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되지 않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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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다른 운동으로, 내 몸과 놀아주고 있다. 병렬식 운동법이다. 질릴 만하면 새로운 장난감을 가져다줘야 만족하는 아이처럼, 스스로 새로운 놀잇감을 던진다. 이 루틴은 1주일 단위로 이루어지는데, 월요일은 남편과 공을 차는 풋볼 연습, 화요일은 훌라댄스 수업, 수요일은 자유 수영, 목요일은 자전거, 금요일은 헬스… 이런 식이다. 매일 헬스만 가려면 지겹겠지만, 이렇게 코스를 짜니 갓 짜낸 주스처럼 아침이 신선해지는 기분이다.
하도 찔끔찔끔 30분씩 하니 체력과 몸매 관리에 도움이 되진 않는다. 실력도 제자리걸음이다. 한 운동을 며칠 반복해야 동작에 익숙해지며 실력도 느는 것인데, 매일 옷을 갈아입듯이 운동도 갈아입으니 헤매는 게 일이다. 축구공은 여전히 발에 익지 않아 저 혼자 멀리 가버린다. 훌라댄스는 매번 안무를 까먹고, 수영은 숨을 20초도 못 참는다. 자전거는 비틀거리기 일쑤, 헬스는 숨찬 게 싫어서 설렁설렁한다.
대체 이 요상한 병렬 운동의 목적은 무엇인가? 바로, 재미 그 자체다. 매일 초보자가 되어 내 몸을 낯설게 마주하는 것. 초심자의 행운을 길게 끌고 싶은 것. 뭔가에 익숙해지기 전, 맛보기 체험판에서 끝나버리는 느낌을 즐기는 것이다. ‘재미’는 뭔가를 꾸준히 지속하게 한다. 운동에 진심인 사람들은 나를 보고 한숨을 푹 쉬며 말한다. “그렇게 깔짝대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나는 핑계를 대고도 싶다. “이 운동은 많이 안 해봤으니까 1년 지나도 못하는 게 당연해!”라고. 초보로 머무는 시간만큼 배려와 양해를 받고 있다는 기분이 좋다. 이러다 10년 동안 초보자로 머무르게 될까? 결국 성장하지 못하는 단계가 좋은 건가?
5개의 운동을 저글링 하듯이 해내려면 항상 새로운 감각을 깨워야 한다. 내 몸은 매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뻗고 굽어진다. 양쪽으로, 위아래로, 사방으로. 훌라를 할 땐 몸 전체를 써서 물결처럼 흐르듯이 움직이고, 요가를 할 땐 손가락 끝과 발 끝에 집중해 말초신경을 느껴본다. 풋살할 땐 공을 멀리 보내는 다리 힘과 수비의 흐름을 익힌다.
땀이 비 오듯 하는 날도, 땀날 새도 없이 물속에 빠지는 날도 있다. 살랑거리는 날도 뻥뻥 차는 날도 있다. 같은 허벅지 운동이라도 헬스장에서 오밀조밀 스쿼트하는 것과 자전거를 세차게 굴려 가는 느낌은 참 다르다. 다양한 운동들로 갈아 끼우면서 비교할 수 있게 된 감각들이다. 내 몸은 매일 리셋되고 꿈틀거리며 내일의 새 운동을 맞이한다. 이게 바로 병렬 운동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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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금요일, 헬스하는 날이었다.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뛰며 시계를 쳐다보고 있었다. 고개는 거의 고정돼 있는데 시계 초침과 분침은 빨리 움직였다. 그 움직임을 쫓으려 눈알이 바쁘게 돌아갔다. 러닝머신 속도 5와 8을 반복하며 인터벌로 뛰었다. 머신 앞에는 창이 있고 창유리 밖으로 나무가 보였다. 위쪽에는 TV 모니터가 달려있었다. 예능의 화려한 화면들과 자막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보이는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오직 시계만을 보았다. 시간의 흐름이 평소와 다르게 다가왔다. 빨라지는 것 같기도, 느려지는 것 같기도 했다. 8의 속도로 빨리 가다 보면 오히려 느리게 보이는 것, 과학은 잘 모르지만 이런 게 상대성 이론인 건가? 평소에도 나는 시간 감각, 상대성에 대해 예민한 편이다.
