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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망 Oct 26. 2024

우리 정말 드라마 같고

소화되지 않는 것들


2014년의 어느 밤 10시, 친구에게 대뜸 전화해서는 울었다. 술 안 먹은 맨정신으로, 옛 남자 친구의 프로필 사진을 보고서였다. 그의 프로필엔 도시락 사진이 덩그러니 있었고 99% 애인이 싸줬을 것이다. 친구는 여친이 아닐 수도 있지 않겠냐며 어색한 위로를 해줬다. 이 난리를 피운 건 헤어진 지 3개월도 아니고, 3년이 지난 동식 때문이었다. 



동식, 짜증 날 때 호칭은 똥식. 대학 때 첫사랑의 이름이었다. 내가 그를 잊을 수 없는 이유는 내 안에서 마무리를 확실히 안 맺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똥을 싸다 끊고 나왔는데 계속 찝찝한 것처럼. 우린 대학 1학년 미팅에서 만났다. 당시 ‘꾼노리’ 같은 룸술집에서 미팅을 많이 했는데, 인공적인 과일 소주를 팔았다. 전자레인지에 돌린 냉동 감자튀김과 짬뽕탕을 시키고서 서로를 훑었다. 딱 봐도 훤칠하고 아나운서처럼 준수한 동식이 마음에 들었다. 


그땐 암암리에 이성을 꼬시는 비기 같은 게 쎄씨 같은 잡지나 다음 카페 등에 돌아다녔고, 나는 그를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눈이 마주치면 3초 뒤 눈을 깔면서 씩 웃는 ‘3초 스킬’ 같은 게 좀 먹히는 듯했다. 



그러다 소지품 교환의 시간이 왔다. 남자들이 잠깐 나가있고, 동기들끼리 뭘 꺼낼지 재잘거렸다. 동기 사랑 나라 사랑이라던 동기들은 내가 먼저 동식을 찜하자 양보를 해주었다. 다른 애들은 립스틱, 지갑 등 평범한 걸 냈고 난 무리수를 던졌다. 오늘 길에 받은 선거 유세 후보 명함을 골라서 테이블에 둔 것이다. 


다시 테이블에 돌아온 남자애들이 하나씩 소지품을 신중하게 바라봤다. 제발… 너가 유머 감각이 있다면 명함을 골라줘. 다들 머뭇거리던 중, 동식이 피식 웃더니 명함을 골랐다.  

“나 이거. 왠지 웃긴 애 같아.”



우린 나란히 앉아 커플 게임은 하는 둥 마는 둥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21살 여자와 20살 남자는 풋사랑을 시작했다. ‘그녀’와 ‘그’가 아니라 여자/남자 ‘애’라는 호칭이 어울릴 만큼 외모도 정신 연령도 고등학생 때와 비슷했다. 




우리는 어딜가나 예쁨을 받았는데, 가령 약국엘 가도 “이쁜 사람들끼리 어떻게 만났대?” 하고 어른들이 말을 걸었다. 2010년엔 그런 어른들이 꽤 있었다.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말을 걸고 칭찬을 해주시는 분들. 외모를 떠나 젊음과 풋풋함이 싱그러웠을 것이다. 동식도 내게 푹 빠졌고 매일 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한번은 같은 과 친구가 요즘 연애 어떠냐고 물어봤다. 본격 자랑을 한번 해보라고 했다. 나는 묵혀놓은 행복을 눈치없이 확 꺼내버렸다. 


“음 저번엔 민들레영토 가서 서로 편지 써줬어. 고개 숙이고 편지 쓰는 걔 속눈썹이 길고 예뻐서 또 반했고. 그리고… 아, 어제는 같이 걷고 있는 것도 아쉬워서 마주 보고 걸었다?” 

“마주 보고?” 

“둘이 번갈아서 뒤로 살살 걷는 거지. 얼굴 보려고. 우리 정말 드라마 같지 않어?” 


