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덕후로 살아가기
어쩌면 나는 좋아지는 일에 흠뻑 빠져드는 습성이 있는 것 같다.
손바느질이 좋아 20년이 다 되도록 퀼트를 하고
오래된 물건에 빠져 빈티지 마니아가 됐다.
아마도 책상 위에 처음 올려둔 책 한 권도 사실 책이라기보다 작은 장식품에 가까웠다. 눈에 익은 표지와 얇은 두께는, 그저 공간을 채우는 오브제처럼 무심히 놓여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그 옆에 또 다른 책이 자리했고, 그다음 날에는 세 권, 네 권이 세워졌다. 그렇게 책상은 조금씩 책으로 책꽂이가 놓였고, 나의 하루 또한 천천히 다른 빛을 띠기 시작했다.
뒤늦게 읽게 된 한 권의 책이 주는 설렘은 오래된 집의 창문을 처음 열었을 때 훅 들어오는 바람과도 같았다. 차갑고도 신선하며, 동시에 낯선 향기를 실은 그 바람은 내 마음 깊숙한 곳을 흔들었다. 늦은 나이에 ‘책 덕후’라는 이름을 달게 된 것도, 어쩌면 새로운 놀잇감을 찾아낸 아이 같았으니 그만한 멋진 이름이 어디 있겠는가~
책장을 넘기는 일상이 어느새 내 하루의 가장 들뜬 순간이 되었고, 때로는 나만의 취향으로 가득한 서재를 하루 종일 벗어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마저 들곤 했으니 말이다.
최근 작은 책방이지만 1층은 카페, 2층은 빈티지 가구와 소품으로 꾸며진 오래된 책들, 센스 있게 꾸며진 독립서점에 다녀왔다. 본업 외에 자기의 꿈을
실현하는 곳, 책방을 운영하시는 젊은 남자라는 것도 의외였는데 내가 본 요즘 남자 중에 가장 신선해 보였다. 물론 나보다 젊은 나이인 건 분명했으나. 삶을 대하는 여유, 일상을 편안함과 깊이가 남달라 보였다는 뜻이다.
돌아오는 길, 문득 내 일상에도 그런 작은 무대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차곡차곡 쌓아가는 나만의 서재처럼, 각자의 삶은 누구나 하나의 작은 책방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책은 늘 새롭지만 동시에 낯익다. 한때는 지나쳐버린 문장이, 지금의 나를 향해 다정히 손짓한다. 글자들이 모여 문장이 되고, 문장들이 이어져 사유가 될 때, 나는 그동안 스스로를 가두어왔던 작은 틀을 벗어나고 있음을 분명히 느낀다. 그 해방감은 자유이자 기쁨이고, 무엇보다 내가 여전히 변할 수 있다는 증거 같았다.
분명히 그럴만한 나에게 터닝 포인트가 있었겠지.
살다 보면 나답다고 느낄 때가 있었는데 나답지 않음을 느끼는 요즘도 꽤 마음에 든다. 그 이유는
책 속에서 발견한 세계는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비추는 또 하나의 거울이 되기 때문이다. 그 거울은 내 안의 그림자와 빛을 동시에 드러내며,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보도록 이끈다. 어쩌면 책을 읽는다는 건, 세상을 배운다기보다 나 자신을 더 투명하게 마주하는 일이 아닐까.
한 장 한 장 넘길 때 서걱되는 종이의 질감이 좋다.
책을 읽을 때 내 감정을 느껴본다., 글을 쓴 누군가를 생각해 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잠든다.
어느 날은 설레고 어떤 날은 슬펐고, 자주 위로받는 하루하루. 오늘의 감정을 정리하고 내일의 삶을 계획하는 의식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