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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경단 Oct 10. 2022

천사를 만나본 적이 있나요?

그렇다고 안 힘든 건 아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저에게 천사가 찾아왔어요."

 

오글거린다.

육아 전문 맘카페나 인스타에서 자신의 임신소식을 '천사가 찾아왔다'라고 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진부하고 또 진부한 손과 발이 오그라드는 표현이다.

아니 대체 왜 다들 저렇게 표현하는 거야? (천사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고? 천사를 만나본 적도 없으면서!)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임신했어요'라고 하면 안 되나?

'소중한 생명이 찾아왔어요' 정도도 괜찮은데.


게다가 계획임신을 고수했던 나로서는 '어느 날 갑자기'라는 표현도 거슬렸다.

(이땐 몰랐지. 임신은 신의 영역이라 예상치 못한 날 찾아온다는 걸.)


어쨌거나 나는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힘겨운 임신기간을 마치고 출산을 했다.

그리고 천사를 보았다 - 다행히 출산하면서 죽을 뻔해서 천사를 본 것은 아니다.


천사를 만나본 적이 있는지 아닌지는 상관없다.

아마 어딘가에 천사가 살고 있다면 분명 이런 모습일 것이다.

(내가 이런 오그라드는 말을 하게 될 줄이야!)


아기가 쌔근쌔근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내 속으로 낳은 아기가 맞나 싶다.

어떻게 이런 뽀얀 천사 같은 아기가 있지?

이렇게 세상 근심 하나 없는 사랑스러운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다니.


가끔 자고 있는 아기를 보고 있을 때면 눈물이 난다.

새하얀 도화지 같은 아기가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싶어 괜히 짠한데,

내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새삼 하게 된다.


그렇다고 육아가 즐겁고 아름답냐.

그건 천사와는 별개의 문제다.


천사가 배고프다고 울면 일단 먼저 맘마를 주고, 트림도 시켜드려야 한다.

혹시나 분유 타는 물이 뜨거워서 타이밍이 안 맞으면 집안이 떠나가라 우렁차게 울어대는데

천사가 악마의 소리를 낼 수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낮에는 그나마 괜찮은데 밤이나 새벽에는 층간소음 때문에 신경이 곤두선다.


건초염이 와서 양쪽 손목이 끊어질 것 같아도 천사가 응아를 하면

하루에도 몇 번씩 번쩍 안아 화장실로 데려간다.

점점 무거워지는 천사를 혹여나 떨어뜨릴까 온 몸에 긴장을 한 채 안고 씻긴 후,

보송보송한 새 기저귀를 착착 채워주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무릎과 허리가 나갈 것 같다.


육아 극 초보맘이라 걱정도 많고 하루 종일 검색하는 능력만 키우는 것 같기도 하다.


"요즘 날씨에 아기 옷 뭐 입히나요?"

"아기똥 색이 녹색이에요. 정상인가요?"

"아기 유산균 추천해주세요."

"아기 몸 두드러기, 병원 가야 하나요?"

"언제 젖병 단계 높이셨나요? 아기가 먹을 때 버거워하는 것 같아요."


끝이 없다.

이러다 보면 아침은 건너뛰고 나의 첫 끼이자 점심은 늘 오후 2시가 넘어서 먹는 냉동 볶음밥이다.

나를 위한 요리를 할 힘도, 시간도 없다.


이게 매일 반복되다 보니 지치고, 세상과 단절되는 느낌이 들어 우울하지만

맘마를 다 먹고 난 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주는 아기를 보면 신기하게도 마음의 응어리가 풀린다.

크게 노력한 것도 없는데, 맘마 주고 안아준 것뿐인데  이렇게 좋아하며 웃어주다니.

나도 따라서 실실 웃게 되는 마법에 걸린다.


"엄마가 더 잘 해줄게."

이 말이 절로 나온다.

(아직도 내가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이 어색하지만..)


요즘은 '이야! 아우!' 하는 옹알이를 시작했는데,

언제 말을 시작할지 궁금하면서도 조금씩 세상에 적응해 나가는구나 싶어 기특하다.


이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를 두고 어떻게 복직을 하지?

내가 과연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발걸음도 가볍게 회사로 나갈 수 있을까?


물론 복직할 때쯤에는 아기가 지금보단 어느 정도 커서 내 마음이 '덜 짠'하겠지만

처음 일주일간은 아기 떼어놓고 일터로 나가는 엄마들이 전부 울면서 출근한다던데

나도 울보 워킹맘 예약인 것 같다.


천사가 맘마 달라고 불러서 여기서 이만.



P.S.  브런치는 열심히 회사를 다니다 갑자기 육아만 하게 된 나에게 생긴 작은 숨통이다. 

        글로써 내 생각을 정리하고, 또 좋은 글들을 읽어보며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일주일 내내 일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주말엔 아기를 봐주며 두어 시간씩 자유시간을 주는 남편,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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