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찹쌀경단 Nov 03. 2022

핫딜의 노예

일종의 반성문입니다...

눈이 빠질 것 같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핫딜로 올라온 이유식 식판이 품절되기 전에 얼른 주문해야 했으므로.


내가 핫딜의 세계를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출산을 준비하면서 맘 카페를 들락거리며 필요한 물건을 검색해보기 시작하다가

"핫딜이에요! 제가 본 것 중에 제일 싸요!"

와 같은 다급한 제목의 글을 클릭해봄으로써 나는 핫딜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그런 글들 밑에는 수십 개에서 많게는 백개가 넘는 댓글들이 달려있었다.


'링크 좀 주세요.'

'덕분에 싸게 잘 샀어요! 기다리고 있었는데.'

'쿠폰은 어디서 받으신 건가요?'

'이게 최저가 맞죠?'

'3번은 품절이네요 ㅠㅠ'

'이거 좋나요? 다른 거랑 비교중인데.'

   → '저희 아기 100일 무렵에 샀는데 두 돌 지난 지금까지 좋아해요!'


댓글들을 읽다 보면 이것을 반드시 사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나에게 이 물건이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는 상관없다.

나는 초보 엄마니까, 이제 육아를 막 시작한 참이니까,

아이를 키우면서 뭐가 꼭 필요한지 아닌지 아직 잘 모르는 단계니까,

육아 선배들이 수두룩한 맘 카페에서 다들 달려들어 사고 있다면

분명히 사야 하는 명분이 생긴다!

나도 사야 한다!


빠르게 같은 물건을 네이버에서 검색해서 가격을 비교한다.

이 가격이 제일 싸다. 핫딜이 맞다!

마음이 급해진다.

혹시나 품절되면 어쩌지?


"으앵, 으앵"


아!

하필 이 중요한 시점에 아기가 칭얼거리면서 나를 찾는다.


잠깐만 기다려, 우리 아들.

엄마가 우리 애기 이유식 먹일 때 필요한 식판을 핫딜로 사고있다구.


"으아아아앙. 컥컥"


애기가 울다가 컥컥거리기 시작한다.


1분이면 돼, 1분이면.

급히 결제하다가 쿠폰 적용 놓치면 핫딜가로 사는 게 아닌데!

조심! 또 조심히! 그러나 누구보다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여야 한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주문이 완료되었습니다!'


이제야 한 숨 돌리고 핸드폰을 옆에 둔다.

그리고 울고 있는 아기를 안아 토닥인다.


우리 애기, 엄마가 미안.

핫딜이라 빠르게 주문을 했어야 해서...


시간을 보니 아기 맘마 먹을 때가 다 되었다.

먹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그새 벌써?


아기가 맘마를 먹고, 트림을 하고, 모빌을 보고 놀다가

낮잠을 자고 일어나 또다시 맘마 시간이 될 때까지

나는 핸드폰으로 핫딜만 검색하며 대체 몇 번의 '주문 완료'를 한 것인가.


기저귀 - 떨어지면 절대 안 되니까 우리 아기가 쓰는 하기스 핫딜이 뜨면 무조건 쟁인다!

젖병솔 - 이것도 한 달에 한 번씩은 교체하니까 쌀 때 쟁여놓는 것이 이득!

꼬꼬맘 - 오! 아기한테 사주고 싶은 장난감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핫딜이 떴네? 당장 주문!

아기책 - 아기책은 아직 없는데. 10권에 3만 8천 원? 괜찮은데? 어릴 때부터 책 읽는 습관을 들여줘야지!

아기옷 - 이 브랜드 비싼 건데 이월상품으로 싸게 나왔잖아? 우리 아들 입히면 너무 예쁘겠네! 


그 전까지만 해도 난 내가 스스로 꽤 똑똑하고 합리적인 소비자라고 생각해왔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네이버, 다나와 등에서 검색을 해서 

가장 저렴한 곳에서, 카드 할인을 확인하고, 쓸 수 있는 모든 쿠폰을 다운로드하고, 포인트를 긁어모아

'최저가'로 샀다(고 생각해왔다).


착각이었다.

나는 '좋은 물건을 싸게 사는' 합리적인 소비자가 아니었다.

그동안 핫딜로 산 적이 없었으니까.


택배가 하나 둘 집으로 도착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남편에게 자랑했다.


"이거 봐. 젖병솔 교체할 때 다 되어가서 핫딜 떴길래 주문했어."

"아니 그렇다고 10개나 사? 하나로 한 달 정도 쓰니까 두세 개만 샀어도 되는 거 아니야? 나중에 또 사면 되잖아."

"10개씩 묶음으로 사야 제일 싸단 말이야. 두세 개만 사면 가격 메리트가 없어. 어차피 필요한 건데 뭐. 핫딜로 떠서 엄청 저렴하게 샀어."

"핫딜 그거 마케팅이야. 원래 그 가격에 파는 건데 평소에 가격을 비싸게 측정해 놓은 거야. 아마 정기적으로 하는 걸 거야. 또 뜰걸? 마케팅에 넘어갔네, 넘어갔어. 댓글 단 사람들도 판매하는 회사 사람들일 수 있어. 바이럴이라고 하지."


남편은 혀를 쯧쯧 차며 택배를 뜯는 나를 바라보았다.


흠,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아니, 뭐 그렇다 해도 평소에 측정해 놓은 비싼 가격보다 싸게 샀으니 잘 산거 아닌가?

어차피 필요한 물건들이었으니.


하지만 거실 한편에 쌓여가는 핫딜 전쟁에서 '뭉텅이'로 산 전리품들을 보며

안 그래도 아기 장난감과 바운서, 모빌, 아기체육관으로 어지러운 우리 집 거실이 점점 비좁아지는 것을 보며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게다가 매월 늘어나는 카드값도 무시할 수 없었다.


아무리 아기용품 핫딜이라지만

결제한다고 소중한 아들이 배고파 우는데도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면

그건 대체 누구를 위한 구매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뭣이 중헌디!

(하.. 그치만 나중에 혹시나 비싸게 살 생각하면 속이 쓰린데 ㅠ)


핫딜이라는 단어에 유혹되지 말자.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면 사지 말자.

핫딜은 또 뜬다. (기다리다 안 뜨거나 가격이 오르면 낭패지만!)


핫딜 게시판은 어쩌다 한 번씩 들어가서 보되, 너무 오래 머무르지 말자.

(아예 발을 끊을 순 없다. 보다 보면 필요한 게 생각날 수도 있고, 아이쇼핑이라는 것도 재미있잖아? 훗)

대신 필요한 물건을 핫딜 알람에 걸어놓고 알람이 울리면 그땐 저렴하게 구입하자!


문득, 아기용품을 판매하는 회사들은 엄마들을 공략한 '핫딜'마케팅만 성공하면

대박을 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나는 '이유식 용기'를 핫딜 알람에 걸어놓고

핸드폰은 덮어둔 채,

혼자 모빌을 보며 즐거워하는 우리 아기와 놀아주러 간다.


위에 언급한 이유식 식판과는 다르다.

이유식 용기다, 용기.

(이미 산거 아니야?라고 물어볼 남편에게 노파심에 하는 말!)


<표지사진출처 : 네이버 검색 꼬꼬맘 판매페이지>

매거진의 이전글 말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