주어진 짧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은 병렬 인생을 사는 것이다. 여기서 ‘병렬’이란, 여러 개를 한꺼번에 보는 것을 말한다. 멀티 태스킹과도 비슷하다. 조금씩 나눠 하면 여러 개를 소화할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책 한 권을 읽게 될 며칠 동안 다른 책을 못 읽는다면 얼마나 슬플까? 병렬 독서를 하면 참을 필요가 없다. 나는 1시간에 5권 정도를 나눠 읽는다. 1권당 10분씩을 할애해서 균형 잡힌 독서를 한다. 이런 식으로 역사책, 소설, 에세이, 과학책을 하루에 섭취한다. 비타민, 오메가3처럼 영양제를 골고루 섭취하듯, 다양한 분야를 뇌에 입력한다.
처음부터 병렬식으로 산 건 아니다. 드라마 한 시즌을 연달아 보고, 책 1권을 며칠에 걸쳐 독파했다. 운동은 헬스장만 주 3일 정도 갔다. 그러다 보니 쉽게 지치고 질렸다. 하나에 몰입하려면 집중력이 더 필요했고, 떨어져 가는 흥미를 계속 추켜올려야 했다. 내 약한 집중력과 빨리 질리는 성격을 깨닫고부터, 본능적으로 병렬을 선호하게 됐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부터 잡지를 좋아했다. 여러 잡다한 정보와 사진들이 한 권에 들어있어서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골라보면 되었다. 마음에 드는 지면은 찢어서 스크랩북에 붙였다. 주로 패션, 건강 상식, 인테리어, 화장법, 신간 리뷰 등이었다. 스크랩북은 두터워지고 나만의 잡지가 되었다.
어떤 분야든, 아무리 부담스러워도 야금야금 하면 괜찮아진다. 그래선지 하루의 시작에도 아주 좋다. 졸리고 무거운 몸이라도 일단 매트 위에 올라서서 명상을 하거나, 책장이라도 펼친다. 나만의 루틴을 짜서 돌리다 보면 정신도 깬다. 하품을 하고 산소를 들이키면서 점점 명징해진다. 뇌 속에서 해가 뜨는 것 같다.
가끔은 영화나 드라마도 하루에 10분씩 끊어서 본다. 누군가 이런 패턴을 보고 “무슨 웹드라마 보냐?”고 했다. 드라마를 1시간 보려면 통으로 시간을 빼야 하지만, 먼지만 한 시간이라도 잘라서 모으면 어느새 다 보게 된다. 유튜브 볼 땐 더 웃기다. 구독하는 채널이 많으므로, 한 채널당 5분씩을 본다. 5분이 되는 순간 칼같이 끊고 다른 채널로 넘어간다. 그럼 하루에 10개 채널을 50분 동안 즐길 수 있다.
더디지만 여유롭게 완주하는 게 좋다. 일상생활에 방해되지도 않고. 효율과 시간 분산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다. 큰 덩이의 알약을 삼키면 목이 아프고 불편한데 작은 알약들 여러 개를 삼키면 부담이 없는 것과 같다.
이렇게 살면 집중력이 끊기지 않냐고? 생각보다 적응되면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짧은 시간을 극대화하기 위해 초집중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저번에 혹시 내가 ADHD는 아닐까 해서 검사는 받아봤다.
“가까울 뿐이지 ADHD는 아니에요.” (도대체 가까운 건 뭐란 말인가?)
나는 더욱 안심하고 이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병렬 글쓰기는 어떨까? 하루에 여러 글을 건드리는 것. 이것의 장점은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눈으로 보고 고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좋은 문장, 컨셉은 여러 날에 걸쳐 떠오를 때가 많아서 기간을 길게 잡고 완성한다. 내가 먼저 쪼개서 소화를 해야 좋은 글이 나온다. 그런 원리로 문장도 짧게 짧게 쳐내려고 노력한다. 말할 때도 짧은 말 안에 핵심을 담으려고 한다. 지금 이 글도 병렬 글쓰기법으로 쓰고 있다. 여러 파일을 번갈아 보면서 고친다.
덩어리를 쪼개는 건 인생의 많은 측면에서 이뤄진다. 쪼개고 쪼개다, 꺼풀을 벗기고 벗기다가 무엇이 남을까? 모든 걸 쪼개고 남는 핵심들, 가장 최소 단위의 것. 그건 언어의 형태소처럼 명징하게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