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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망 Sep 25. 2024

네 연애 히스토리를 말해줘  

사랑이 장난


연애를 시작하면 전 연애에 대해 집요하게 묻는 편이다. 물론 상대는 거부감을 보인다. 

“넌 히스토리에 왜 이렇게 집착해?” 

“내가 좀 히스토릭해서.” 


왜 거부감을 갖지? 나는 ‘역사’를 좋아하는 것뿐인데. 과거 연애에 대해 듣는다고 전혀 질투가 나진 않는다. 연도와 사건이 나열된 역사책처럼 감정 없이 읽힌다. 내 목적은 단지 데이터베이스를 쌓아서 활용하려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학술적 목적으로 분석해 보고 싶다. 과거 연애 패턴을 보면 현재의 연애 패턴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이 사람의 핵심 성격과 누군가와 맞고 안 맞는 포인트가 뭔지 결정적인 단서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과거까지 사랑할 만한 사람이어야 더 애정이 깊어지는 거 아닌가? 과거 연애에서의 잘못과 성장 스토리도 알아야 연애가 더 풍부해질 것 같았다. 상대의 전 연애와 같은 결말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떤 변수를 바꿔야 할까? 얼마나 자주 만났는지, 싸울 때 어떻게 풀었는지, 연락 패턴이 어땠는지, 치명적인 장단점, 헤어진 이유 등이 궁금했다. 그러나 그는 잘 알려주지 않았다.  



“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전 사람한테. “

과거 이력 데이터를 못 보다니 아쉽고 궁금하긴 했지만, 전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아, 얘는 믿을 수 있겠구나. 나에게도 예의를 차리겠구나. 정도의 단서를 얻은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우리는 ‘연애 지속’ 패턴이 달랐다. 그는 한 사람과 오래 만났지만, 나는 여러 사람과 짧게 사귀고 헤어짐을 반복하는 사람이었다. 연애가 재미없다면 쉽게 질리기도 하고 예민한 성향이라서다. 지호는 이걸 듣고는 물었다. 

“어떤 최종 결론이 났어? 남자를 많이 만나보고 얻은 인사이트가 있어?” 


이런 질문을 한 사람은 처음이어서 좀 놀랐다. 예리한걸… 하지만 나는 아직 이전 연애’들’에 대한 의견이 정리되거나 뚜렷하지 않은 상태였다. 답을 하지 못한다면 과거로부터 배운 게 없다는 인상을 주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많은 연애를 관통하는 결론을 쥐어짜 내본다면… 일단은 전에 만났던 애들이 초장부터 스킨십하는 게 좀 별로였다고 말했다. 


“정말? 너무 맘 아프다.” 

그는 진심으로 대신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보통 남자들은 남자에 이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호는 눈썹을 찡그리며 내게 이입해 주었다. 나는 조금 말문이 막혔고, 다른 인사이트들이 뭐 있었나 머리를 굴렸다. 그것들은 앞으로 또 정리해 볼 생각이다. 뭐든 역사를 관통하는 흐름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까. 


다만 나의 취향에 대해, 내가 뭘 견디고 뭘 견딜 수 없는지 더 잘 알게 되었다고, 또 과거 이력에서 배운 점들이 내게 남았기 때문에 좋은 사람을 잘 알아본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말하진 않았다. 






지호 : 삼 년 차 때 보통 권태기 오더라고 

민정 : 왜 이렇게 두려워하지? 

지호 : 겪어봤으니까. 너랑은 넘 좋아해서 오래 가고 싶은데. 

민정 : 그렇게 될 거야. 난 아직 오래 안 사귀어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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