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재윤 May 24. 2024

졸업앨범에 선생님 사진이 사라졌다

학교에 퍼진 나에 관한 가짜뉴스, 기나긴 상실 끝에 얻은 위로

  S 자사고 기간제 교사 신규 채용 면접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아직도 기억에 선명한 면접 질문이 있다. 5개월이란 짧은 계약 기간의 제일 아쉬운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이었다. 곧장 계약 기간이 1년이 아니라는 것이 생각났다. 1학기만 하고 일을 그만두면 다시 구직해야 하는데 2학기 계약직은 공고도 잘 나지 않을뿐더러 구하기도 쉽지 않으니까. 당연히 이런 대답을 면접관이 듣고 싶지는 않았을 테고, 통상 면접에서 물어볼 수 있는 흔한 질문은 아니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함과 동시에 고교 시절 졸업앨범 속 선생님들의 사진이 생각났다. 학창 시절 주변 인근의 모든 학교는 졸업앨범 사진 촬영을 가을에 찍곤 했는데 그때 선생님들도 졸업앨범에 실릴 사진을 함께 촬영하는 모습을 봤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계약 기간이 고작 5개월인 내가 앞으로 가르칠 1학년 학생들의 졸업앨범에 사진을 남길 수 없을 거라 짐작했다.


  “아쉬운 점이요…? 음... 학생들은 학교를 떠나고 언젠가 문득 졸업앨범을 꺼내보곤 하는데요. 맨 앞장에 실린 선생님의 사진을 보며 그 순간만큼은 다시 10대로 돌아가 자기 나름의 추억 여행을 떠나곤 합니다. 그런 소중한 추억 여행 속에 제 사진이 없다는 사실이 아쉽습니다. 제 계약 기간은 고작 5개월이기에 아마 졸업앨범 사진을 촬영할 기회조차 없을 테니까요. 계약 기간이 1년이 아니라는 사실도 물론 아쉽지 않다고 말하면 당연 거짓말이겠지만 무엇보다 저를 이토록 슬프게 하는 것은 ‘아 그때 이런 선생님이 있었는데 왜 앨범에 보이지 않지?’라고 말하는 학생을 상상하는 일일 것입니다.”


   S고 면접에 통과되고 난 후에서야 해당 학년의 졸업앨범에는 그해에 근무했던 모든 선생님의 얼굴 사진이 반드시 들어간단 사실을 알았다. 사실도 아닌 것을 떠들어 대어 상당히 웃픈 과거가 되었지만, 학생들의 기억 속에 좋은 선생님으로 남길 바란다는 것은 내 진심이었다.


그로부터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때와 지금의 내 맘은 과연 같을까.


  최근 근무하는 학교에서 수학 시험과 관련하여 매우 좋지 않은 가짜 뉴스가 터졌다. 그 과정을 해명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고 정신적으로 충격이 꽤 컸다. 잘못된 생각을 가진 학생들이 안타까워 대화와 설득을 통해 충분히 설득하려 했지만,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정리하지도 않은 채 감정적으로만 날 대했다. 정신과 의사이자 경영자문인 저자 마크 고울스톤 말에 따르면 사람이 공포, 불안, 위협을 느끼면 ‘뱀의 뇌’가 활동하는데 이때 이성적인 다른 뇌들이 작동을 멈추며 이땐 설득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사실을 ‘명심해야만’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내게 감정적으로 대하는 이들은 그저 자기 성적이 하나라도 올라가는 일에만 급급한 이들이었다.


  후회만 남았던 그날 밤, 스승의 날 하루 전 날이었다. 힘든 일이 있어도 괜찮은 척 수업에 임해야 한다는 사실에 너무 슬펐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애초에 대화는 불가능에 가까웠는데 설득하려고 했던 나의 태도인가. 설득보다 원칙대로 대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시험과 관련된 사항은 성적 관리 위원회에서 결정할 사항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기다려달라.”라는 말 한마디면 서로 상처받을 일이 없지 않았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어 정말 간신히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학생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두 번째 가짜 뉴스가 교내에 퍼졌다. 두 번째 가짜 뉴스는 정말 구체적이었고 그 타깃은 나를 향해 있었다. 심지어 학생이 아닌 몇몇 학부모들의 이의 제기를 통해 이뤄졌다. 내가 학생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오고 가는 말들이 심하게 왜곡되어 학부모님들께 전달된 듯했다. 학부모들이 학교를 직접 방문했고 교감 선생님을 찾아가서 사실해명을 요청했다. 그 과정에서 모든 OMR카드를 재검수해야만 했는데 당연한 결과였지만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천만다행이었다.


  몇 주간 가짜 뉴스가 퍼지는 과정을 직접 겪으며 가짜 뉴스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생각했다. 가짜뉴스는 여러 진실 중 자신이 믿고 싶은 사실만 특별히 강조되거나 단어 일부가 사실과 전혀 다르게 전달되는 특성이 있다. 그 말을 누가 만들어냈는지 출처도 불분명한 말을 가짜 뉴스를 만들어낸 당사자에게 직접 전해 듣는 경우는 드물며 풍문처럼 전해져 듣는 경우가 많다.


