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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망 Sep 23. 2024

하루살이 전단지 알바생

소화되지 않는 것들



대학생 1학년이 되고 첫 알바는 고급 샤브샤브집이었다. 이런 좋은 식당은 직원 밥도 좋겠지? 기대에 부풀어 있었건만, 점심시간이 되자 웬걸, 주차장으로 끌려갔다. 어둑한 주차장 구석에 덩그러니 의자들이 놓여있고 거기서 밥을 먹으라고 주는데, 흰 쌀밥에 비빔 간장이 전부였다. 다른 동료들은 무심하게 밥을 퍼서 간장을 비벼 먹고 있었다. 인권 침해의 현장 아닌가…? 뜨악해진 나는 그길로 하루 만에 관두었다. 



두 번째 알바는 프랜차이즈 카페였다. 출근 첫날 유니폼을 입고 들떠서 슬쩍 사진도 찍어봤다. 오전 내내 점장에게 일을 배웠는데, 손이 빠릿하지 않았는지 다음날부터 나오지 말라고 했다. 도망치듯 쫓겨나며 직원에게 무료 제공되는 커피 1잔은 야무지게 타서 나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 그 커피를 호로록 마셨다. 그 맛은 고소했지만 내 속은 탄 원두처럼 씁쓸해졌다. 과연 나를 원하는 곳이 있을까? 자의든 타의든 하루 만에 관두다 보니 다음 알바를 구하기가 두려워졌다. 



다음 날엔 침대에 누워서 생각했다. 2달이나 되는 방학을 어떻게 돈없이 버티지? 부모님이 방학땐 알아서하라며 용돈을 끊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하루살이 알바생’으로 살자. 일일 알바라도 계속하면 돈은 벌리겠지. 그렇게 기존 알바생들의 하루를 ‘땜빵’ 해주게 되었다. 콜센터로, 옷 가게로, 학원으로. 아무리 힘든 알바여도 믿을 구석은 있었다. 이 일도 오늘이 끝이라고 생각하면 되었다. 힘들어도 단기라면 뭐든 버틸 만했다. 




하루는 신발 가게의 전단지를 돌리는 일이었다. 아침 10시까지 가게 앞으로 가니 알바생 대여섯 명이 모여있었다. 오픈 기념행사 전단지를 돌리는 미션이었다. 남녀 구분 없이 벙벙한 유니폼으로 갈아입고는, 조를 짜서 흩어졌다. 


나는 현과 짝이 되었다. 현은 30대 남자로, 그다지 친해지고 싶은 인상은 아니었다. 그는 촌스럽고 낡은 빵모자를 썼다. 몸은 아주 말랐고, 이빨 몇 개가 빠진 채 헤죽 웃는 인상과 눈이 작게 보이는 뿔테 안경, 빨래를 잘못 말린 듯한 냄새까지 약간 거부감이 들었다. 다른 조는 또래 여자끼리 짝지어서 재밌어 보이던데. 초등학생 때 인기 없는 남자애와 짝꿍이 되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처음 본 내게 반말도 했다.  


“반가워. 나는 전단지 알바만 3년째야. 뭐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


나는 전단지 알바를 3년이나 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노하우가 그렇게 궁금하지 않았다.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하고는 300장 단위 전단지 할당량을 들었다. 


“우리 구역은 3번 출구 앞이야. 출구에서 다섯 발자국쯤 떨어져서 돌리는 게 좋아.” 


