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무슨 방법'이라고 써 놓은 글은 항상 인기가 많아 보인다. 딱히 뾰족한 수가 없는 것 같은 일도 일단 '방법'이라 몇 가지 써놓으면 정말 그게 통한다고 믿고 싶어지기 때문에 나도 한 번 제목을 <여름을 보내는 방법>이라고 적어보았다. 되게 여름에 통달한 사람 같고 그런 기분이 든다. 여름 전문가 느낌이랄까? 나는 겨울에 태어났는데 자란 다음엔 여름 전문가라니. 막 운명을 이긴 것 같고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제목만 무슨 무슨 방법이라고 써 놓고 아무것도 제시하지 않는 돌팔이는 아니다. 이 글을 쭉 읽어내려가다 보면 자연히 알 될 것이다. 아, 이 사람이 진짜 운명을 좀 이기긴 했구나, 인정하는 순간이 올 거라 이 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여름을 보내는 것의 핵심은 잊는 것이다. 무엇을 잊어야 하느냐. 바로 더위와 시간. 이 두 가지를 잊어야 한다. 지금 내가 덥다는 것을 잊고, 분명히 봄이나 가을에 비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은 여름의 시간을 잊어야 한다. 다행인 것은 이제 대서가 지나갔다는 것. 큰 더위의 고비를 넘겼다는 것. 다음 절기는 입추다. 드디어 가을의 문이 저 앞에 삐그덕삐그덕 열리고 있다. 몇 년 간 느껴본 바에 의하면 입추가 되면 정말로 귀신같이 시원한 느낌이 나던데, 남은 여름을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잘 견디면 되겠다.
참, 나는 대서에 남의 집에 놀러 갈 일이 있었다. 그날 오후 3시 반, 버스 정류장에 2-3분쯤 서 있는 동안 대서가 왜 대서인지, 이제는 귀신이 된 우리네 조상들이 왜 '아주 큰 더위' '빅 핫 Big hot'이라고 날을 정해놓고 경고했는지 알게 되었다. 정수리에서 김이 나고, 팔이 뭐에 물린 것처럼 따끔대는 것이 아주 끔찍한 더위였다. 서울의 버스 중앙 차로는 대서에 서 있을 곳이 못 된다. 어디에도 그늘이 없다. 교통이 만든 지옥. 우리 엄마한테 문자 피싱 걸었던 놈들은 대서에 다 중앙 차로에 일렬로 세워 놔야 한다. 그러나 오늘 복수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한 건 아니니까....
중요한 건 염소다. 대서에는 염소 뿔도 녹는다고 했다. 일단 염소는 대서를 전후해서 무조건 그늘로 피신할 일이다. 여름을 보내는 첫 번째 방법. 염소는 대서에 서울에는 가지 말 것. 특히 버스는 타지 말 것.
그런데 염소가 서울에 올 일이 뭐가 있을까, 등이 서늘해진다. 아무래도 뿔이 녹는 걸 걱정스러워하기엔 이미 죽어서 올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에.... 왜냐하면 한국 사람은 서울에 다 모여 있고, 한국에는 더워서 죽을 것 같은 때 다른 이를 죽이는 풍습이 있어서 아마 염소가 이 더위에 서울에 온다는 것은....
여름을 보내는 두 번째 방법. 더워 죽겠는 날, 진짜 더워서 죽는 생을 만들지 말자. 더워 죽겠어, 더워 죽겠어,라고 말할 만큼 더워서 죽는 것이 끔찍한 걸 아는 사람들이, 안 그래도 더워 죽겠는데 진짜로 죽는 일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 눈이 있어서 보고, 귀가 있어서 듣고, 입이 있어서 맛을 느끼고, 뇌가 있어서 생각하던 누군가를 비틀어 삶아서 고아 먹는 것은 뜨끈-뜨끈 오래 살아보겠다는 뜻인데, 이 세상이 그렇게까지 오래 살아서 뭘 봐야 하는 세상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자! 점점 더 뜨끈해질 뿐이니까. 만약 그때까지 살아있게 되면 내가 오늘 공들여 전수하는 이 <여름을 보내는 방법> 따위 프린트해서 활활 타는 공기 중에 내던져 불사르고 싶어질 것이다. 나쁜 것! 지만 단명했어! 하고. 그러니까 두 번째 방법의 핵심은, 남의 살 삶고 튀기는 열기로 더운 여름 불지옥 만들지 말 것. 별표... 세 개. 이게 여름하고 별 상관없는 것 같지만 이것 때문에 매년 더 더워진단다, 진짜로. 아이, 나도 참, 복수에 관한 얘기를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뭐, 여름과 복수가 좀 잘 이어지는 조합인 것 같긴 하지만.