잠깐 정적이 흐르고나서 친구와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후부터 그 친구는 날 볼 때마다 뒤로 걸었다. “우리 정말 드라마 같고…” 말투를 흉내내면서. 



동식과 나는 종로역에서 자주 헤어졌다. 우리의 중간 지점이자 서울 교통의 중심에 가까운 종로에서 자주 만나서 데이트했기 때문이다. 헤어질 때 상대를 태워 보내면 지하철 문이 닫히고도 한참 서로를 보았다. 연애한지 1년쯤 되니 시선 맞추는 시간이 몇 초씩 짧아지면서 애정이 식어감을 직감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연애 초기, 손을 놓기 싫어하던 걔의 체온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믿었다.  




우린 뭐가 문제였을까. 화분의 저주 때문이었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무슨 돈이 있었겠냐 싶지만, 동식의 100일 선물은 좀 심했다. 작은 선인장을 담은 화분. 당시 가수 알렉스가 ‘화분’이라는 감미로운 노래로 인기를 끌던 것에 감명을 받은 건지. 나는 무려 4만 원이 넘는 향수를 사주었는데 그 화분은 만 원짜리였고, 문제는 난 뭐든 잘 못 키우는 성향이었다. 


동식이 사준 화분은 물을 줘도 잘 자라지 못해서 나중엔 흙 사이로 개미가 등장했다. 개미가 갉아먹어 시들해진 식물처럼, 걔의 애정 표현도 덜 해지고 있었다. 우린 자꾸 중심에서 어긋나고 삐걱댔다. 



또는 동식이 보냈던 문자가 떠오른다. 그로선 나와 좀 더 깊은 걸 공유하고 싶은데 내가 예쁘게 차려입는 데이트만 하려 해서 아쉽다는 거였다. 

-       나는 너랑 다 같이 하고 싶어. 운동도 같이 하고 영어 학원도 같이 다니고 싶은데… 너는 나랑 데이트만 하려 하는 것 같아.

-       그건 친구랑 해도 되는데, 우린 데이트 때 좋은 모습으로 만나는 게 좋지 않아? 



사실 나는 둘이 시간을 더 보내고 다른 걸 같이 할수록 진짜 내 모습, 단점을 더 알게 되고 떠날까 봐 두려웠다. 오히려 그 두려움 때문에 걔의 마음이 떠나가는 줄은 몰랐다. 그때 나는 식물을 키우는 데도 서툴렀고 감정 표현과 연애에도 서툴렀다. 동식도 그랬지만. 방학 때 동식은 고향에 내려가 있었다. 내가 언제 올라오냐고 보채자 뜸을 들이더니 천천히 말했다.


“음… 이제 너가 그렇게 소중하지 않은 것 같아.” 


나는 큰 충격에 휩싸인 채 일단 전화를 끊었다. 방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현실감이 없었다. 그날은 종일 혼자 울어도 보고 화도 냈다. 

“똥식… 이… 똥 같은 놈이!” 



안타깝게도 똥식은 고향으로 대피해 있어서 내가 화내봤자 섀도우 복싱만 하는 셈이었다. 한참 책상 위에 엎드려 울고는 다음날 전화를 걸어 쿨하게 말했다. 야 그냥 헤어져. 걔는 헤어질 생각까진 아니었다고, 좀 더 시간을 가져보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내 자존심이 더 무너지게 둘 수 없어서 이별을 밀어붙였다. 지금까지 후회되는 건, 그때 너무 쿨한 척했다는 거다. 향후 5년간 걔 생각을 하게 될 줄도 모르고. 내 친구들은 처음엔 같이 나쁜 놈이라며 욕해주다가 나중엔 이젠 좀 잊으라고 했다. 




진짜 사랑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동식이 사라지자 걔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문자를 주고받던 때로 돌아가 하나씩 단서들을 뜯어보았다. 내용과 숨은 표정과 목소리를. 우리가 찍은 셀카와 사진들은 헐어 있었고 영상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핸드폰 화소가 낮았던 시기라, 그 시절 모든 잔상과 걔 얼굴 테두리가 희미하게 뭉개져 있었다. “사진 화질이 왜 이래” 하며 또 울었다. 