현의 가이드를 따라 출구 앞 길가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 하루 7시간을 전단지만 돌렸다. 처음 받은 삼백 장을 소진하면 다시 백 장 정도 뭉텅이로 가져와서 돌렸다. 몸이 힘들다기보다 눈치가 많이 보이는 일이었다. 사람들의 얼굴을 종일 살피느라 금방 피곤해졌다. 받아줄 것 같은 사람이 누구일지, 저 사람 관상이 어떤지, 사람이 많이 지나갈 위치가 어디일지. 행인들의 얼굴을 이렇게 집중적으로 본 건 처음이었는데, 웃는 낯은 드물었고 무표정하거나 찡그린 얼굴이었다.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누군가 말 걸세라 부리나케 걷는 사람들. 잔뜩 경계 태세를 갖춘 인파가 계단으로 쓸려 내려가고 올라왔다. 거대한 혈관의 적혈구처럼 교차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소심한 내 손은 세찬 발걸음들에 묻히곤 했다. ‘나 이상한 사람 아닌데…’ 의기소침해졌다. “신발 가게 오픈했습니다.” 가끔 말을 건네며 전단지를 줬으나 하도 냉대당하는 통에 목소리는 점점 작아져서 신발 안으로 쏙 기어들어 갈 지경이었다. 날씨가 아직 초여름이라 많이 덥진 않았지만 햇살이 강했다. 우리는 인도에 햇빛이 강렬히 쬐는 부분을 조금 피해서 섰다. 현은 해의 위치가 바뀌는 것에 맞춰 조금씩 발을 옮겼다. 사방 반경 1m 정도씩. 현은 마치 게임 속 붙박이 캐릭터 같았다. 반면 나는 역 출구에서 좀 더 멀찍이 떨어져 그늘에서 전단지를 돌렸다. 넓은 동선으로 스팟을 바꿔가며.  



오전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점심엔 직원이 나눠주는 도시락을 받아왔다. 익숙한 메뉴, 치킨마요였다. 근처에 공원도 없어 빌딩 계단에 앉으니 현이 옆에 걸터앉았다.  


“어때? 할만해?” 

“네… 되게 안 받아주네요.”

“그치. 몇 년을 해봤지만 대부분 잘 안 받더라. 내가 요령 알려줄까?” 

“요령이 있어요?” 

“누구랑 같이 있는 사람을 공략해 봐. 지인 눈치 보여서라도 받아주는 경우가 있어.”

“오… 그것밖에 없어요?” 

“…”



오후 시간은 더 안 갔다. 처음 몇 시간은 미소 지으며 종이를 건넸지만, 갈수록 표정이 굳어갔다. 여전히 받아주는 사람은 한 시간에 몇 명 있을까 말까. 받고서 바로 내 눈앞에서 버리거나 찢는 사람도 간혹 있었다. 저럴 거면 왜 받는 거지? 모든 사람들로부터 거부당하고 거절 받는 경험. 낮게 깔아보는 무시의 눈빛들을 그날 하루 다 받는 것 같았다. 반복되는 냉대에 마음이 구겨진 전단지처럼 너덜너덜해졌다. 그러다 한 사람이 간혹 받아주면 감격했다. 이건 일종의 감정 노동이었다. 



우린 출구 양옆에 대칭으로 서서 일했다. 5시간쯤 지났을까, 여전히 현은 웃음을 잃지 않고 “새로 오픈했어요. 다음에 들러주세요.” 살갑게 말을 걸었다. 그는 전단지 왼쪽 한 귀퉁이를 접어놓고 빠르게 내미는 스킬을 썼다. 나도 살짝 따라 해봤는데 그렇게 박력 있기도 힘들었다. 오래 하면 저런 경지가 되는 걸까? 지루해진 나는 새로운 시도도 해봤는데, 종이를 안 주는척하다가 확 내밀거나, “오픈 이벤트 많으니까 들러보세요.” 말을 걸거나, 종이를 밑에서 위로 떠받치듯 내미는 것 등이었다. ‘저 좀 나아졌죠?’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니 현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알바가 끝나니 저녁 어스름께였다. 전단지를 다 돌렸다는 인증을 하고 일당을 받으러 집결 장소로 현과 함께 걸어갔다. 처음 겉모습을 보고 꺼렸던 게 미안해져서 살갑게 말을 걸었다. 


“와, 진짜 고생이었네요 우리. 이 일하면서 마음이 지치지 않아요?”

“힘들지. 그래도 일을 한다는 게 어디야.”

“다른 거 하고 싶은 건 없어요?”

“난 고졸이라 취업도 잘 안되고, 이 일도 나쁘지 않아.”

“음 그래요? 적성에 맞나봐요.”

“사람 구경하는 것도 좋고. 별생각 할 필요 없이 몸을 움직이면 되잖아.” 


나는 동의할 수 없어 가만히 있었다. 사람이 싫어지고 생각은 더 많아지고 거의 가만히 서 있는 거던데… 그는 아랑곳없이 이어 말했다. 


“일은 똑같아도 매일 하나씩은 재미가 있어.” 

“오늘은 무슨 재미가 있었어요?”

“음, 오늘은… 웃어주는 사람들도 좀 있더라. 또 어제는... 저 골목에서 고양이랑 놀아줬어.”