이어서 얘기할수록 내가 더 더워지는 느낌이 들어서 하고 싶지 않은데, 방법이 두 개로 끝나면 신빙성이 확 떨어지기 때문에 더 이어가본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놀이터에서 비눗방울 부는 게 여름을 보내는 아주 좋은 방법이었다. 지금은 마스크도 못 벗고 아이들이 놀이터에 뛰어나올 형편도 안 되기 때문에 다~ 소용 없게 되었지만. 아무튼 매미가 귀청 찢어져라 울 때 애들이 노는 놀이터 탑에 올라가서 비눗방울을 부는 방법이 있다. 그러면 아이들이 모여들고 소리를 지르고 비눗방울은 날아가고 터지고, 덥건 말건 상관 없어지는 순간이 오는데, 그게 여름을 보내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혹시, 혹시, 정말 혹시 몰라 당부하건대, 요즘 같은 때 탑에 올라가면 안 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 마스크 벗는 순간 과태료 10만원에 때려 맞을 것이고, 그럼 더 더워진다. 몇 없는 아이들도 달려들기보단 울기 시작할 수 있으니 비눗방울에 침 섞어 공기중에 퍼뜨릴 생각 같은 건 꿈에도 하지 말자.
그렇다면 코로나 시국에 맞는 대체 방법은 없는 것일까? 당연히 있다.
여름은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이는 계절이다. 봉숭아 꽃은 집 근처 유치원 같은 곳엔 백 퍼센트 심기워 있고 구청 화단에 있기도 하다. 진짜 봉숭아 꽃과 잎을 따다가 찧어서 물 들이는 작업은, 다이소에서 파는 봉숭아물 키트와는 더위를 쫓는 방식과 효과 면에서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일단 물을 들인답시고 잎사귀를 따오고, 백반을 사 오고, 잎을 씻고 살짝 말려서 찧고 손톱에 올리고 동여 매는 동안 시간이 아주 잘 간다. 물론 동여맨 손으로 욱신욱신 잠드는 게 쉽지 않다는 맹점이 있지만, 그 외의 효과에 있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기 때문에... 응. 일단 물을 들이고 나면 손톱뿐 아니라 손톱이 붙어있는 손가락 한 마디까지 붉은 물이 드는데 이게 한 일주일은 안 빠지기 때문에 어디서 실제로 누군가의 간을 빼 먹은 게 아닌가 싶은 손 효과를 낸다. 다이소 봉숭아물 키트로는 볼 수 없는 효과.
평소에 말이 지지리도 안 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간 주변에 손을 올려둘 일이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불현듯 자신의 간 존재 여부를 살피며 식은땀 한 줄기 흐르게 해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사랑이 어디 있을까. 봉숭아 물들이기는 시간을 잊는 데 있어서 본인에게 좋고, 서늘한 효과를 남에게 선사한다는 점에서 이타적이기까지 하다. 더워서 다른 존재가 부담스러워지는 시기에 이토록 선한 활동이 또 있을까? 이게 바로 놀이터 탑에 올라가서 비눗방울을 부는 것과 같은 공동체적 행위의 코로나 시국 버전이다.
혹시라도 이게 여자들에게만 해당하는 방법이라고 읽은 남성분들께도 강권하건대, 봉숭아 물들이기의 효과는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남자가 왜 이런 걸 했느냐"식의 명시적이고 노골적인 말과 시선을, 손톱 물 빠질 때까지 듣다보면 겨울이 온다. 효과가 좋다! 겨울이 오기까지 그동안 알지 못했을 수 있는 성차별을 몸소 겪어냄으로써, 이 대한민국의 성차별이라는 것이 얼마나 자신을 어떤 남성성의 이미지에 옭아맸는가에 대해 뒤돌아보고, 더운 여름에도 몸서리쳐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여자들이 브래지어를 안 하면 안 했다고, 왜 안 했느냐는 소리를 맨날 듣는 피로와 비슷한 피로감도 부수적으로 경험하게 되는데, 그 피로 덕에 열대야가 없다. 여름에 일부러 공포영화 보면서 서늘한 효과를 얻는 것처럼 매년 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물론 본인을 '남자가 하는 것, 여자가 하는 것'에 구애받지 않는 쿨한 남자로 정체화한다면 그것은 또 그것대로 쿨한 여름을 보내는 방법이 된다.
