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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Jul 31. 2015

#11 출근길, 만원버스, 아주머니

분노 역치가 낮은 어느 아침의 기억

                                                                                                                                           몸이 무겁다. 


환승 한 번을 포함하여 지하철로 12구간을 이동하는 내내 디지털미디어시티 역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6호선 사람들은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와르르 내린다. 모두 내린 텅 빈 지하철에는 앉을 자리가 100원짜리 동전처럼 흔하다. 나는 구석자리에 털썩 몸을 던졌다. 


한없이 몸이 무겁다. 몸은 머리와 같은 거라고 뇌과학에선 말한다. 그러므로 몸이 무겁다는 말은 머리가 무겁다는 말과 같은 뜻이 된다. 몸이 무겁고 머리가 무겁고, 하여 마음조차 무겁다. 왜일까. 자동차 본네트 위에서 달걀이 자글자글 익고도 남을 폭염 때문일까. 아니면 어금니 박아넣은 금 조각이 이유없이 툭 떨어져 피같은 반차휴가 두 번에, 피보다 진한 병원비 80만원까지 순식간에 사라졌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이번주와 다음주에 연속으로 치러야 하는 제주 - 횡성 간 독서당 이사와 불광 - 영등포 간 사옥이전 때문일까. 


이런 식으로 몸이 무거울 때는 마음이 뒤죽박죽이다. 게으름은 껌처럼 달라붙고 자존감은 크레바스마냥 푹 꺼진다. 그저 이불 속이 제일로 편하니, 모래귀신에게 발목이 잡힌 개미처럼 일어나기조차 힘들다. 그리고 경험에 비추어보면, 이런 즈음에 오히려 분노 역치가 낮아진다. 욱하기 쉬워진다는 이야기다. 비록 욱으로 표출되지는 않더라도 심장에 욱의 기운이 깃드는 것은 확실하다. 불쾌한 상황을 겪으면 기억에 유달리 잘 달라붙는 것이 느껴진다. 



오늘 아침이었다. 


집에서 신림역까지는 두 정거장이다. 빠른 걸음으로 걷자면야 13,4분 거리지만, 부산한 아침에 걷기로 땀을 빼는 일이 또 쉽지 않다. 그래서 콩나물시루처럼 괴롭더라도 버스를 택한다. 


6512번 버스였다. 버스가 도착하자 정류장을 꽉 메운 사람들이 피라냐처럼 달려들었다. 다행히도 버스가 내 위치 가까운 곳에서 문을 열어젖힌 까닭에 나는 탑승 안정권에 충분히 들었다. 카드를 찍고, 운전석을 지나 첫번째 좌석 부근에 자리를 잡았다. 천정에 매달린 동그란 손잡이 하나도 무사히 차지했다. 승객은 계속 밀려드는 것 같았다. 사이드미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람이 꽉 차면 운전 기사가 한 두마디를 던진다. "뒷차 타세요."라고. 그런 즈음에 아주머니 한 분이 발을 디밀었다. 암벽에 매달린 등반가처럼 막무가내로 대롱대롱이다. 


떼미는 사람이나 떼밀리는 사람이나 왜 아니 괴롭겠는가. 하지만 아침 일곱시 반의 버스는 원래 그런거니까 다들 이해하는게다. 떼미는 사람이나 떼밀리는 사람이나 일터에, 학교에 지각할까봐 마음을 동동 구르는 똑같은 처지다. 그래서 서로 괴롭더라도 상황을 원망할 뿐, 남을 미워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는 달랐다. 


통상 운전 기사가 뒷차 타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포기하고 내린다. 출근시간이라 사람들 미어터지는 모습을 보면서 태울때까지 태우는 것이 기사님들이다. 양쪽 비상등을 깜빡이며 기어가더라도 버스 차체가 주저앉을 때까지 사람을 싣지 않는가. 그러니, 그런 분들이 내리라고 할 정도면 사실 더 타는 것은 무리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는 내리지 않았다. 내리기는 커녕, 발을 들이밀더니 바로 고함 시작이다. 