 

현은 거절을 한 번도 안 당한 사람처럼 웃었다. 저렇게까지 알바에 진심일 일인가? 지치지 않는 인류애와 낙관이 신기했다. 그는 알바 플랫폼, 또는 직업소개소로 일을 구한다고 했다. 단기로든 장기로든 매일 종이를 나눠주는 사람. 그의 종이엔 뭔가가 있다. 그 위에 얹어주는 기운 같은 것. 행인이 전단을 받아주는 확률이 나보다 높은 것도 그 때문이다. 



수당을 받고 나서 알바생들은 집으로 빠르게 흩어졌다. 손을 흔들던 현의 이빨 빠진 웃음이 멀어지는 순간, 작은 쓸쓸함이 보였다. 행인들은 전단지 돌리는 우리를 같은 사람으로도 안 보는 듯했다. 그런 시선을 받다 보면 마음이 안 상할 리 없었다. 내가 견딜 수 있던 건 하루만 하면 된다는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마음으로 3년을 해온 건지는 짐작할 수 없었고, 그래서 그가 좀 신경 쓰였다. 하루 일하고 가버릴 내게도 친절히 대해준 사람이라서. 



6시, 직장인들이 퇴근할 시간이었다.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지하철 인파 사이로 노곤하게 녹아들었다. 아까는 차갑게만 느껴지던 사람들 표정이 누그러진 듯 보였다. 인파에 속하게 되자 다시 모두가 동등해진 느낌이 들었다. 




살면서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너는 왜 매번 새로운 걸 해? 그것도 병이야. 한두 개를 진득하게 해야 깊어지는 거야. 오래 봐야 진짜 모습을 알게 되는 거야. 나조차 내 특이한 강박증에 대해 의문도 들었다. 매번 새로운 식당을 찾고, 애인도 연 단위로 바꾸고, 새 나라나 도시로 여행을 가는 성향. 어쩌면 어릴 때 전학을 많이 다닌 영향일지도, 엄마가 나를 구속하고 의존해 온 게 싫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한 대상에 나도 모르게 기대기 전에 다른 곳을 옮겨 다니는 게 편하다. 



내 스타일은 여러 개를 해보고 맞는 걸 찾는 것이다. 최대한의 경험을 해보면서 나와 세상을 알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낯선 환경에 자꾸 간다. 전단지 알바 이후에도 다양한 직업을 거쳤다. 과외 선생, 논술 학원 조교, 콜센터, 광고 엑스트라, 백화점 판매원, 공기업 계약직, 대기업 직장인 등. 



현은 나와 다르게 하나를 깊이 파며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됐을지도 모른다. 반복 작업을 계속하면서 전단지 주는 방식이나 마음에 변화를 줄 것이다. 어떤 배경으로 인해 그런 성향이 되었을지 알 수 없지만, 나와 현은 양극단에 위치하면서 목적은 같을지도 모른다. 내 마음이 편한 곳을 찾는 것. 현은 같은 자리에서 조금씩, 나는 여러 곳을 멀찍이 이동한다. 



요즘도 전단지 돌리는 분들을 잘 지나치지 못한다. 이런 디지털 세상에 종이 전단지가 웬 말이냐 누가 보겠냐 자원 낭비다 속으로 불평은 하지만 일단 내 앞에서 사람이 주고 있으니. 특히 궃은 날씨에는 길을 돌아가서라도 받아오고, 고이 접어 집에까지 가지고 와서 버린다. 그들 앞에서 괜히 표정이 굳지 않게 신경을 쓴다. 몰려드는 거절 속에서 마주 내미는 손이 1초라도 위안이 되면 좋겠다. 




현을 다시 볼 일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전단지의 신령 같기도 했다. 전국 어디든 전단지가 있는 곳엔 그가 있을 것 같다. 그날 보고 말 사이인 동료들의 위안이 되어주면서. 한 귀퉁이가 낡고 쓸쓸해진 자신만의 편안함을 느끼면서. 전단지 알바생은 요즘 시대에 가장 빠르게 사라져가는 직업이다. 그때 안해봤다면 경험해볼 기회가 없었겠다, 생각도 든다. 전단지 신령 현의 존재감도 희미해져간다. 머지않아 떠나온 전단지의 세상과 현을 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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