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에서

관계와 꿈 사이에서

by 스틸앨리스

​그날은 딱히 특별할 것이 없었다.

산책을 좋아하는 내가 자주 걷던 골목길, 새로 생겼다 사라지길 반복하는 작은 가게들 사이를 지나는 게 나의 일상이었다.


그런데 어쩐지 그날따라 평소엔 잘 들이지 않던 골목으로 들어섰다. 이유는 없었다. 단지 마음이 이끄는 대로였다. 아직 흔적도 지우지 못한 오래된 북카페 하나가 내 발길을 붙들었다. 햇빛을 머금은 빨간색 어닝 간판이 눈부시게 반짝였고, 유리창 너머로 비어있는 실내는 나를 조용히 기다리는 듯했다. 순간 알았다. 내가 찾고 있던 곳이 바로 이런 곳이었지.


​며칠 뒤, 어색하게 서류를 주고받으며 이 북카페의 열쇠를 건네받던 순간도 어렴풋이 기억한다.


​허전하고 텅 빈 공간에 작업 테이블 하나와 바느질 도구들을 놓기 시작하며 내 마음도 함께 자리를 잡아갔다. 수강생이 찾아올까? 하는 불안도 있었지만, 실 한 가닥, 천 조각 하나를 펼칠 때마다 가슴은 설렘으로 채워졌다.


이제 그 골목길은 평범한 길이 아니다. 내가 꿈꾸고, 나를 발견하고, 나를 키워가는 작은 우주로 향하는 길이 되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려면 작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던가. 이 골목길은 낯설었지만, 기분 좋은 낯섦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그림자, 오래된 간판의 글씨. 상상 속 예쁜 뷰에는 못 미쳤지만, 오래된 빈티지한 느낌은 오히려 더 마음을 잡아끌었다.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이 마치 낯선 공간과 눈을 맞추는 듯했다. 순간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작은 목소리가 속삭였다.

'여기가 바로 네가 있어야 할 곳이야. 빨리 계약해!'


며칠 후, 그 작은 북카페의 문을 열고 어색하게 앉아 계약서를 작성할 때도 믿기지 않았다. '내 작업실이라니, '라는 설렘과 떨림 속에서, 나는 텅 빈 공간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하나둘, 내가 아끼던 바느질 도구와 천 조각들을 놓으며 이곳은 북카페였던 기억 대신, 오롯이 내 손끝의 온기와 꿈이 담긴 공간으로 바뀌어갔다.


그때도 이런 마음이 컸다. 내 취미가 직업이 되어 사람과 꿈을 연결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로 행복하게 돈도 버는 그런 삶. 그렇게 시작했고, 내 사업자에 등록된 이름도 (사이에서 작업실)이었다. 전 카페 주인의 간판 (책방 사이에서)의 일부를 빌려, ‘사이에서’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럴싸했고, 그렇게 바느질과 연결된 문을 열었다.


​하지만 첫 수강생들과의 수업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기대와 달리 마음이 맞지 않던 사람들, 생각보다 복잡한 소통과정, 내 무계획의 부재가 엉켜 쉽게 풀리지 않는 관계의 실타래들로 점점 내 마음도 지쳐갔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관계의 어려움에 무너져 내리는 나 자신을 마주했다.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부터 나는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했다.

그렇게, 나는 꿈과 관계 그 ‘사이에서’ 진짜 이야기를 쓰기 시작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