훨훨 날아라
어릴 때 난 손에 500원만 있으면 *방방을 타러 갔다. 방방을 타면 하늘을 훨훨 나는 것 같았다. 방방은 10살 소년인 나에게 꿈을 실어 주었다. “언젠가 어른이 되면 저 푸르른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야지.” 함께 이뤄보자고 다짐했던 아이들도 여럿 있었다. 지금은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함께 새끼손가락을 걸었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방방 : 점프 뛰는 놀이기구인 트램펄린을 말하며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양하다.
어느덧 스물세 살 대학생이 되었다. 오전 강의가 있는 날 아침, 사정없이 울려대는 알람 소리에 화들짝 깼다. 일어나기 싫어 소리를 질렀다. 부스스한 눈으로 창문을 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눈앞에 펼쳐졌다. 불현듯 하늘을 날아갈 거라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피식 웃음이 나왔고 이내 씁쓸했다. 마냥 싱글벙글했던 그때와는 다른 웃음이었다. 나는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한숨을 푹 쉬었다.
학교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하늘을 나는 것이 가능할까. 애초에 불가능하다. 누가 들으면 이적의 〈하늘을 달리다〉라도 부르지 그러냐고 비웃을 게 뻔하다.
나와 달리 죽는 순간까지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던 사람이 있었다. 우주 비행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치올콥스키(1857-1935)다. 그는 어렸을 적에 쥘 베른이 쓴 공상 과학 소설을 읽으며 생각했다. ‘어른이 되면 꼭 하늘을 날아 달에 가보는 거야.’
어느 날 그의 선생님이 물었다. “여러분의 꿈은 무엇인가요?” 치올콥스키는 말했다. “선생님 저는 하늘에 있는 달에 가고 싶어요.” 친구들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고 깔깔 웃었다.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우주로 가는 핵심적인 열쇠가 된 로켓 방정식을 남겼다. 그의 발견 덕분에 1969년 닐 암스트롱을 태운 아폴로 11호가 달로 향했다. 꿈을 꼭 이룰 필요는 없다. 꿈을 꾸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바라는 일 그 자체다. 비록 달을 밟진 못했어도 그는 진짜 꿈을 꾸었던 소년이었다.
함께 하늘을 날아보자 약속했던 친구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현실을 살아가기 급급해 꿈을 잃어버린 채 살고 있겠지. 하늘을 날고 싶다는 망상은 버리고 취업을 위한 계획을 어떻게 세울지 궁리하는 것이 더 나을 거라. 다시 너희들을 만날 수 있다면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하고 싶다. 비록 지금 당장 하늘을 날 수는 없어도 우리의 꿈만큼은 꼭 쥐고 살아가자고 말이다.
“부우우웅.” 학교를 향하는 버스가 내 앞에 멈췄다. “삑- 환승입니다.” 어린 시절에서 청년으로 환승. 버스가 광화문을 지날 때 즈음 버스 기사 아저씨 어깨너머로 푸르른 하늘이 펼쳐졌다. 조용히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다. 비록 진짜 하늘을 날진 못해도 매 순간 꿈꾸는 일상이 되기를. 따사로운 아침 햇살을 맞으며 버스 창가에 기댔다. 파란 하늘을 가로지르며 달려가는 버스. 어느새 흐뭇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