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는 잘 먹어야 하지만 살은 찌면 안 된다.
길고 길었던 입덧의 시기를 지나 드디어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시기가 왔다.
어떤 음식냄새를 맡아도 다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았고
속이 울렁 거리지 않는다는 그 기쁨에 도취해 있었다.
임신성당뇨가 있긴 하지만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하면
괜찮을 것이라는 주치의 말에 마음의 부담감도 덜했다.
28주 동안 10kg 가까이 빠지면서
부모님은 물론 회사동료들까지 걱정했었다.
친정부모님과 시댁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먹여보려
입덧에 좋다는 음식을 종류별로 해주셨고
회사동료들에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아 점심을 같이 해주었다.
이제는 과하지만 않으면 무엇이든 먹을 수 있으니
그동안 못 먹은 것 포함해서 정말 열심히, 행복하게 먹었다.
김치찌개, 피자, 치킨, 연어회, 초밥 등등
평소 내가 좋아하던 음식들을 잘 먹고 잘 소화시키니
걱정하던 가족, 지인, 친구들도 한시름 놓았다며 좋아했었다.
2주 정도를 삼시세끼 꼬박꼬박 잘 챙겨 먹고 운동도 열심히 했지만
하잘 챙겨 먹는 만큼 빠졌던 살이 금방 불어 올랐다.
사실 못 먹어서 빠진 살이니 먹으면 찌는 것이 당연했다.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주치의는
임신초기 몸무게, 입덧 중 몸무게, 현재 몸무게를 체크한 후
별 문제없다며 잘 먹고, 매일 1시간씩 운동하고,
출산 징후 때까지 컨디션 유지에 신경 쓸 것을 당부했다.
그런데, 10kg가 빠졌을 때 걱정하던 모든 사람들이
다시 살이 찌고 있는 나를 보며 말했다.
'임산부도 관리해야지, 미련하게 살찌지 말아'
'10kg 빠졌으면 5kg 정도만 찌고 유지해야지'
'살이 점점 다시 찌네? 몸 안 무거워?'
임산부는 무조건 잘 먹어야 된다고 말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살이 찌면 안 된다고 아우성이었다.
잘 먹어야 한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살찌지 말라고?
잘 먹는데 어떻게 살이 안 찔 수가 있지?
임산부는 잘 먹어야 하지만, 살이 찌면 안 되고
살이 찌면 다이어트도 해야 하고
틈틈이 운동도 하며 몸무게를 유지 해야 한다고 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걱정돼서 하는 말들이 오히려 기분 나쁜이유는 무엇일까
살이 찌는 원인은 다양하다.
입덧의 종류 중 하나인 먹 덧 때문일 수도 있고
혈액순환의 장애로 인한 붓기 일 수도 있다.
먹지 못해 빠졌으니 먹기 시작하면 살이 찌는 것 또한 당연하다.
사실 '임신' 중 일어나는 내 몸의 변화는
내가 100% 컨트롤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살이 찌는 임산부에게
'미련하게 먹어서'라는 말은 너무 공격적인 말인 것 같다.
설령 특별한 원인 없이 단순히 먹어서 살이 찐다고 한들
아기와 엄마 모두에게 문제없다면 괜찮지 않을까
요즘엔 예쁘고 날씬한 임산부들이 SNS상에 넘쳐나는 것 같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불가항력이 있으니 말이다.
생명을 잉태한다는 것은
모든 이들의 축복과 관심을 받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다.
반대로 그만큼 모든 이들의 걱정 어린 말을 들어야 하는 순간이다.
그런데 가끔은
그 걱정 어린 말들이 조금은 버겁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