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살아있는 꿈. 부스스 깼다가 다시 잠에 빠지는 마음이 벅찼다. 옆에 누운 엄마를 깨워 "엄마, 아빠가 살아 있었어!"라고, 이 소식을 빨리 전해야 했는데 온몸이 무거워 금세 꿈속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잠깐 눈을 뜬 순간 더 좋은 쪽을 선택한 건지도 모른다. 아빠가 살아 있다니.
엄마와 나와 동생이 순서대로 병원의 수술실에 들어가 아빠를 만났다. 예전에는 그 유리문 뒤에 아빠가 죽어있었는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침대에 누운 아빠 얼굴이 그때와 같았지만 살아있었다. 아빠! 아빠가 죽은 줄 알았어! 정말 아빠 맞아? 맞다고 했다. 좀 야위어 있었지만 분명히 아빠였다. 아빠가 환자복을 들어 올려 배에 난 수술 자국을 보여줬다. 배를 가른 흔적이 컸다. 그랬구나. 지난번에 누워서 숨 쉬지 않던 시체는 아빠를 닮은 거지 아빠가 아니었구나. 벌써 죽어있는 바람에 아무것도 묻지 못했었어. 정말 아빠가 죽은 게 맞냐고 물어도 대답을 들을 수 없었어. 아무래도 이상하다 했지. 살아있었구나, 살아있었어. 연락이 안 돼서 정말 죽은 줄 알았어. 아니었구나. 다행이다. 다행이다. 우리는 너무 기뻐서 "아빠가 죽은 줄 알았어!"라고, 마치 아빠가 못된 장난을 치기라도 했다는 듯이 기쁜 원망을 담아 그 말을 몇 번이고 외치고 웃었다. 그렇게 웃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아침이었다. 종일 벅찬 감정 그대로 살았다.
꿈이라는 게, 진짜 존재하는 다른 세상의 일부가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나는 거기에서 냄새도 맡고, 촉감도 느끼고, 자주 가는 장소까지 있다. 여기 현실에선 본 적 없어도 꿈에선 익숙한 골목과 길. 언제든지 당황하지 않고 아주 익숙하게 다닐 수 있는 나의 낯선 장소들. 한 번은 꿈에서 노란 커스터드 크림으로 속이 꽉 찬 빵을 몇 개고 먹다가 레몬이 들어간 크림 빵으로 손을 뻗어 한 입 베어 물려는 순간 잠에서 깬 적이 있는데, 놀랍게도 잠에서 깼는데도 입안에 달콤한 크림 맛이 가득했다. 그날 빵집에 들러 크림빵을 종류별로 사 모았지만 꿈에서 맛본 그 맛은 찾을 수 없었지. 또 언젠가는 바다에서 용오름이 수십 개씩 하늘로 오르는데, 수면 아래로 셀 수도 없이 많은 무지개가 서로 얽혀 아른아른 빛나는 걸 보기도 했다. 내가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어디서도 본 적 없고, 볼 수 없을 광경. 정말 그런 세상이 있다면, 미친 듯이 황홀한 크림빵과 수백 수천 개의 무지개와 어디와도 닮지 않은 건물과 골목이 있는 세상이 있다면, 거기엔 우리 아빠도 죽지 않고 살아있다.
누군가 죽고 없다는 감각이 예전처럼 생생하지 않다. 뚝 끊어지는 것. 그렇게 끝날 수는 없는 건데 그렇게 끝나는 것. 이제는 우리라고 할 수 없이 나 혼자뿐인 것. 뭘 더 하고 싶어도, 추억이라도 더 쌓고 싶어도 그럴 수 없게 된 것. '인연'이 거기까지라는 것. 앞으로 내 인생에 어떤 일이 있든 그건 '우리 것'은 아니라는, 말도 안 되게 캄캄한 기분. 너무 캄캄해서 눈물도 나지 않는 것. 이렇게 적어가며 되새겨보아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 생명이나 숨 없이 누워있는 아빠를 너무 잠깐 봤고, 가루가 담긴 유골함을 안고 있었던 것도 길지 않았고, 더욱이 그게 아빠라곤 생각할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금세 무뎌졌겠지. 무뎌지는 게 무서웠던 마음까지도 무뎌졌다. 게다가 나는 꿈속에서 모든 걸 이어왔다. 우주 저 멀리 있어 아주 오래 걸려 전파를 주고받던 아빠와 시골의 뜨끈한 온돌방에 누워 TV를 보던 아빠와 그런 아빨 꼭 안던 감촉, 아빠 어깨에 닿았던 내 얼굴과 그때 흘린 눈물의 차가움이 아빠의 죽음보다 생생하다. 그리고 이제는 아빠가 오랜 실종 끝에 살아 돌아와 저기 어느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이다. 어딘가에 입원해있다, 우리 아빠가.
돌아보기 싫어 묻어둔 장면들이 나타날 땐 "꿈 주제에."로 일축하고 어떻게든 꿈 밖의 현실에 발을 디디려고 힘을 줬으면서. 오늘처럼 이렇게 오래 기쁜 장면 앞에서 나는 어떻게든 그 세계 사람이 되고 싶어 발을 구른다. 그게 내 현실이기를 바란다. 내 현실의 일부라도 되기를 바란다. 정말로 아빠가 살아있는 세상, 그리고 거기에 사는 나. 정말로 그런 곳이 있고, 거기에 내가 있기를.... 이 진짜 같은 꿈들이 내 삶에 끼어들어 나를 위로하는 건지, 치유하는 건지, 그냥 무뎌지게 해서 이 삶을 살아가게끔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뭐가 되었든 상관없다. 그냥 어느 날 아빠를 안고서 "아빠, 아빠가 죽어서 아주 오래 못 보는 꿈을 꿨는데, 너무 길어서 진짜인 줄 알았어."라고 할 수만 있으면... 그럴 수만 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