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시집가는 딸에게

꽃이 활짝 피었으니 열매도 많겠구나

by 배재윤

정약용은 정조대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을 만큼 뛰어났지만 이로 인해 당시 집권층이었던 노론에게 미움을 받았다. 그의 몰락은 정조대왕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찾아왔다. 1801년 노론 세력은 정약용이 천주교를 믿는다는 것을 빌미로 그를 남쪽 땅 강진으로 유배 보냈다. 그는 가족들을 고향에 남겨둔 채 멀리 떠나야 했다. 그날은 하나뿐인 딸이 고작 8살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참으로 애틋했던 추운 겨울날. 어린 딸을 남겨두고 영영 멀리 떠나는 날.


강진으로 유배 온 지 어느덧 13년이 흘렀다. 얼마 전, 고향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와 아내의 낡은 치맛자락을 받았다. 부인이 시집오며 입었던 붉은 치마였는데 세월이 흘러 누렇게 변해 있었다. 몸이 아파 누운 아내가 남편을 그리워하며 보낸 것이다. 편지엔 딸이 시집을 간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8살이었던 딸은 어느덧 21살이 되었다. 믿기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고향으로 달려가면 강아지처럼 쪼르르 달려와서 안길 것만 같았다. 약과를 달라고 하염없이 보채고 조르던 귀여운 딸이 이제 부모 곁을 떠나 시집을 가다니. 딸의 시집가는 모습조차 볼 수 없다는 사실이 그를 먹먹하게 했다.


그는 붓을 꺼내어 아내의 치맛자락 위에 그림을 그렸다. 하얀 꽃망울 가득한 매화 가지 위에 두 마리 새가 정겹게 앉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림 옆에 시를 적었다.


정약용 <매화병제도> 출처 : 다산기념관


펄펄 나는 저 새가
내 뜰 매화에 쉬네
꽃다운 향기 매워
기꺼이 찾아왔지
머물러 지내면서
집안을 즐겁게 하렴
꽃이 활짝 피었으니
열매도 많겠구나





좋은 모습으로 찾아가 딸의 고운 손을 잡고 싶었지만 사이좋은 멥새 두 마리와 하얀 꽃망울이 맺힌 매화들이 그의 빈자리를 대신 했다. 부부가 다툴 때면 애교를 부려 웃음이 나오게 하고 같이 구슬 놀이를 하자고 조르던 귀여운 딸이었다. 하지만 이젠 저 멀리 시집을 가버려 만날 수 없었다. 딸을 향한 아버지의 애틋한 마음이 그림 한 장에 스며들었다. 그림은 슬픈 낭만이 되어 딸에게 찾아갔다. 멥새 두 마리 그리고 하얀 매화꽃나무 하나. 딸은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부여잡고 한참을 울었을 것이다.



꽃이 활짝 피었으니 열매도 많을 거란 바람.
아빠가 시집가는 딸에게 보내는 슬픈 낭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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