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감자가 자라는 시간
나의 바느질 작업실, 그 작은 데크 위에는
크고 작은 토분들이 올망졸망 놓여 있다.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꽃들도 많지만,
봄부터 하나씩 심어둔 제라늄꽃 데이지꽃 팬지까지~피고 지고를 반복한다. 매일 출퇴근길 나무들이 예뻐서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환해진다.
하지만 문득문득,
벌써부터 추워질 겨울을 생각하며
이 많은 화분들을 실내로 들여놓을 일을 미리 걱정하게 된다.
‘아니, 언제 이렇게 많아졌지?’
아침마다 물을 주며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러다 보면 떠오른다.
언젠가부터 수강생들도 하나둘씩
자신의 화분을 슬며시 데려다 놓기 시작했다는 것을.
이제는 그 수가 꽤 늘어나,
데크는 조용한 정원처럼 변해버렸다.
어느 날, 한 수강생이 토분 하나를 조심스레 내려놓으며 말했다.
“흙 안에 싹 난 감자가 숨어 있어요.
곧 싹이 나고, 꽃도 필 거예요.
감자꽃이 얼마나 예쁜데요.”
그날 이후, 그 감자 화분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어느 날은, 그 앞에 가만히 앉아 한참을 바라본 적도 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바느질이 잘 풀리지 않던 오후,
창밖에선 바람만 쓸쓸히 불고 있었고,
괜히 그 토분이 궁금해진 것이다.
정말 저 안에서 싹이 트고 있는 걸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정말 땅속 어딘가에서 생명이 준비되고 있겠지.
그러다 문득,
나도 지금 그런 상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는 멈춰 있는 것 같고, 아무 변화도 없어 보이지만 어딘가 아주 깊은 곳에서는
조용히 무언가가 자라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속도로, 아주 천천히.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별 기대 없이 데크로 나갔다가,
문득 감자 화분에 눈길이 갔다.
어느새, 아주 작고 말간 초록 싹 하나가
흙 위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만 한 크기였지만
그 생김새가 어찌나 앙증맞고 귀여운지
내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아, 예쁘다.”는 말이 새어 나왔다.
작은 생명이 주는 놀라움이란,
항상 이렇게 예상 밖의 순간에 찾아오는 것 같다.
그 싹 하나가 나를 그렇게 기쁘게 만들 줄은 몰랐다.
감히 말하자면, 꽤 오래간만의 순수한
작은 생명이 주는 놀라움이랄까?
항상 이렇게 예상 밖의 순간에 찾아오는 것 같다.
그 싹 하나가 나를 그렇게 기쁘게 만들 줄은 몰랐다.
감히 말하자면, 꽤 오래간만의 순수한 탄성이었다.
자연은 늘 조용히 이야기한다.
문제는 우리가 그걸 듣지 못한다는 것.
너무 빨리 확인하고 싶어 하고,
너무 빨리 결론을 원한다.
하지만 흙 속에서 감자의 싹이 준비되듯,
우리의 마음도, 생각도,
그 무엇도 준비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걸 내게 알려준 건
화려한 꽃도, 이름난 나무도 아닌
그저 이름 없는 감자 한 알이었다.
수강생들이 데려다 놓은 화분들 사이에서
그 감자는 유난히 조용한 존재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자꾸 눈길이 갔다.
그 옆에선 재밌게도 아보카도 싹도 쑥쑥 자라고 있었고, 어디선가 날아온 이름 모를 꽃씨도
초록잎을 조심스레 펼쳐 보이고 있었다.
그저 흙일뿐인데도,
거기엔 살아 있는 기운이 한껏 느껴진다.
그건 어쩌면,‘기다림’이라는
가장 깊은 감정이 그 안에 담겨 있어서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가슴 한편에 감자 하나쯤은 품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
뜨거운 감자, 못생긴 감자, 싹이 트고 있는 감자.
예쁘지 않고,
화려하지도 않은 이름.
그러나 묵묵히,
땅속 어딘가에서 스스로를 밀어 올리는 존재.
가끔은
내 안의 그 감자가
살짝 몸을 뒤척이듯 꿈틀댈 때가 있다.
조금씩, 아주 느리게.
세상 밖으로 나오고 싶다고,
조금 더 자라고 싶다고
울퉁불퉁한 모양 그대로
기특하게도 용기를 낸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조용히 생각한다.
아, 이게 진짜 자라는 거구나.
누구나 좋아할 만한 반듯한 꽃이 아니어도
세상의 주목을 받지 않아도
내 안에 싹튼 감자는
그 자체로 충분히 귀하다.
결국, 삶은 나만의 싹 하나에 주목하지 않고
일상을 하루하루 이어갈 때 나도 모르게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쑥~자라 있는 순간이 있다는 것
내 안에도 감자하나 자라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