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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 Jul 18. 2021

세상의 모든 시간

  엄마, 이거 아니야! 이게 있으면 안 된다고~!
  전설의 2002년에 나는 중2였고, 학교에서 다 같이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응원을 한다는데 우리 집에 있는 빨간 티셔츠에 그려진 붉은 악마가 묘하게 그 붉은 악마가 아닌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게 아니니까 다른 걸로 사달라고 난리법석을 피우는데 아빠가 문제의 부분을 지워주겠다며 화장실에 대야를 꺼내 놓고 티셔츠의 프린트된 부분을 수세미로 지우기 시작했다. 고마웠... 기는 개뿔. 그 집 중2는 그날 진짜 미칠 뻔했다.
  새로 사주란 말이야! 어디서 받은 거 말고 새로 사줘!!
아, 이 거지 같은 기억이 잘 잊히질 않는다. 우리 엄마 아빠도 참 대단한 사람들이지... 실제로 눈이 돌아가고 있는 딸 앞에서 어쩜 그리 강단 있게 수세미질만 할 수가 있어. 그것도 웃으면서. 이 싸움에서 완패한 나는 다음 날 별 수 없이 그걸 입고 학교엘 갔고, 아-무도 티셔츠의 무늬 같은 것엔 신경 쓰지 않았다. 


  엄마는 뭐든 얻어오고, 아빠는 뭐든 만들었다. 옷장을 열면 얻어온 옷 컬렉션, 방문을 열면 아빠가 주워다 만들어준 가구 전시장. 난 그게 그렇게 싫었다. 돈 있으면 새 걸로 살 수 있는데, 왜 다 이런 것뿐이냐고. 집에 놀러 온 친구 하나가 내 책상을 보며 한 말도 오래오래 내 마음에 한몫했다. "이걸 왜 받았어? 너희 집이 거지야?" 그 앤 정의로움이 가득 묻은 얼굴로 화를 냈었다. 지금의 나라면 "어엇... 몰랐어?" 했을 텐데, 그땐 얼굴만 붉히고... 아무튼 돈 뒤에 있는 것을 볼 줄 몰랐던 시절엔 돈 주고 사는 일만이 쿨하게 느껴지곤 했다. 원래 돈은 서로 뭔가를 주고받는 걸 대체하는 거라는 걸 모르고. 돈 뒤에는 우리 아빠가 분필 가루를 먹는 시간과 우리 엄마가 꽈배기를 파는 시간이 들어있고, 내가 사는 그 어떤 쌤-삥 신상도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건데... 돈 뒤에 있는 손길들을 생각할줄도, 볼 줄도 몰랐던 그때는 세련되고 깨끗해 보이는 상품들이 진공의 어느 기계에서 뚝 떨어지는 줄 알았다. 그 생각을 최근까지도, 그러니까 아주 오래 하고 살았던 것 같다. 


  돈이면 안 되는 게 있나? 여전히 세상엔 돈으로 못 사는 게 거의 없지 싶다. 그런데, 그래도 내 책상 밑에 있는 발받침만은 확실히 돈으로 못 사는 것이 맞다. 자기 딸이 의자에 앉아서 발을 허공에 띄우고 흔드는 걸 발견하고, 딸의 다리가 더 길어질 거라는 오만 대신 '가망이 없다'는 처절한 자각으로 만들어 놓은 것. 이제 아빠가 만든 건 이거 하나 남았다. 지난번 살던 집 베란다 천장의 빨래 건조대나, 싱크대와 냉장고 사이의 뜬 공간을 메운 수납장도 아빠가 만든 거지만 그건 이사 오면서 뜯어내거나 두고 와야 했다. 속이 좀 쓰렸다. 아빠가 살아있었다면 속이 쓰릴 일도 없었을 테고, 시트지가 다 벗겨진 발발침도 얼씨구나 내다 버렸겠지만, 이게 이제는 어떻게 해도 바꾸거나 버릴 수 없는 물건이 되어버려서 나는 새 시트지를 한 장 사려고 한다. 누군가의 마음이 묻고 정성이 묻고 시간이 묻었는데, 그 누군가가 더는 시간을 살지 않게 되어버리면 그 물건도 딱 거기 멈춰서, 좀 가벼운 말로 일컫자면 한정판 같은 것이 된다. 우리 집 발받침은 한정판. 이제 안 나옴. 어디서도. 


  나는 이번에 이사 온 집도 좋고 거기 들인 새 가구들, 새 가재도구들도 좋지만 그게 어딘지 모르게 한도 끝도 없이 사람을 공허하게 한다. 솔로몬이 저 혼자만 부귀영화 다 누리고 헛되다, 헛되다 했던 게 좀 재수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의 나도 누군가에게는 좀 재수 없겠지만 아무튼 마음이 그렇다. 오래된 것들과 그동안 끌어안고 살았던 것들을 많이 버렸고, 낡은 것들 대신 새것으로만 집을 채웠는데 처음에만 신났고 그다음엔 외롭다. 돈이 좀 더 필요하다고 느꼈고, 돈이 없으면 이 집을 영영 '완성'할 수가 없을 것이니까 우습게도 좀 비참한 기분까지 들었다. 집에서 새 물건들 들이며 지내는 기분이 어떠냐고, 새 출발이 어떠냐고 누가 물어오면 "좋다"고 멋쩍게 대답했지만 사실은 묘하게 찜찜하다. 이제 그만 사고 싶다. 그러기엔 부엌칼까지 버리고 이사를 왔기 때문에 머리를 쥐어뜯을 수밖에 없는 거지만... 아무튼 내가 돈 주고 뭘 사는 것 아니면 아무것도 못 하는 멍청한 인간임이 매 순간 증명되는 지금을 견딜 수가 없다. 소비자 아니고서는 할 역할이 없는 인간. 그렇게 열심히 소비하는데도 집이 채워질수록 나는 쓸모없어지는 기분이라니! 지옥이 있다면 지금 여기일 것이다. 


