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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 Jul 26. 2021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분노의 정점은 대학교 때 찍었다. 우리! 집엔! 왜! 돈이! 없냐구!! 매일매일 화가 났다. 집안 사정이 어떻든 모두가 같은 옷을 입던 고등학교 때와는 피부에 와 닿는 상황이 너무 달랐다. 나는 자주 주눅이 들었고 쪼그라든 만큼 크게 폭발했다. 그때마다 불똥은 아빠에게 튀었다. 그가 주로 우리 집에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내 뇌 회로는 매번 돈으로 시작해서 아빠로 끝났다. 아주 자연스럽게. 어딘가 뇌 속에 땜질이 잘못된 모양이었지만 쉽게 바로잡아지지 않았다. 얼마 얼마가 필요하다는 내 말에 아빠는 오래 생각하고 대답했는데, 나는 그게 미워서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불을 피웠다. 온 마음이 잿더미가 될 때까지 태우고 태우고 또 태우고, 아빠의 능력 없음에 저주를 퍼부었다. 그러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아빠가 능력이 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르면 그때부터 검게 탄 잿더미를 마음 밖으로 퍼 날랐다. 나의 스물 몇 살은 이것의 끝없는 반복이었던 것 같다. 매번 머쓱해지면서도 몇 번이고 같은 짓을... 그것도 구슬땀까지 흘려가면서. 마음으로는 우주 끝까지 화를 쏘아 올린 다음 다시 지구로 회귀 시켜 지구 전체를 터뜨리고 싶었지만 늘 연료가 부족했다. 처음부터 화낼 일도, 아빠를 미워할 일도 아니었으니까. 


  돈이 없다는 게 능력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인 세상을 살고 있지만, 할 줄 아는 게 많은 아빠를 둔 덕에 그 말에 오랫동안 의문을 품어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둘이 같은 말은 아니어서. 좀 아닌 것 같애, 아무래도 좀 아닌 것 같애, 했다. 아빠는 시를 쓰면서 수학을 가르쳤고, 난을 심고 화분을 살리고, 나무를 깎고, 가구를 만들고 고쳤다. 버리고 새로 샀으면 좋겠을때조차 멀끔히 고쳐버려서 좀 난감할 만큼 잘 고쳤다. 오래 잡고 있던 분필을 놓은 뒤엔 시골로 내려가 율무를 심었고, 위에 그렇게 좋다는 마도 심었다. 엄마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책도 안 읽으면서 어떻게 시를 쓴다니, 공부도 안 하는데 고등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친다니, 자기가 농사일을 해 본 적은 있다니? 그런데 용케 잘했다. 아빠가 가르친 학생들은 서울대도 가고 의대도 갔다고 했다. 율무는 몇 자루도 넘게 수확했고, 마도 가루로 만들어 팔았다. 그런데도, 돈이 많이 쌓이지 않았을 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하는 일이 전부 돈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가능하면 돈으로 만들고 싶지만 꼭 돈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말을 아빠에게 해줄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아무튼 나는 말년에 좀 주눅 들어있던 아빠 얼굴이 생각나면 슬프다. 마치 내가 처음 대학에 가서 지었을 얼굴 같은 걸 육십이 다 되어서 하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상품이 어느 한계점을 지나 기하급수적으로 생산되면 사람은 무력해진다. 자기 손으로 농사를 지을 수도, 노래를 부를 수도, 집을 지을 수도 없게 되는 무기력 _ 33페이지에서 


  60년대에 서울 아닌 곳에서 태어나 농사짓는 부모 밑에서 자란 내 부모와 나의 사고의 폭에 얼마만큼 차이가 있는가를 보면, 좀 두렵다. 강산이 두 세 번 바뀌도록 함께 살았지만 삶의 필요에 반응하는 태도에는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는 것 같아서. 나는 "이거 사야 돼, 저거 사야 돼, 이게 필요해, 돈이 있어야 돼"하는 사람이 되어있고, 내 부모는 없으면 없는 대로, 또는 없으면 만들거나 구해다가 쓰던 세상과 그런 걸 하려야 잘 안되는 세상 사이에 끼어 있다. 내겐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것을 굳이 돈으로 값 매기는 정도의 상상력밖엔 없다. 난 그런 사람으로 잘 자랐다, 딱 이 세상이 원하던 사람으로. 그런 내가 크는 만큼 내 목소리도 점점 더 커지고 엄마 아빠는 쪼그라든다. 자식이 점점 더 큰 소리로 돈 다오, 돈 다오, 돈 주오, 돈으로 주오, 하는데 무력해지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을까. 나를 낳아준 두 사람의 얼굴에서 조금씩 무력감이 엿보이게 된 것은 세상이 너무 변해서... 세상이 너무 변해서. 다 그런 탓이라고 불효자는 말하고 싶다. 


