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입는 사람들

옷으로 계절을 입듯, 마음도 그렇게 변할까

by 스틸앨리스


아침부터 외출복을 고르는데 한참이 걸렸다.

햇살은 여전히 가을인데, 아침저녁 공기는 겨울처럼

까칠하다.

어떤 두께의 옷을 입어야 할지 고민됐지만

결국 청자켓을 꺼내 입고, 머플러를 휘릭 감고

그 정도면 괜찮을 거라 생각하며 서울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 안,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은

어딘가 계절 사이에 걸린 사람 같았다.

아직 가을을 보내지 못한 얼굴.

하지만 지나치는 사람들의 두꺼운 코트와 스웨터를 보며 "아~이제 진짜 겨울이 오는구나’

마음속으로 계절의 첫 숨을 조용히 받아들였다.


버스 창문 너머로 낙엽이 바람에 휘날렸다.

그 소리조차 얇은 셔츠 사이로 스며드는 듯했다.

몸보다 먼저 마음이 추워지는 계절.

그래서일까, 나는 매년 이맘때쯤이면

옷장 속 스웨터를 하나 꺼내듯,

지난겨울의 나를 꺼내보곤 한다.


그때의 나는 어떤 감정을 입고 있었을까.

서운함의 회색 코트?

아니면 다정함의 베이지 스웨터?

감정에도 옷감이 있다면,

나는 오늘 어떤 결의 마음을 입고 있는 걸까.


시간이 흘러, 버스에서 내릴 즈음 공기는 제법 차가워졌다.그래서 나는 코트 깃을 세우듯

마음을 한 번 더 여며보았다.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리워지는 계절.

어쩌면 우리가 옷을 입는 이유도 체온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마음을 보호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따뜻한 울 스웨터 하나를 결제했던 일이 생각났다. 요즘 들어 새 옷을 사는 일에 설레는 경우가 드문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그 스웨터’를 입은 나를 상상하니 마음이 먼저 포근해졌다. 오늘따라

그 스웨터가 자꾸 생각나고 기다려졌다.


며칠 뒤 택배 상자를 열자

비닐 속에 차곡차곡 접힌 양모의 냄새가 겨울 공기와 섞여 올라왔다. 새벽의 찬 공기를 머금은 듯한 그 냄새,

그리고 손끝에서 느껴지는 폭신한 울의 질감.

그 순간, 겨울이 기다려지면서 첫눈도 곧 올 것 같은 기분에 설레기까지 했다.

나는 아마 그 스웨터의 색과 디자인을 골랐다기보다

‘그 감정’을 사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두툼한 짜임의 울처럼 나를 감싸줄 포근함,

그리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조용한 온기’를.

솔직히 나는 어둠이 빨리 찾아오는 겨울을 싫어하면서도..


사람은 누구나 감정을 입고 살아간다.

어떤 날은 무거운 외투처럼 서운함을 걸치고,

어떤 날은 얇은 솜털처럼 가벼운 웃음을 두른다.

하지만 겨울이 오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따뜻한 걸 찾는다.

그건 단순히 체온을 위한 게 아니라

‘마음의 온도’를 지키고 싶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울 스웨터를 입는 아침,나는 마음 한편에서 감정의 무게와 질감을 느낀다.‘오늘은 따뜻해지고 싶다’는 작은 바람이 양모의 실 사이를 스며드는 것처럼


그리고 생각했다.

감정도 옷처럼, 그날의 나에게 꼭 맞는 것을 고를 수 있다면 좋겠다고. 너무 두꺼워 숨 막히지 않게,

너무 얇아 금세 시리지 않게.딱 지금의 나를 편안하게 감싸주는그런 마음의 스웨터 하나.


거리에 사람들은 다양한 컬러와 다양한 텍스쳐가

느껴지는 겨울 옷들로 갈아입고 어디론가 흘러가고


그만의 감정이 뽀뽀글 뽀글. 몽실몽실 그렇게 보들보들~ 가볍기도 하고. 묵직하기도 한 각자의 감정들을 어깨에 두른 채 계절을 맞이한다. 어떤 기분일까.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을 정리하듯,나도 감정을 정리해본다.

너무 오래된 서운함은 접어두고, 조금 가볍던 마음도

잡아두고 새로 산 스웨터처럼 다정함을 꺼내 입고 싶은 계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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