  더 필요한 건 돈이 아니라 시간이다. 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 웃고 떠드는 시간. 울고 짜는 시간. 뚜드려 고치고 매만지는 시간.... 뛰어넘어 도착할 수 없고, 정해진 그대로 리얼-타임을 살아내야만 얻을 수 있는. 그렇게 시간이 좀 흘러서 마룻바닥이 패이고 까지고, 테이블에 기스나고, 새로 산 부엌칼로 뚜껑 달아난 통조림통 몇 번 찌르고 나야 내 공허함도 가라앉을 것이다. 이 집의 모든 것들이 시간을 머금어서, 가만히 보고 있으면 지나간 시간이 쪼르륵 흘러나올 때가 되어야 좀 사는 것 같을 것이다. 지금 내 옆에서 열심히 돌아가고 있는 누런 한일 선풍기가 하고 있는 게 바로 그것이다. 내 마음의 유일한 위안. 버리지 않기를 참 잘했지. 이게 이렇게 누렇게 되기까지 우리 식구 넷이서 얼마나 눌러댔을 것이냐. 주로 발가락으로 눌러 이렇게 되었을 선풍기에선 바람과 함께 지나간 여름들이 쏟아진다. 틀어놓고 자면 죽는다는 괴담과 그 괴담 때문에 방문과 창문 단속을 하던 모습, 모기장을 치고 사람도 숨 막혀 죽을 것 같은 동그란 모기향을 틀던 기억까지.... 


  시간을 들인다.
시간이라는 것을 들여온다.
내 삶에, 내 물건에, 내가 하는 일에 시간을 들여온다.
시간을 묻혀서 숙성한다.
정성을 쏟아서 나도 모르게 땀방울이 도르르....
이런 문장의 삶을 살고 싶다. 지금은 손으로 할 줄 아는 게 없어 온통 돈만 들이고 있지만 5년 뒤, 10년 뒤에는 다를 것이다. 다르고 싶다. 시간을 들이는 일에 관해서는 지금보다 나은 인간이고 싶다. 산다는 게 사실은 전부 시간을 들이는 일이라는 걸 알고 싶다. 화분에 대파 일곱을 심어 놓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시간 - 느리게 사는 지혜에 관하여, 토마스 기르스트 지음, 이덕임 옮긺, 을유문화사, 2020 


가치가 있는 일은 시간을 필요로 함을 우리는 안다. 하지만 행동이나 말을 보면 알 수 있듯, 우리는 너무 자주 정신없이 행동한다. "잠깐 시간 좀 내줄래요?" "잠깐만 좀 볼까요?" 등등 직장이나 집에서 얼마나 자주 '잠깐'이라는 말로 문장을 시작하는가? 불쾌함이 스멀스멀 번져간다. 어디에도 진정 존재하지 않고 아무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사는 듯한 불쾌한 느낌. 몸과 마음을 다해 전념하는 대신 모든 일을 그저 건성으로 해내면서도 결코 충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병. _ 서문 중에서 


  이 책에는 "오랜 시간"에 관한 짧은 글들이 스무 편도 넘게 있습니다. "오래 이어질 만한 가치, 시간의 빚을 진 것들"에 대한 책입니다. '혼자만의 사색과 느림, 혹은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들에 대한 글'이라고도 풀어 소개 돼 있네요. 저에겐 무엇보다도 서문에 등장한 '불쾌함'이라는 단어가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빠르고 급하게, 가슴 밑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머리 위에서만 돌아가는 듯한 제 일상을 표현한 단어로 잘 맞는다고 생각하면서요. 이 책이 그 불쾌함을 완전히 씻어주지는 못했지만 그걸 책의 역할이라 짐 지울 수는 없으니까, 그저 알면서도 모르고 있었던 마음에 이름이 붙은 것만으로도 시원했습니다. 불쾌함, 이 감정은 불쾌함이었구나. 이걸 어떻게 씻어낼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뭐라도 해 보려는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책은 신간 도서 코너에서 발견하자마자 목차도 들춰보지 않고 빌렸는데, 동명(All the time in the world)의 다큐멘터리가 참 좋았던 기억이 나서 그랬습니다. 아무도 없는 숲으로 들어가 1년을 자급자족하며 사는 다섯 식구를 담은 다큐멘터리인데, 집도 만들고 창고도 만들고, 놀이도 스스로 만들어 놀아요. '세상의 모든 시간'이라는 제목이 정말 깊이 와서 마음을 찌르는 다큐였어요. 한국어 제목은 <숲속에서*>로 EBS 국제다큐영화제로 한국에 소개된 뒤, 아쉽게도 지금은 볼 수 있는 채널이 없다고 해요. 눈물... 아래 링크에서 자막 없이 보는 방법밖에 없다지만 깊이 들숨, 오래 날숨 쉬고 싶은 분들께 추천합니다.  


*2014년 작, 캐나다 다큐멘터리, 수잰 크로커 감독


https://vimeo.com/ondemand/allthetimeintheworld1/405843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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