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인지 다행인지 알 수없지만 2018년부터 지금까지 박사님, 교수님과 함께 일하는 기회가 많았다.
시와 도정책을 연구하는 연구원에서 2년 9개월을, 그리고 현재 모 대학교에서 계약직으로 5개월째 근무 중이다. 연구원과 대학교이기 때문에 기본학력이 석사 이상이거나 특정분야 기능장(기술사) 이상이었고 한 팀의 팀장 또는 센터장이 되려면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이어야 하기에 내가 속한 팀의 장은 모두 박사님이거나 박사학위를 취득한 교수님이었다. 한 분야의 학문적으로 최고의 정점을 찍으신 분들이기에 자부심도 있으셨고 또 그만큼 지식 또한 풍부해 전문성이 높은 서류작성이나 회의를 진행할 때는 매우 프로페셔널하셨다.
그런 프로페셔널함으로 각자가 가지고 있는 뚝심도 있었고 그것이 매 순간 정답이거나 옳지는 않았지만 뚝심을 밀고 나감으로써 긍정적인 결과를 가지고 오는 경우도 많았기에 일을 하는 초반에는 존경심이 샘솟기도 했다. 나 또한 석사를 준비하고 있는 과정에서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저 정도 수준은 기본이구나를 깨달으며 직업적으로 어떤 사람이 될지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박사님 또는 교수님을 따르며 좋은 모습은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너무 많은 관심을 가진 탓일까? 존경과 배움을 위해 깊게 관찰한 그분들의 모습에서 점점 실망하는 일이 많아졌다. 처음 실망하게 된 계기는박사님들의 뚝심이 고집와 아집으로 변모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주로 계약직으로 근무하며 고용노동부, 행정안전부와 같은 중앙부처 정부지원사업을 많이 담당했다. 각 부처마다 추구하는 사업의 목표, 진행방향, 감사(*연 1~2회 담당공무원 해당 사업 중간점검 실시) 포인트가 다르며 대민이 중점사업될 경우에는 반드시 수혜 대상층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사업의 진행방향을 결정해야 했다. 대민사업을 실시할 때 나의 상사는 수요조사를 실시 후 진행하는 세부사업계획을 인정하지 않았다. 늘 말의 서두에는 '내 생각에는 말이야'라는 말이 붙으며 본인의 학문적 견해와 삶을 기준으로 사업의 방향을 바꾸길 원했고 꼭 끝을 보고 중간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와야만 원초의 계획대로 사업방향을 바꾸어 진행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될 경우 가장 피해를 보는 대상은 세금을 낸 국민과 수혜 대상층 국민들이지만 당장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피해가 아니기에 그에 대한 리스크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두 번째로 실망하게 된 일은 '박사', '석사' 외에는 민간전문가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학문적으로 해당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박사와 석사 이외에도 민간기록전문가, 시민기자단 등 한 분야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오래도록 활동하여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은 전문성은 '박사와 석사'가 아니기에 가치가 없다고 여기셨다. 한 번은 민간전문가들과 함께 세미나를 개최할 일이 있었는데 늘 세미나 개최 때에는 특정 브랜드의 고가의 커피를 세팅하라고 하던 팀장님이 '그런 사람들에게 무슨'이라며 2,000원 미만의 값이 저렴한 커피를 세팅할 것을 주문했다. 뿐 만 아니라 회의 수당을 지급할 때에도 "박사도 석사도 아닌데 이건 아니지"라며 내부의 선례에 맞춰 지급하는 수당의 범위도 변경할 것을 명했다. 그저 석박사 학위가 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세 번째는 본인의 경험이 사회생활의 절대적 기준이었다. 물론 사람마다 사회생활을 하며 특정 경험을 기준으로 가질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기준은 내가 속한 조직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경이 가능해야 하며 그 기준을 잣대로 내가 속하게 될 모든 조직을 평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본 모든 박사님과 교수님은 본인의 경험이 가장 최우선이며 그 경험에서 겪어보지 못한 모든 상황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회의를 진행할 때에도, 거래처와 업무협의를 할 때에도 '내 생각에는 말이야', '내가 볼 때는 말이야'를 서두에 붙이며 상대를 폄하하고 깍아내렸다. 또한 모든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으며 본인의 주장만을 이야기하다 보니 회의는 도돌이표가 되거나 감정이 상하는 경우가 많았고 결국 이 사업의 담당자인 내가 각자 찾아다니며 업무를 조율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위 세 가지의 상황의 모든 문제는 학문의 정점을 본인의 가치와 동일시하는 점이었다.
학문의 정점을 찍었다 하더라고 학문이라는 것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새로운 것이 발견되기도 하고 기존의 학문이 변하기도 하지만 그것에 대한 겸손이나 배움의 자세 없이 '나는 학문의 정점을 찍었기에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정점도 나야' 행동과 모습은 소름 끼칠 정도로 내가 만난 모든 박사님과 교수님이 동일했다.
최소한의 직업가치관도 없이, 직업윤리도 없이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자도, 시정과 도정 정책을 연구하는 박사도 그릇된 편견 속에 사회적 선구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물론 내가 만난 사람들이 이 세상의 박사학위를 가진 자들을 대표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대중매체 속에 등장하는 훌륭한 박사님, 교수님들도 많으며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본인의 가치를 다하시는 분들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그러한 분들께는 이 글이 불편할 것이며 이에 대해선 깊은 사과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안타깝게도 아직 그러한 박사님들을 만나지 못했고 결국 나는 나의 경험에 비추어 그릇된 편견을 가지게 되었다. 현재 석사를 준비는 과정에서 '저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라는 기준점이 생겨버렸으니 말이다. 편견이라는 것은 이토록 정말 무서운 것이다. 내가 만난 박사님들이 가진 편견 때문에 나 또한 박사라는 집단에 대한 편견이 생겼으니 말이다. 내가 만난 그분들은 자신들이 가진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까?
모 방송인이 그랬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평생 책을 한 권만 읽은 사람이라고
그 책 한 권에 있는 의미와 깨달음이 세상의 모든 것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은 딱 그 한 가지로만 모든 판단을 내리기 때문이라고. 내가 가진 경험은 그저 온 우주의 작은 티끌 조차도 되지 않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믿는 순간 아무리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도 그저 편견에 갇힌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것을 부디 알게 되는 순간이 잘못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분들에게 오기를 소원해본다. 나 또한 내가 가진 이 편견을 부술 수 있는 내 마음가짐의 변화가 오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