  사례로 이번 해에 학교 체육 대회가 열릴지도 취소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있었다. 어느 학생이 내게 “선생님은 학교에서 일정을 관리하니 체육 대회가 어떻게 될지 아시지 않냐고” 질문했다. 난 그저 선생님들이 결정한 상황을 달력에 집어넣기만 할 뿐이라고 답했는데 이를 엿들은 학생들 사이에서 가짜뉴스가 퍼졌다. 체육 대회가 제발 열렸으면 좋겠다는 충만한 신앙심을 바탕으로 “결정”과 “집어넣는다”라는 단어만을 더욱 강조하여 “내가 체육 대회 일정을 학사 일정 달력에 어떻게 해서든 집어넣기만 하면 이번 체육 대회가 열릴 수 있다.”라는 사실로 소리소문 없이 퍼졌던 일이다.


  몇 가지 깨달은 사실도 있다. 첫 번째, 자신의 정체는 절대로 드러내지 않고 선생님에 대한 불만을 선생님께 직접 말하기보다 학교 관리자(교감, 교장) 혹은 교육청에 보고하는 학생이 정말 많다. 학생이 가진 불만을 선생님께 바로 말하면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선생님과 사이가 틀어질까 염려되어 그랬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과정이 옳다고 말하고 싶지 않고 오히려 건강하지 않은 소통 방법이라 생각한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기에 “사랑은 상처를 허락하는 것”이라는 공지영 작가의 말처럼 사람은 상처를 서로 주고받으며 성장한다고 생각한다. 올바른 소통하려는 법을 익히기보다 그저 익명성에 기대어 책임질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자신의 원하는 바를 얻고자 하는 이들이 앞으로 과연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는가. 두 번째로 앞서 말했듯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보다 그저 감정적으로만 대하는 이들과는 결코 정상적인 대화로 해결할 수 없을뿐더러 흔히 교육학에서 강조하는 ‘서로 성장하며 관계’는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들에겐 설득보단 철저한 원칙대로 대해야 함이 옳았다.


  학생에게 좋은 선생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나의 꿈. 2년 전, S자사고 면접장에서 외쳤던 나의 진심은 이번 가짜뉴스로 처참히 무너져 내렸다. 무질서에서 규칙적인 패턴이 보이는 즉시 예전 불규칙한 모습을 보였던 때로 돌아갈 수 없듯이 지금의 나는 2년 전 희망을 품었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없겠지. 그렇다면 이제부터 난 학생과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가.



   가짜 뉴스가 퍼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PAPS(학생건강체력평가)를 실시했을 때 일이다. 담임을 맡은 학생 중 B라는 학생이 작년 오래 달리기 때 8바퀴 중 고작 2바퀴밖에 못 뛰어 이번엔 아예 뛰지 않고 열외로 하겠다고 말했다. B에게 이번엔 선생님이 같이 뛰어줄 테니 함께 달리자고 권유했다. B와 같은 출발선에서 우린 함께 달리며 완주했다. 그때 B가 지었던 표정은 어땠을까. 헉헉거렸지만 해냈다는 표정, 그리고 조금 글썽이는 눈망울. B는 포기하지 않으면 뭐든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웠을 테다. 진정한 행복은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하다는 사실, 즉 존재로부터 온다. 그 사실 만으로도 우린 살아갈 이유를 얻는다. 그날에 나를 정말 필요로 하는 학생이 한 명 정도는 있을 거란 확신이 생겼다. 살아야 한다면 그 학생을 위해 살리라. 꽤나 긴 상실 끝에 얻은 위로 중의 위로. B가 내 담임반 학생이어서. 그저 내 옆에 이리 와줘서 고마웠다. B도 내 생각과 같았으면 좋겠다. 체력평가가 끝난 후 집에 돌아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마냥 슬프지만은 않은 조금 복잡한 감정이었다. 


  학교에서 보내는 순간이 마치 트랙 위의 경주와 같다면 어떤 학생들과 함께 달려야 하는가. 방법은 다르더라도 나름의 기준을 정하고 모두 함께 달리는 일을 꿈꾼다. 설득이 되지 않는 학생에겐 원칙대로 대하며 별 탈 없이 무사히 졸업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지혜가 있기를. 마땅히 지켜주고 보호해야 할 학생이 있다면 나의 도움이 그 학생에게 닿을 수 있도록 바라는 일.

 



이런 태도로 너희들을 대한다면 어떨까.

적어도 너희들의 마음에 한 편 어딘가에

나와 함께한 추억은 마치 수많은 사진첩이 되어

상처받은 서로의 마음을 위로하고

한 편의 졸업앨범에 서로가 활짝 미소 지은 뒤

남기고 간 의미가 되길.


개구리 선생님의 슬기로운 교직생활 #06


매거진의 이전글 기간제 교사를 비전문가라고 생각하십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