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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Sep 03. 2015

#108 추신수와 콜라

나도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추신수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특급 타자다. 


2013년 말에는 텍사스와 7년간 총액 1억 3천만 달러의 대박 계약을 맺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비록 몸값이 스포츠맨의 가치를 재는 유일한 척도는 아니라 할지라도, 방망이 하나를 열심히 휘둘러 현대자동차 그룹의 정몽구 회장보다 많은 연봉을 받고 있다니 대단한 것은 사실이다. 더군다나 추신수는 오랜 세월 마이너리그 생활을 하는 동안 식빵에 땅콩잼으로 버티면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여 정상의 자리에 오른 선수다. 스토리만으로도 박수를 받기에 충분하다. 


그런 추신수가 어떤 예능 프로에 나온 것을 본 적이 있다. 공중파 예능이 종종 그렇듯이, MC 들은 추신수에게 몇 가지 황당한 게임을 제안했다. 도대체 어느 작가 머리에서 나왔는지 궁금한 그런 게임이었다. 바로 '콜라 빨리 마시고 트림하기.' 그런데 게임을 제안받은 추신수가 갑자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는 콜라를 안 마십니다." 



사연인즉 이랬다. 


일찌감치 미국으로 건너간 추신수 역시 다른 미국인들처럼 콜라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밥을 먹을 때 콜라를 같이 먹을 정도였다고. 30년을 사는 동안 딱 3주 미국 땅을 밟아 본 일이 있는 내가 선무당으로서 사람 잡을 걱정을 하며 설명하건대, 미국은 정말 콜라 친화적인 사회다. 


편의점에서는 1리터쯤 되는 커다란 컵에 가득 담긴 콜라를 겨우 1달러에 판다. 테마 파크에서 파는 어떤 텀블러는 파크 내의 어느 가게에서든지 무한 리필을 해준다. 햄버거나 타코 가게의 시스템도 우리와는 다르다. 콜라 1잔을 파는 것이 아니라, 빈 종이컵을 판다. 콜라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탄산 음료를 원 없이 마시라는 의미다. 나 역시 미국에 있는 동안 콜라 마실 일이 너무도 많아서 나중에는 꾹 참고 "Ice water,  please."라고 주문하는 절제력을 발휘해야 했다. 안 그랬다면 영락없는 코카콜라 북극곰 몸매로 귀국 비행기를 탔을 것이다. 


추신수도 마찬가지였다. 콜라 천국에서 실컷 콜라를 마시며 부지런히 운동을 했었다. 그러던 중 어느 감독으로부터 '탄산음료는 야구 선수에게 치명적'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마이너리그 선수들 중에는 콜라를 마시는 이들이 더러 있지만 메이저리거 가운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고. 


그 말을 들은 추신수는 그토록 좋아하는 콜라를 고무줄을 자르듯 딱 끊었다. 


탄산음료가 야구선수에게 치명적인 것은 탄산음료에 들은 액상과당 때문이다. '마이너스 건강법'으로 유명한 손영기 한의사에 따르면 액상과당은 근육을 무력화시킨다고 한다. 튼튼한 근육은 실력의 기본이다. 튼튼한 철골 구조 없이는 높은 빌딩을 올릴 수 없듯, 단단한 근육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력은 일정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다. 따라서 운동을 하면서 콜라를 즐겨마시는 사람은, 타이어에 바람을 열심히 채워 넣는 동시에 바늘로 콕콕 찔러 여기저기 구멍을 내는 셈이다. 운동 선수들은 이러한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았을 것이다. 



내가 테이크아웃 카페를 운영할 때 일이다. 


보통 카페에서는 단맛을 내기 위해 시럽을 쓴다. 나도 에스프레소 음료 라인에는 시럽을 넣었다. 하지만  3500원짜리 딸기 주스(메뉴 이름은 "논산 딸기가 한 잔 가득 핑크 딸기 스무디")에는 시럽 대신 쿠바산 유기농 설탕을 썼다. 물론 유기농 설탕이 시럽보다 훨씬 비쌌다. 다만 우리 가게에서 제일 좋은 메뉴였기에, '최고가'에 걸맞게 '최선'을 다해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았다. 세련된 유리병에 들은 시럽의 정체는 사실 옥수수에서 뽑아낸 싸구려 액상과당이었으니까. 


그런데 시럽을 넣어 달게 드시는 손님들 중에서도 딸기 주스에 설탕 뿌리는 것을 꺼리는 분들이 종종 있었다. 아예 "설탕 말고 시럽  넣어주세요."라는 요청도 몇 번인가 받았다. 물론 설탕이 좋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시럽(이라고 쓰고 액상과당이라고 읽어야 하는)보다는 나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었다. 커피를 팔면서 "시럽이 사실 몸에 나쁜 거예요."라고 일일이 설명하기도 어려운 노릇이었으니까. 아무튼 나는 커피점 주인을 해본 뒤로 시럽을 먹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이름이 아름답고 내음이 향긋한 바닐라나 헤이즐넛 시럽이라도 마찬가지다. 


나는 원체 잠이 많은 천성에 전형적인 올빼미형 인간이라 아침마다 허둥 지둥이다. 끼니를 제대로 먹는 날이 드물다. 종종 아예 거르기도 하는데, 오늘 아침은 차마 그럴 수 없어 회사 건물 앞에 있는 편의점에 들렀다. 제품명이 영롱한 '숯불-제육 삼각김밥'을 집었다. 숯불고기와 제육볶음이 각각 강낭콩 한 알 크기로 사이좋게 박혀 있었다. 1200원으로 아침밥을 때우려는데 계산대의 포스기가 "증정품 받아가세요"라고 친절하게 말했다. 새로 나온 삼각김밥의 프로모션인지 칠성사이다 캔 하나를 덤으로 얻었다. 


꿀꺽꿀꺽 들이키면 꺼어억 트림과 함께 스트레스마저 싸아악 풀린다는 칠성사이다. 혀는 스트레스가 풀릴 수도 있지만 그나마 있는 가느다란 근육들은 푹 삶은 호박마냥 흐물흐물해지겠지.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은 살림꾼 주부가 푼돈을 모으듯 작은 근섬유 한 가닥도 버리지 않는다는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나는 차가운 삼각김밥을 냠냠냠 다 먹은 후에, 사이다는 치익 하고 뜯어서 딱 한 모금만 마셨다. 나머지는 음식물 쓰레기통에 꼴꼴꼴 버렸다.




84.4kg (-0.5kg)

"까맣게 엎드린 하늘, 저마다 애쓰는 별빛, 숨소리를 반겨주는 이 길.

보라. 한밤의 뜀박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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