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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 Jun 06. 2021

애도의 끝자락


  "아빠 어디야?"

전화기 너머로 일곱 살쯤 된 어린이의 높고 명랑한 소리가 났다. 아빠 어디야? 아빠 언제 와? 맞아, 아빠한테 전화하면 나도 녹음기라도 튼 듯 저 소릴 했었지. 어디냐고, 언제 오느냐고. 아주 어려서는 정말로 궁금해서 그랬고, 조금 커서는 엄마가 시켜서 했고... 더 커서는 딱히 더 나눌 얘기가 없어서 그랬지. 작업 중에 내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은 기사님은 "예은이 원할 때 언제든 가지~"라고 목소릴 낮춰 대답했다. '네가 원하면 언제든 갈게'라니! 그 다정한 말에 예은이는 "어~알겠어!"하고 더는 보채지 않았다. 듣자 하니 예은이는 정말로 아빠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좋겠다, 아빠 있어서. 통화를 마치고 멋쩍게 웃는 기사님을 향해 나도 흐흐 웃으며 생각했다. 


  우리 아빠는 어디 갔지, 언제 오지, 이제는 속으로도 묻지 않게 됐다. 어디 있는지 나야 모르지, 그게 중요한가. 어딘가에 있으면 그걸로 됐지. 어딘가엔 있으니까. 언제 오는지도 나야 모르지. 아마 아빠가 오긴 어렵고 내가 가는 편이 더 쉽다고들 하던데... 문제는 그게 어딘지를 모른다. 얼마 전에 나는 아빠와의 추억은 하나도 없는 새집으로 이사를 왔고, 아빠는 이 집에 와본 적이 없다. 나도 아빠가 있는 곳에 가 본 적이 없으니 이제 우린 만나려면 마음이 어지간히 통해서는 안 된다. 강력한 텔레파시 같은 것이 있어야... 실없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다 문득 아빠를 향한 나의 애도가 끝자락에 와 있다고 느낀다. 이제 내 속에 아빠의 빈자리가 없는 것이다. 


  빈자리가 너무 커 못 견뎌 하던 날에 만난 문장이 있었다. 상실을 겪은 이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이었는데 '그가 다시 네 마음에 원래 있었던 만큼 자리 잡을 때까지...' 더 부드럽고 시적인 말이었는데 이렇게 멋없이 풀어 놓으니 심령 서적의 한 구절이었나 싶지만... 아무튼 요지는 그랬다. 내 마음에 난 공허한 빈자리를 그 빈자리의 주인이 다시 채우는 때가 올 거라는. 그러니 그때까지 텅 비어있는 듯한 시간을 잘 견디길 바라, 라는 말을 함축하고 있었던 것도 같다. 그리고 그 말이 맞았다. 


  아빠가 다시 내 마음에 원래 아빠의 자리만큼을 차지하고 차올라 있다. 나는 언제 어디서든 '아빠 있는 애'처럼 행동하고, 문득 그가 더는 이 세상에 몸을 가진 존재로 살아 있지 않다는 걸 깨닫고 잠시 가슴 저려 하다가, 아주 맹렬하게 그 사실을 잊어버린다. 엊그제 밤에도 그랬다. 이번에 새로 마련한 가전을 훑어보며 '아빠한테 보여줘야지' 했다. 아빠, 요샌 가스레인지 안 쓴대. 이거 기가 막히지. 내가 고른 거야. 어때, 이거 되게 예쁘지. 별 게 다 있어 진짜! 그러면 아빠는 흐뭇한 얼굴로 배를 내밀고 돌아다니며 물건들을 쓰다듬는다. 이건 어떻게 만든 건가 요리조리 들여다본다. 자기가 고쳐주거나 더 쓰기 편하게 만들어 줄 것은 없는지도 꼼꼼히 살피고... 


  이 행복한 착각은 '아, 나 아빠 없지' 송곳에 찔려 금세 터졌다. 그러나 오래 가슴 저릴 것도 없이 금방 괜찮아졌다. 언제부턴가 그렇게 됐다. 슬프지도 외롭지도 않지, 풍선껌이 터진 정도의 일이다. 입술 밖에서 팡 터진 풍선껌에 잠깐 놀란 뒤 능숙하게 회수해 다시 오물대는 것과 비슷한 일. 나는 잠깐 눈을 끔뻑대다 아무렇지도 않게 침대로 기어들어 갔다. '나 아빠 있는 것처럼 구는 것 봐라' 우스워하며 누웠다. 그리고 푹 잤다. 꿈도 꾸지 않고. 


  아빠의 빈자리는 결국 다시 아빠로 채워질 것이었고 다른 것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그냥 비워두길 잘했고, 그냥 멍청히 울기를 잘했고, 눈물 같은 걸 참거나 억지로 마음을 동여매지 않기를 잘했다. 이렇게 아빠는 다시 오는 것을. 아주 오래 걸려서라도, 예은이 아빠처럼 내가 원할 때 언제든 오는 것을. 어디 있는지는 몰라도 결국 지금 여기에도 있는 것을. 나는 이제 좀처럼 울지 않고, 여전히 아빠에 관해 쓰는 날이 있지만 그뿐이다. 한 글자 한 글자 눌러 쓰고 나면 가끔 울지만, 다시 또 가볍게 풍선껌을 씹는다. 정말로 혹시라도 아빠가 여길 들른다면 날 보고 웃겠지. "너 네 살 때랑 똑같다" 하겠지. 길 잃고 사거리 시계 방에 들어가 빙글대는 의자 위에서 껌을 씹었던 네 살. 시계 방 주인에게 아빠 이름과 전화번호를 대고, 황급히 달려온 아빨 보고 "아빠, 왔어?"라고 말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아빠 손을 잡고 집으로 갔던 네 살. 나는 딱 그때처럼 매일 명랑하게 풍선껌을 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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