  좀 극단적인 얘기지만 아빠의 장례식이 끝나고 작은 가방 하나를 꽉 채운 부의금을 봤을 때, 나는 '이게 필요한 건 아니었는데' 싶어져 울었다. 돈이 너무 많았다. 꼭 그런 것도 아닌데, 꼭 아빠의 삶을 바꿔서 받은 듯이 느껴지는 돈 앞에서 벌을 받는 느낌이었다. 지난날 언젠가 아빠가 나가서 돈을 벌어왔으면 했던 것, 아빠가 자기를 바꿔 돈을 가져왔으면 했던 마음을 품었던 것에 대한 벌. 꼭 그런 것도 아닌데도 그때는 그랬다. 그리고... 사람이 그 정도 울었으면 이제 달라졌을 법도 한데... 나는 얼마 전부터 하나 남은 엄마가 어딜 나가서 일을 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독사처럼 엄마를 향해 고개를 들고 있다. 정말이지, 자식 키워놨더니 진짜 공포 영화가 따로 없고 나는 옷장 속 처키다. 


  그래도 이 처키에게 하나의 희망이 있다면 그 자신이 부적절한 노동 - GDP에 잡히지 않는 - 의 대가가 됐다는 것.... 종일 성경을 읽고, 사람들을 챙기고, 기도하는 엄마를 내가 아주 가끔만 미워하는 건 먼저 간 아빠에 대한 속죄 비슷한 것이자 돈 못 버는 나에게 보내는 응원이다. 나는 가끔 엄마의 곤란해하는 얼굴에서 내 얼굴을 본다. 시급 8천몇백 원 남짓의 일도 하지 않은 오늘, 수입이 없으므로 지난 24시간이 온통 무쓸모가 된 것 같은 순간의 얼굴. 조금은 억울하고, 조금은 슬프고, 많이 혼란스러운데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는 얼굴. "엄마가 너 아픈데 돈을 못 줘서 미안해"라고 울면서 눈물을 훔치던 날의 얼굴. 엄마에게서 내 얼굴이 보여서 나는 더 이상 처키짓을 할 수가 없다. 이제 우리는 그냥 둘이서 서로를 끌어안고 살면서 그런 얼굴은 하지 말자, 그렇게 슬퍼지지 말자. 다행히 나는 이제 좀 용기가 있어서 "왜 돈이 없냐고!"라는 험하고 막돼먹은 말 대신 "엄마, 나 돈이 없으니까 마음이 초조해져서 힘들어"라고 말할 줄 아니까, 전보다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엄마, 나 월 100도 못 벌어서 어떡해.
  엄마, 나 여기서 일하고 싶은데 내 몸으로는 지원도 해볼 수가 없어.나도 돈 많이 벌어보고 싶어. 나도 돈 많이 버는 일 해서 인정받는 느낌 같은 거 받아보고 싶어. 지금은 그냥 내가 바보같애.
  엄마, 돈이 없으니까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초라한 느낌이 들어.
  가끔은 좀 울면서 이렇게 말하면 엄마는 백이면 백 이렇게 대답한다. 유튜브에서 이근철 쌤이 가르쳐 준 미국 말로.
  Sky is the limit. The point is that I love you. 아직 할 수 있는 게 엄청 많아. 그리고 중요한 건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거야.
  그럼 나는 이렇게 대답하자.
  엄마, 우리 행복하게 살자. 매일 전기 스위치를 열심히 끄고, 콘센트를 모조리 뽑고 다니면서 낄낄대자. 가끔 찡찡 울고, 그래도 미워하지 말고. 돈이 좀 없으면 어때. 돈 그딴 거 엄마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야. 각자의 삶에 중요한 일을 하자. 시간이 없으니까. 그래도 우리 부자야. 아빠가 집으로 바뀌었잖아. 그러라고 한 건 아니었지만?

  아직은 주로 속으로 말하고, 가끔씩 침대에 누워서 조금씩 꺼내고 있는 말. The point is that I love you. 


  내가 삶에서 진짜로 경험해야 하는 건 뭘까? 전부 돈으로 값 매기는 세상에서 나도 한 번쯤 내 능력을 돈으로 바꿔 보고 싶지만 그것뿐은 아니다. 그것뿐이 아니면 뭐가 더 있다는 건지 내 앞에 안개가 자욱해서 글자로 적을 수는 없지만... 확실한 건 오늘도 GDP에 조금도 잡히지 않은 삶을 살았는데 좀 즐거웠다. 오늘 밤 저승사자가 침대 옆에 까맣게 다가오면 하루만 더 있게 해달라고하고 싶을 만큼. 나는 지금 여기서 만족하지 않을 거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만족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응. 그렇다.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이반 일리치 지음, 허택 옮김, 느린걸음, 2014


고압 전선에서 흘러나오는 빛과 부드러운 화장지가 없다는 이유로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에게 가난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기대는 커지는 반면, 자신의 능력에 대한 낙관적 믿음과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은 급속도로 사그라졌다. _23쪽


"너를 응원하고 있어"라는 말을 이 책으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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