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스스로 위로하는 일
작업실은 나에게 한없이 작은 우주다.
열 걸음이면 닿는 좁은 공간이지만,
여기서는 바느질이 길이 되고, 천이 풍경이 된다.
아침이면 탁자 위에 반짝이는 바늘과
아직은 고요한 천 조각들이 나를 기다린다. 이제부터는 내가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다.
이곳에서 나는 혼자이면서도 혼자가 아니다. 익숙한 음악이 흐르고 익숙한 커피 향도 퍼지고 익숙한 혼잣말들이 나도 모르게 흐른다.
입가를 비집고 술술 터져 나오는 단어들마다 누군가와 대화하듯 흐르는 게 매일 있는 일이라 이상할 일도 아니다.
어느덧 하던 바느질거리들이 널려졌다.
조금은 기울어진 실선도, 어긋난 바느질도, 결국은 다 괜찮아진다.
모든 것은 이 작은 우주에서 조화롭게 자리 잡는다.
워낙 혼자 잘 지내는 나였지만, 지금도 혼자 잘 지내는 방법을 연습하는지도 모르겠다.
외로움은 달래기엔 바느질뿐이니까.
천 위를 가는 실은 말이 없고 재촉도 없으니 그저 묵묵히 내가 가는 방향을 따라올 뿐이었다.
가끔 지나가는 사람, 머무는 사람, 사람들로 북적이던 작은 공간에 쉬운 말들과 바람 같은 언어들이 둥둥 떠 있다 사라지고, 어느 날은 세찬 바람이 되어 나를 쓰러뜨린다.
나는 그 바람에 문을 닫는다.
사람은 떠나고 또 와도 내 마음은 나만의 세계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오늘도 나는 말없이 실을 꿰고, 실로 나를 꿰매본다. 찢긴 자리, 구멍 난 흔적들을 실로 오고 가는 사이 그 무늬는 나만 아는 언어가 된다.
나는 천과 실이 만들어내는 언어에 흠뻑 취해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 누구도 못 믿을 세상에서 유일한 벗을 삼았다. 내 손끝 바느질만큼은 한결같았으니까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인가?
사람들에게 혼자 있는 시간이 외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발견하고 치유하는 귀한 시간임을 느껴볼 수 있다.
사람들도 누구든 집 아닌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반복되는 작은 일상이나 익숙한 것들이 우리의 삶을 조용히 위로하고 안정시켜 주기 때문이다.
일상 속 작은 행복과 안정감이 있고 자기 위로와 회복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
상처받고 지친 마음을 나는 바느질이라는 행위를 통해 나의 작업실에서 스스로 위로하고 회복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