아참참, 너무 뻔한 방법이라 이 글에서는 '공포 영화보기'를 소개하지 않을 건데, 한 가지. 그 공포 영화 목록에서 킹덤-아신전은 빼야 한다는 건 꼭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이건, 무서운 영화가 아니라 슬픈 영화라서 잠 못 이루게 된다. 더위도 잊지 못하고 시간도 잊지 못하고 슬픔도 잊지 못하게 되어 여름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 영화는 뼈가 시린 겨울에, 같이 슬퍼하면서 밤을 지새울 누군가가 있을 때 보는 게 심신에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방법.
개인적으로 이열치열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조금 재미있어서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열치열하게 되는 활동을 발견했다. 바로 칡 덩쿨 제거. 우리 집과 옆집 사이에 있는 소나무를 뒤덮고 저 뒷산을 향해 담을 타는 칡 덩쿨과의 전투. 인터넷에 찾아보니 여름이 되면 다들 칡 덩쿨과의 싸움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독한 약을 치는 것도 금지되어 있고, 그렇다고 하나하나 자르면 더 왕성하게 자라기 때문에 섣불리 덤벼들 수도 없어 아주 골칫덩어리라고.... 나는 창문으로 스물스물 들어오는 녀석들만 좀 제거하러 뒷산에 올랐던 건데, 마치 재난 영화의 첫 장면처럼 나 혼자서 넘실대는 칡 파도를 발견했다. 덩쿨의 잎이 파도처럼 일렁이고, 그대로 놔뒀다가는 모든 걸 집어삼키고 멸망시킬 기세다. 아, 복수에 관한 얘기를 하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자꾸만... 아무튼 상황은 이랬다.
S# 1. 땀 흘리며 산을 오르는 경기도민 이해준. 얼굴 빡샷. 하늘이 맑아 더워도 미소 지을 수 있다.
S# 2. '아, 저기 있다. 저게 우리 집 창문으로 들어오던 덩쿨이구나.' 눈을 반짝이며 다가가는 이해준.
S# 3. 덩쿨 끝을 집어 들고 당기는 이해준. 그런데... 덩쿨 자락이 끝없이 쭈욱 당겨지며 카메라, 이해준 뒷모습과 전경으로 줌 아웃.
S# 4. 이해준 전면에 칡 덩쿨 바다 등장
S# 5. 이해준 얼굴 클로즈업. "이런 미친...."
S# 6. 카메라 이해준을 중심으로 상공으로 올라가는데 이해준네 집 주변 전부 칡 덩쿨에 포위되어 있음.
나는 그 자리에서 오소소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으악! 으악! 으악! 칡 덩쿨을 당기고 자르고 빼내고 쳐내는 작업을 했다. 작업 도구라고는 실내 식물용 전지가위와 한 짝 밖에 없는 목장갑. 열악하다. 열악해. 금세 자라도 상관 없어! 일단 비켜!!!라는 마음이었기 때문에 며칠 뒤에 다시 가 봐야 한다. 도시가스 배관을 타고 올라가는 녀석들을 제거할 때는 가스 폭발 사고를 미연에 막은 양 뿌듯함이 차오르기도 했는데, 문제는 칡 덩쿨이 절대 악이 아닐 때 생긴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싸움도 상대가 천하의 악인일 때가 쉽지, 선악이 공존하면 그때부터 복잡해지는 거다. 바로 칡 꽃. 칡 꽃의 향기가 아카시아 저리가라다. 은은하게 코를 간지럽히는 향기, 보라색인 듯 자주색인 듯 분홍색인 듯 달려 있는 꽃이 너무나 매력적이기 때문에, 내가 지금 칡한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싶은 내면의 갈등이 시작된다. 으으. 이거야말로 올여름 진짜 전쟁. 꽃 향기 맡다가 도리도리. 정신 차리고 또 으악! 으악! 으악! 꽃향기 킁킁 대다가 훠이훠이. 정신 차리고 또 으악! 으악! 으악!
이거... 재밌다.
시간도 잘 가고.
이 글을 읽는 당신, 주변의 칡 덩쿨을 한 번 찾아보세요. 칡 덩쿨은 우리 주위 어디에나, 있답니다? 정말로.
자,
이제 저한테 복수하러 오고 싶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