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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경단 Oct 12. 2022

장롱면허, 언제 탈출하실 거예요?

누구에게 묻는 질문이냐고? 흠

운전면허를 갱신하라고 문자가 왔다.

어느새 면허증을 갱신할 때가 되었구나.

새삼 세월을 실감하며 오랜만에 지갑에서 면허증을 꺼내보았다.

처음 면허를 땄을 때에만 해도 2022년은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은 미래의 숫자였는데.

단 한 번도 제 역할을 해보지 못한 내 면허증이 이대로 갱신 대상이 되다니.

왠지 아쉽고 면허증에게 미안하다.


나는 장롱면허 소지자이다.

내 운전면허증은 은행이나 동사무소에서 신분증의 역할 그 이상을 해본 적이 없다.

(아마 나 같은 사람들 많을걸?)

더 충격적인 것은 이젠 운전에 있어서 고수까진 아니어도 중수쯤 되는 남편의 면허증은 

아직 갱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편은 5년 전, 우리가 연애하던 시절이자 결혼하기 직전에 운전을 배웠다.

남편 역시 장롱면허 소지자였지만(당연히 차도 없었음)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질 때쯤 

큰 결심을 하고 벌벌 떨며 운전을 시작했다.

아무래도 결혼을 하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면 운전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남편의 책임감에 박수를!)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차로 달리며 바라본 와이키키 석양의 황홀함이나

한국과는 달리 넓디넓은 도로와 마우이 섬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려면

차가 필수라는 이야기를 귀띔해준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처음 두 달간은 매주 2회씩 수강료를 내고 운전 연수를 받았고, 

그다음부턴 시아버지의 잔소리를 들으며 연습을 했다.

(물론 시아버지 차로. 시아버지의 차에는 남편이 남긴 상처가 아직도 남아있다. 허허)

그 결과, 지금은 꽤나 능숙하게 운전을 한다.

아직 좁은 골목이나 처음 가는 동네에선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으며

'대중교통 타고 올걸!'이라고 외쳐 조수석에 앉은 나를 괜히 민망하게 만들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큰 발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내가 민망한 이유는,  내가 운전을 능숙하게 할 줄 알면 대신할텐데 싶은 생각이 들어서이다.

남편이 힘들고 스트레스받아하는 상황에 옆에 앉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은 

사람을 무기력하고 미안하게 만든다.

더군다나 그것이 내가 '노력을 하면' 할 수 있는 분야인 운전이라면. (할 수 있는 것, 맞겠지?)


사실 3년 전쯤, 운전 연수를 받기 직전까지 갔었다. 

그런데 갑자기 코로나가 터지며 사망자가 나오기 시작하고,

감염자는 경로를 추적당하는 무시무시한 상황이 생기는 바람에 

혹여나 자동차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될까 봐 연수를 미루고, 미뤘다.

그때만 해도 코로나가 지금과는 달리 어마 무시한 질병이었으니.

그러다가  임신이 되어 연수는 기억 속에서 잊혀졌었다.

아무래도 임신 기간에 스트레스는 금물이니까.


임신기간 동안 같이 근무하던 출산과 육아를 경험한 엄마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바로 이거다.


"혹시 운전하니?"


의외라고? 진짜다.

엄마들의 말에 의하면 운전은 필수로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갑자기 아기가 아플 때 택시가 안 잡힐 수도 있고, 구급차만 이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기 데리고 문화센터라도 가려면 아기 짐과 아기를 들쳐 매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긴 힘드니 차로 가야 하는데

보통 문화센터 프로그램은 주중 오전이나 오후 2~3시쯤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하루 종일 찡찡대는 아기와 집 안에만 있으면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데

이때, 아기를 카시트에 앉히고 차를 끌고 나와 스타벅스 드라이브 스루라도 해서 커피를 픽업해 오면

그게 그렇게 기분전환이 된다고 했다.

아기도 바람을 한번 쐬고 오면 잠도 잘 자고 덜 칭얼댄다고. 


오호라.

나도 드디어 장롱면허를 탈출할 때가 온 것 같다.


남편에게 아기가 좀 크면 운전연수를 받을 거라고 말했더니 약간 눈동자가 흔들리면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내가 걱정되는 건지,

차가 걱정되는 건지,

혹시나 내가 슈퍼카를 긁어 보험료가 대폭 인상될 까 봐 걱정되는 건지, (아무래도 이거인 듯)

셋 다 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남편은 속 시원하게 '그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사실 나도 아직 두렵긴 하다.

한번 발을 내딛으면 계속할 수 있게 된다고들 하던데,

그 처음 시작이 어려운 것 같다.


그렇지만 육아휴직 기간 동안 장롱면허 탈출이라는 목표가 생겼으니

꼭 성공하고 싶다.


뒤에 아기 태우고 커피 한잔 픽업해서 문화센터 갈 그날을 위해!

그리고 언젠가 남편이 힘들어할 때 내가 교대로 운전을 해줄 그날을 향해!


이 글을 읽으신 장롱면허 소지자이신 독자분께 여쭙니다.

장롱면허 언제 탈출하실 거예요?

우리, 함께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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