"거기 가운데 들어가요 들어가. 거기 가운데 텅 비었네!" 

텅 비었다는 가운데가 어디를 이야기하는 건지 도통 모르겠는데, 고함은 멈추지 않고 이어진다. 

"아, 거참 문짝에 사람이 치여. 여기 사람이 낀다고! 안으로 들어가요 들어가!"


맨 끝에 버스를 올라탄 사람은 만원이 된 엘리베이터에 마지막으로 올라탄 사람과 비슷한 마음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나 때문에 삐이 울렸어' 하는 마음 말이다. 당신이 내려야 삐 - 소리가 그치고, 소리가 그쳐야 문이 닫기고, 문이 닫겨야 엘리베이터가 올라갈 것인데, 삐이 - 소리를 들으며 "너희들 안으로 좀 들어가" 하고 적반하장 고함을 치다니. 


아무튼 몇 사람이 지렁이처럼 움직인 결과 그 분을 태우긴 태웠다. 버스는 비상등을 켜고 두 정거장을 엉금엉금 기어 신림역에 도착했다. 신림역에서는 통상 앞문과 뒷문을 모조리 연다. 승객 대부분이 거기서 내리기 때문. 앞문쪽에 가까웠던 나는 당연히 지갑을 꺼내들고 앞문을 향해 몸을 돌리는데... 글쎄 사람들이 안 움직였다. 하수구가 막힌 것마냥 미동을 아니했다. 


뭔일인고 하니, 예의 그 아주머니였다. 


앞문의 제일 끝에 올라탄 사람이 내리지 않고 돌처럼 막고 있으니 사람들이 움직일 턱이 없던 것. 출퇴근길 만원 버스를 안타본 사람은 혹여 모를 수도 있지만, 원래 문가에 있는 승객은 내렸다가 타는게 맞다. 잠깐 내려서 문 앞에서 대기하다가 내릴 사람이 다 내린 후에 다시 타면 된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는 도대체 왜 문을 막고 서있었던 걸까. 아주머니 곁으로 한 명씩, 한 명씩 간신히 정체구간을 빠져나가 하차 작전을 벌이고 있었다. 내가 그 옆을 지나면서 보니 이 아주머니는 '안 내리려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쓸려 내려가지 않으려했던 것'이다. 왜? 아주머니의 시선을 보고 알았다. 아주머니가 뚫어지게 바라본 것은 바로, 


빈 의자. 


내리려는 사람들에게 떼밀리지 않고 빈 의자 쪽으로 나아가려니 얼마나 힘들 것인가. 다른 승객들과 계속 몸을 부딪히면서 말이다. 내가 앞문으로 내리려는 무렵 그 아주머니는 우악스런 팔꿈치를 내 배에 쿡 찔러넣었다. 순간 왈칵 화가 치밀었지만, 뭐라 하기 싫어 그냥 걸음을 떼었다. 


그런데 아마도 내 뒤에 내리던 여자분에게도 아주머니가 팔꿈치 - 쿡을 했나보다. "왜 사람을 치고 그래요?" 하는 날카로운 20대 여자의 목소리가 뒤통수에서 들렸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지지 않고 되받아쳤다. 

"아니 여기가 타는 문이지 내리는 문이야!" 

허허. 기똥차다. 그 짧은 순간에 어떻게 저런 순발력 넘치는 고함을 지를 수 있을까. 웃음이 피식 나왔다. 내 배를 팔꿈치 - 쿡 했을 때 뭐라 안하길 다행이라 생각했다. 


오늘 아침 나절에 겪은 일인데 하루가 다 지난 이 시간까지도 기억이 생생한 것을 보니 확실히 분노 역치가 낮았던 하루임이 분명하다. 불쾌한 기억이 철가루처럼 장기기억에 척하니 달라붙어버렸다. 덕분에 분노를 땔감 삼아 글 한 쪽을 끄적이긴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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