언젠가 나는 <제왕의 딸 수백향>이라는 사극 드라마를 재밌게 봤다. 거기엔 여주인공의 부모 서사가 나온다. 여주인공을 낳은 여자와 남자는 가혹한 운명 탓에 헤어져서 서로를 그리워하며 평생 산다. 그들의 서사에 가슴이 오래 아렸다. 사진조차 없었던 시절의 사람들을 생각했다. 옛사람들은 정인과 헤어지면 그 얼굴을 어떻게 기억했을까. 그리워 울며 잠들다가 화폭에 그림으로 그려서 남겼겠지. 그걸로 충분했을까? 한 해, 두 해 지날수록 카메라의 화소 기술은 가공할 정도로 빠르게 발전했는데, 걔랑 찍은 사진들만 흐릿하게 멈춰있었다. 이제 빛바랜 과거이니 잊으라는 듯이 날 보챘다. 



이후론 드라마를 볼 때마다 감정 이입을 시작했다. <사춘기 메들리>의 풋풋한 첫사랑 서사가 우리 이야기 같았고, <힐러>의 남주인공처럼 걔의 준수한 얼굴이 떠올랐고, <로맨스가 필요해 2012>에서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얘기에 꽂혀버렸고,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연상녀 연하남 조합에 마음이 움직였다. 




혼자 드라마를 찍고 있던 나는 걔도 날 안 잊길 바라며 1년에 한 번씩 안부 연락을 했다. 새해 복 많이 받아! 응 너도 복 많이 받구 ^^ 답장은 받았지만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이후 연애를 많이 해봤지만 동식으로 고정돼 버린 이상형을 넘어설 수 없었다. 1년의 짧은 연애엔 빈구석이 많아서, 할 거 다 못해봐서 미련이 됐다.


 화소가 흐릿한 사진들처럼, 내내 희미한 모습만을 더듬은 연애였다. 어린애 풋사랑 정도였을 뿐, 더 깊이 일상을 공유하는 법을 몰랐고 깊은 감정을 다루지도 못했다. 어쩌면 그의 말대로 학원도 운동도 공부도 같이 했다면 좀 달랐을까? 심지어 우린 동정도 지켰었다. 

나의 국문과 친구들은 그 연애를 두고 말했다.


“너네 무슨 황순원의 소나기 같은 거였어? 순수 덩어리였네.” 

“시끄러… 잔 것도 아닌데 왜 못 잊을까?”

“안 잤으니까 아쉽고 풋풋해서 과거 미화를 하는 거지.”

“이럴 줄 알았으면 잘걸.” 


진심이었다. 젊다 못해 어린 커플들의 모습을 보면 가끔 동식과 나를 생각한다. 종로에 갈 때나 선인장 화분을 마주칠 때도 가끔 생각이 난다. 이제 걔가 그리운 건 전혀 아니고, 풋내나던 청춘이 그리워서다. 20대 커플들을 보는 내 눈빛은 옛날 약국 아저씨, 지나가던 할머니들의 눈빛과 비슷할 것이다. 근데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을까. 서투른 젊음은 사무친 거라고, 미숙해서 끝나버린 후회와 애틋함은 잊히지 않는다고. 예전에 길을 걷다가 문득 혼잣말했었다. 


아 우리 정말 드라마 같았는데…. 


나는 그 드라마를 첫 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계속 재탕하며 정주행하고 있었다. 하도 봐서 영상 화질도 닳았다. 그러다 보니 헷갈렸다. 시즌2가 나오길 바라고 있는지,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를 실제로 만나길 원하는지, 초반부만 사랑했는지 후반부의 이별까지 사랑했는지, 드라마 속 내 모습이 좋았는지 걔가 좋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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