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마지막수업

마인드

by 스틸앨리스

영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유리컵 안의 빈 공간을

인정하지 않는 거라고..

유리컵 안에 채워지는 것. 그것이 마인드라네.

마음을 비워야 영혼이 들어갈 수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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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컵의 형태만 보지만,

정작 그 안에 담기는 ‘무엇’을 생각하진 않는다.

그 안을 채우는 것이 ‘마음’이라면,

그 마음이 비워질 때야 비로소 ‘영혼’이 들어설 자리가 생긴다.


나는 사람을 만날 때, 그의 옷차림이나 말투보다

그 사람의 마인드. 생각의 결을 알고 싶다.

세월이 흘러 알게 된 건, 사람의 얼굴이나 말보다

‘마음의 방향’이 그 사람을 만든다는 사실이다.


어떤 이는 외로움 속에서도 마음의 정원을 가꾸고,

또 어떤 이는 풍요 속에서도 자신을 잃는다.

결국 삶은 무엇으로 자신을 채우느냐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욕심으로 가득 차면 영혼은 머물 곳이 없고,

비워낸 마음엔 빛이 스며들겠지.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 자신에게 묻는다.

지금 내 마음의 잔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가

사람들은 늘 보이는 것. 형태를 본다.

모양, 색, 재질, 빛의 반사 같은 것들.

그러나 정작 그 안에 담길 수 있는 ‘무엇’을 생각하지 않는다.

유리컵의 진짜 쓰임은 ‘비어 있음’에 있다.

비어 있어야 물이 들어가고,

비어 있어야 누군가의 목마름을 채워줄 수 있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무언가로 가득 차 있을 때는,

영혼이 들어올 틈이 없다.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말은

단순히 욕심을 버리라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여백’을 만들어 두라는 뜻일 것이다. 그 여백에 빛이 머물고, 그 빛이 영혼의 목소리가 된다


한때는 나도 사람의 겉모습에 흔들렸다.

말투나 옷차림, 직업, 외모, 혹은 분위기 같은 것들.

하지만 세월이 깊어질수록 알게 되는건

사람의 진짜 얼굴은 그가 가진 생각의 결,

그 생각을 움직이는 ‘의식의 방향’에 있다는 것을


겉으로는 단정하지만 마음속에 거센 폭풍을 품은 사람, 말은 거칠지만 내면은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

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그의 영혼이 움직이는 리듬을 느끼는 일이라는 것을.

어쩌면 ‘영혼’이라는 단어는 너무 오래된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단어를 믿는다.

사람이 단지 몸과 생각으로만 살아간다면

삶은 너무 건조하지 않을까.

그 사람 안에서 흐르는 따뜻한 온기,

아무도 보지 못하지만 분명 존재하는 것,

그것이 나는 ‘영혼’이라고 부르고 싶다.


삶이란 결국 ‘채움과 비움의 반복’이다.

누군가는 끝없이 쌓으며 존재를 증명하고,

누군가는 비워내며 자신을 찾는다.

나는 이제 비워내는 쪽에 더 가까워지고 싶다.

비워야만 들어오는 것들이 있다.

사랑, 평화, 이해, 그리고 영혼. 그것들은 모두 조용히,

텅 빈 마음의 자리를

“지금 내 마음의 잔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가?”


만약 그 잔이 두려움으로 가득하다면,

나는 세상을 경계하며 살 것이다.

만약 그 잔이 욕심으로 채워져 있다면,

나는 타인의 행복을 질투할 것이다.

그러나 그 잔을 비워둔다면,

그 안에는 바람이 머물고, 빛이 들어와

내 안의 영혼이 조용히 숨을 쉬게 될 것이다.


세상은 늘 소리로 가득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들리지 않는다.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그것이야말로 모든 존재의 중심이다.

유리컵 안의 빈 공간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또한

형태가 아닌 ‘비어 있음’ 속에 있다.


삶의 본질은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비워지는 과정 속에서 드러난다.

그리하여 결국, 비워진 그 마음 안으로

영혼이 들어와 나를 완성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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