조차도 상식이 없어지는 느낌이 들면서 마음 깊은 곳 부터 분노와 화가 차오른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술이든, 음식이든, 운동이든 육체에 고통을 가하는데 결국 스스로를 서서히 망가트리는 시발점이 된다.


나는 그렇게 되지 않고자 거짓말 아닌 거짓말로 퇴사를 전했고 아무것도 모르는 센터장은 세상 좋은 사람인냥 병가 휴직을 권유했지만 그 또한 얼마나 겉과 속이 다른말인 것을 알기에 거절했다. 아마 이런일들을 겪지 않았다면 저 말 또한 따뜻한 위로로 생각하며 진심으로 감사인사를 전했을 것이다. 하지만 불과 몇달 전 친구 박사 이야기를 하며 센터장이 말했다.


'내 친구 박사 밑에 전문연구원이 우울증으로 휴직을 신청했는데 내 친구박사만 불쌍하게 됐지, 책임감없는 전문연구원때문에 일 다 뒤집어쓰고... '


라고 말하며 한번도 본적없는 나와 같이 마음이 아픈 전문연구원을 무책임한 사람으로 둔갑시켜버렸다.


나는 그렇게 2021년 10월 연구원에 퇴사를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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