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교는 엄마의 의무일까
임신 사실을 주위에 알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나에게 물었다.
'태교 하세요?, 태교를 해야 아기 정서랑 두뇌발달에 좋데요.'
'아무리 바빠도 태교는 하는 것이 좋데요, 아이를 위해서'
흔히 태교는 2개월 차부터 시작하는데, 이때는 태아가 엄마의 소리를 듣지 못하기 때문에
엄마의 감정이나 스트레스를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그것이 배 속의 태아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또 청각이 생기는 임신 4개월 차부터는 클래식음악, 태교동화, 태담 등을 통해 태아의 청각을 자극하고 , 손가락을 많이 움직일 수 있는 모빌 만들기, 아기 옷 만들기 등을 시작해 두뇌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 칠 수 있는 태교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배 속에 있는 아기에게 뭘 그렇게 신경 써야 하나 싶지만, 엄마의 모든 것이 배 속 태아에게 영향을 준다고 하니 가끔씩이라도 태교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너무 길었던 입덧과 쏟아지는 회사업무 속에서 태교는 사실상 '해보려' 노력만 했을 뿐 실제로 시행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이런 사실을 모른 채 나에게 안부를 전하는 모든 사람들은 꼭 전화 말미에 '태교는 하고 있지?'라고 물었다.
'하고 있지 않다.'라고 하면 하나 같이 '아무리 바빠도 해라', '태아 발달에 매우 중요하다.'를 강조하며 태교를 하고 있지 않는 나의 행동을 '잘못된 행동'이라고 말했다.
너도 나도 한 마디씩 얹는 그 말이, 나의 스트레스를 쌓아 올리고 나중에는 스스로 죄책감까지 생기게 만들었다. 나는 정말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며 생기는 모든 문제의 원인이 '태교'이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으로 평소에 하지 않던 바느질 세트를 주문했고, 듣기만 하면 자는 클래식 음악을 출퇴근길에 듣게 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나와 맞지 않음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느질을 시작한 지 2일째 되던 날, 손목, 눈, 허리, 어깨, 목 안 아픈 신체부위가 없었고 실을 풀었다 조았다를 수십 번 진행하며 한숨만 늘어갔다. ' 왜 이렇게 손재주가 없을까'라는 생각에 한 없이 우울해졌고 오히려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 찼다. 뿐만 아니라 클래식을 들었을 때는 출근길은 괜찮은데 하루의 피로가 누적되어 있는 퇴근길에는 수면을 유발해서 사고가 날 뻔한 적이 2번이나 있었다.
나는 이것이 진짜 태교가 맞나? 태아에게 편안함을 주고 두뇌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게 맞는지 의문스러웠다. 나는 이렇게 짜증이 나고 스트레스받고 있는데 이것이 태아의 정서적 안정과 두뇌발전에 도움이 될지는 바보가 아닌 이상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나는 책을 읽는 것보다 회사에서 맡은 바 일이 마무리되었을 때, 눈에 띄는 성과가 있었을 때가 너무 좋았다. 그때는 몸속 저 깊은 곳에서 뿌듯함과 즐거움이 몰려오면서 하루가 재미있었다. 이런 긍정적인 감정을 태아에게 전달하는 것이 진정한 태교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몰려왔다.
산부인과 정기검진 당시 내가 느낀 감정과 생각들을 의사 선생님께 말하며 하소연을 했었다.
나의 담당 의사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며 바느질과 같은 소근육이 태아의 두뇌발전에 좋은 영향을 주는 것도
맞고 음악과목소리를 이용해 청각을 자극시켜 줘야 하는 것도 맞다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들이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면 그것은 지금 당장 멈춰야 하는 것도 맞다고 했다. 왜냐하면 엄마의 부정적 감정이 태아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태아가 불안한 감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태교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아니기때문에 엄마가 기쁘고 편안한 정서적 상태를 유지하고 그것이 태아에 전달된다면 태교는 저절로 되고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최대한 덜 받거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태교를 가지기를 권유했다. 클래식음악, 소근육 자극 태교를 하지 않아도 엄마가 정서적 안정을 취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회사 업무라 할지라도 상관없으니 있는 그대로 즐길 것을 당부했다.
결국 태교는 바느질하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태담을 하는 것도 다 맞지만 엄마가 즐겁고 편안함을 느끼는 모든 행동이 태교였다.
그 뒤에는 구매했던 바느질 재료를 다 버리고, 더 이상 클래식도 듣지 않았다. 대신 내가 재미있어하는 글쓰기(일기 쓰기)를 하고,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노래를 들으며 나의 행복한 감정을 배 속 태아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어느 정도 태동이 강해지고 나서는 내가 행복을 이야기할 때 가끔씩은 발로 배를 빵빵 쳐주며 공감표시를 보내기도 했다.
결국 태교라는 것은 엄마가 의무감을 가지고, 타인에 말에 휩쓸려 억지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즐거움을 느끼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나의 성향에 알맞은 일을 통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지게 되는 것이 태교인 것 같다.
이제부터는 청각자극과 두뇌발전에 좋은 태교들을 하지 않더라도, 태교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의 말은 듣지 말고, 나의 기분과 감정에 집중해 좋은 영향을 태아에게 줄 수 있는 일을 찾아 즐길 수 있도록 해야겠다.
태교는 엄마의 몫이며 엄마의 선택이다. 그러니 누구도 강요하지 말고 가르치려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중에 조금만 더 용기가 생긴다면 태교의 의무감을 강조하는 사람들에게 꼭 말하고 싶다.
'제가 알아서 잘할게요, 그러니 신경 쓰지 말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