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인간을 읽고
"상상력에 불꽃을 일으키고 새로운 쓸모에 대한 영감을 자극 했다"
요즘 세상은 참 편리하다.
손끝으로 메모장을 열고, 말 한마디로 인공지능에게 기록을 맡기면 잊을 틈도 없이 저장된다.
그야말로 신박하고 놀라운 기술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이다. 손에 익은 종이와 펜, 그 촉감과 여백의 여운이 주는 안도감이 좋다.
그래서 늘 작업실엔 낙서하듯 그린 스케치와 긁적여 놓은 글자들, 작은 종잇조각들이 가방 안에 뒹구는 일은 흔한 일이 되었다. 인공지능 노트에 정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나는 아직도 그 느림이 나에겐 편안하다.
무엇보다 손으로 직접 적은 글자는 내 마음의 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더 진실한 메시지로 전해진다.
어느 날엔 그 조각 같은 메모 하나가 책 속 문장처럼
상상력의 불꽃을 피워내고 무심코 스친 생각들이 새로운 쓸모로 되살아난다.
아날로그란, 어쩌면
시간을 천천히 흘러가게 만드는 나만의 방식 같다.
그 위에 차곡차곡 쌓이는 내 삶의 흔적이랄까?
요즘은 핸드폰에 저장하고 쉽게 꺼내보려고 노력하는 중이지만 한편으로 핸드폰을 켜는 순간 삼천포로 빠져들듯 알고리즘에 이끌리는 행위가 두려워 의식적으로 쓰는 행위를 멈춘다.
나에게 종이에 쓰면서 한번 더 상기시키는 일도 뇌에 좋다고 하니 종이와 펜은 어느새 필수품이 되었다.
비밀노트 /자기 성찰
(나 자신의 교화될 힘은 불신하지만 정도에 따라 차츰 나아지기를 바라는 나는 오늘부로 엄숙한 교회 절기에 가게에 나가거나 영업하는 일을 삼갈 것을 다짐한다.)
-이하 생략 -
이 내용을 글로 적어 놓았으니 아마 나는 약속을 지킬 것이고 , 약속을 깨는 일이 생기면 부끄러울 것이다.
--------------
타인의 비밀노트는 어느 정도 회계장부이자 회고록이고. 족보이다.
:
비밀 노트는 자기 성찰을 펼쳐내는 일이라면
물 흐르듯 스쳐 지나가는 하루하루를
그 속에 내가 얼마나 무심했는지를 알 수 있는 일이다.
어쩌면 나를 돌아보며 몇 자라도 적어놓는 일이겠다 싶다.
이호선 교수님의 강의 내용이 기억났다. 말처럼, 인간에게 꼭 필요한 능력은
상상력, 공감력, 그리고 성찰력이라고 한다.
그중 중년의 성찰은 삶을 낯설게 바라보는 일이다.
어제의 나를, 오래 전의 나를, 기억 속에서 꺼내 다시 마주 보는 일.
나는 일기를 쓰면서 처음으로
내 마음의 풍경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슬펐던 날엔 왜 울었는지를, 기뻤던 날엔 무엇이 나를 웃게 했는지, 작업을 할 때 느꼈던 감정까지를 짧은 문장 속에서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질문은 과거의 나를 위로하고, 미래의 나를 준비시켜 줬다.
기록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내 삶을 온전히 살아내기 위한 가장 인간다운 방식이란 걸 "쓰는 인간"을 읽으며 한번 더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