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도 행복할 수 있다

by 스틸앨리스


​남편은 한동안 하던 사업도 건강도 잃은 상실감이

컸겠지만 나만큼 괴로워 보이진 않았다.

잠도 잘 자는 듯 보였고. 군것질 좋아하는 남편의 방안은 과자 씹는 소리도 자주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유튜브 시청 시간이 느는 건 아마도 괴로움을 잠시 잊고 싶어 서겠지 싶어, 잔소리로 가득해 짜증스러운 입꼬리를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그날도 하늘은 어두운 회색 천을 무겁게 드리우고 있었다. 비는 후드득후드득 창문을 두드리고 먼 하늘 어디에선 천둥이 불안한 내 심장처럼 둥둥 울려 퍼졌다. 나는 창가에 앉아 손끝으로 차가워진 유리창을 느끼며 너를 바라봤다. 그새, 노견이 되어버려 당뇨병을 앓고 있던 너. 비 오는 날 천둥소리를 제일 무서워하던 너의 청각과 후각 요동치는 심장도 이젠 소음과 세상의 움직임마저 삼 겨버린 듯 얌전히 내 곁에 웅크리고 누워있었다.


희끗희끗하고 숭숭 비어진 털 사이로 세월의 흔적이 짙게 배어 나왔고 깊고 긴 숨결은 아주 천천히

사라져 갔다. 펑펑 울던 그날의 기억이 천둥소리에 묻혀버렸지만 그날 잠시 맛본 보들하고 고소한 시저 한 캔에 행복했던 너를 기억한다. " 코코는 그럴 때도 됐어! 나이도 있고. 눈치 보며 흘낏 흘리는 남편의 무심한 말 한마디가 회색 물주머니처럼 구름 안에 가득 차 있다 터져버렸다.


그날 나는 소리 없는 눈물을 왕왕 쏟아 내었다.

어느덧 남편의 상황도 나아졌고 내 감정도 안정감을 찾았고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감사함을 느끼는 순간순간이 많아졌다.

아이러니하게 슬픔으로 인한 눈물을 왈각 쏟고 나면 강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고 그로 인해 행복과 감사함이 알게 모르게 조용히 온몸에 스며든다.

뜻밖에도 조용한 행복.


행복은 늘 환희의 형태로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것을 다 흘려보낸 후 마치 오래 비운 방 안에 처음 스며드는 햇살처럼 부드럽게 찾아온다.

격렬한 감정의 끝자락에 서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담백하고 단단한 행복이 있다는 것을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행복을 느끼기에 가장 좋은 건 슬픔이라는 감정을 알고 난 후 찾아오는 평범함이 아닐까?

어둠에서 벗어날 때 느끼는 작은 빛의 찬란함은

내가 정의한 그 무엇이기보다 자연스레 따라오는 내 감정이니까. 슬픔은 나를 쓰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어느 날 남편의 사업이 부도를 맞고 , 건강했던 가족과 사랑하는 반려견이 아플 때 느꼈던 감정,

그 후 반려견을 무지개다리를 건너 보내야 했고

내게 찾아온 시련을 겪었던 순간, 크고 작은 사건에 느끼는 일상에서의 모든 슬픈 상황에도

나는 웃을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순간이 있다는 걸 알았다.


"슬픔은 단지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을 더욱 깊고 분명하게 느끼도록 도와주는 감정인 것 같았다.

슬픔을 통해 울음을 터뜨리고 감정을 비운 후에는 뜻밖에 평온함과 감사의 감정이 찾아오고, 행복이 반드시 강렬한 환희의 형태로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용하고 은근한 형태로 다가온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슬픔을 경험한 뒤 느끼는 평범하지만 단단한 행복이 진정한 행복이며, 슬픔 또한 나를 쓰러뜨리는 게 아니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원동력이라는 역설적인 깨달음을 비로소 알게 된 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