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평가하는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
수포자, 수학을 포기하는 사람의 줄임말이다. 수학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국어사전에 수포자라는 단어가 등재되었을 정도다. 학생들은 언제부터 수학을 포기할까. EBS 다큐 <대한민국 수학 교육 보고서_포기한 사람은 누구인가> 제작진들은 초중고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그들은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에게 수학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면 손을 들어달라고 부탁했다. 몇 명을 제외한 학생 대부분이 손을 들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은 절반 정도 되는 학생들이 손을 들었다. 중학교 2학년부터는 절반을 넘어섰다. 고등학교는 더욱 심각했다. 분명한 건 학생들은 처음부터 수학을 포기하진 않았다. 도대체 학창 시절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학생들은 수학을 배우는 이유를 모른다.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칠 때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사칙연산만 할 줄 알면 되지 수학은 도대체 배워서 어디에다가 써먹죠? 대학입시 그뿐인가요?” 온라인 게임에서 아이템을 발견하듯 학생들 스스로 수학의 개념과 용어를 발견할 때 흥미가 생긴다. 그러나 학창 시절 우리가 배워온 수학은 오로지 대학 입학시험을 위한 주입식 수학이었다. 현행 대학 입학시험은 상대평가다. 상대평가란 석차를 매기는 평가방법이다. 친구가 나보다 더 많은 문제를 맞히면 나의 성적은 내려간다. 상대평가에서 친구는 협력자가 아닌 경쟁상대에 불과하다. 학생들은 수학의 개념을 발견하는 기쁨보다 수능에서 한 문제라도 더 맞히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한다. 성적이 좋아야만 자신의 성과를 인정받을 수 있으니까. 수학의 흥미와 성적은 떨어지고 나가야 할 진도는 늘어나는 악순환이다. 수학을 배워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결국 수학을 포기한다.
아이들이 수학을 포기하는 이유는 학교의 평가방법 때문이다. 평가는 학습의 중요한 동기이다. 학생들은 평가를 통해 나의 모르는 것을 점검하고 더 배울 기회를 얻는다. 올바른 평가는 학생들의 성장에 좋은 밑거름이 된다. 그런데 학교는 무려 초중고 12년 동안 단순한 줄 세우기의 상대평가를 고수해왔다. 지금의 방법대로라면 수포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채사장 작가의 《시민의 교양》에 따르면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운 내용은 잊어버려도 평가방식은 절대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EBS 다큐 〈공부의 배신_나는 왜 너를 미워하는가〉을 보면 대학생들은 서로 서열을 매기고 따졌다. “야 쟤는 일반고 출신인데 성적이 꽤 높은데?”, “역시 쟤는 기회균형 전형이니까 성적이 낮지.” 학생들은 평가를 위해 노력한 과정보다 결과에만 집착한다. 이것이 진정한 교육인가.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은 경쟁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아니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좋은 대학에 가는 것보다 지금 당장 배우고 있는 교과목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 시작은 학교의 평가방법을 바꾸는 일이다. 난 혼자서 고민하기보다 여러 학생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교육의 주체는 다름 아닌 학생들이니까. 현재 공과대학에 재학 중인 대학생들과 중고등학생들에게 전화로 몇 가지 설문 조사를 했다. 질문은 다음과 같다.
수학을 어떻게 평가해야 학생들이 학교에서 수학의 즐거움을 느낄까?
학생들의 대답을 통해 어느 정도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의견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객관식보다 서술형으로 학생들의 생각을 물어야 한다. 교사는 점수를 매기기보다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평가해야 한다.” 지금 학생들은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평가받기를 원한다.
OO고등학교 교사 B는 학생들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때가 아니면 좀처럼 공부에 집중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B는 학생들을 위해 평가방법을 바꿨다. 지필 평가는 한 번만 보고 과정 중심 평가를 여러 번 진행했다. 과정 중심 평가란 교사가 여러 번의 다양한 평가로 학생들의 성장 과정을 살피는 방법을 말한다. B는 학생들이 예전보다 노력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며 즐거워했다. 개별 피드백도 꼼꼼히 진행한 결과 학생들의 학습 성취도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학교는 수능과 같이 일관된 유형으로만 학생들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찍어서 정답을 다 맞혔다고 좋아한다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평가란 더 많은 정답을 맞히기보다 내가 어느 부분을 모르는지 점검하는 과정의 학습 성취도와 관련이 높아야 한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물려줘야 할 세상은 정답만을 요구하는 세상이 아니다. 아이들의 부족함을 받아주는 세상. 아이들의 삐뚤빼뚤한 수학 풀이가 교실에 가득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