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재우 Jul 31. 2015

#12 온 몸이 나이들어 간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다

작은 습관의 축적이 얼마나 사람을 망칠 수 있는가

한 달 쯤 전의 일이다. 


저녁 무렵 PC 앞에 앉아 글을 끄적이고 있는데 잘 익은 도토리 껍질이 쪼개지는 것처럼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입 안에서 무언가가 또르르 굴렀다. '퉷' 하고 뱉어내니 노란 돌덩어리다. 이게 도대체 무언고, 하고 생각하기도 전에 소매치기처럼 기민한 혓바닥이 답을 찾아냈다. 어금니의 커다란 구멍. 충치를 때웠던 금이 빠진게다.


치료를 받은지 겨우 4년 남짓이다. 접착제가 낡아 떨어진 것 같았다. 다음날 해가 뜨는대로 병원에 가서 본드를 착착 발라 붙여넣으면 되지 싶었다. 금조각의 뒷부분이 달의 그림자처럼 까맸다.


치과는 3층이었다. 1층의 할리스 커피를 지나 계단을 올라가는데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고소한 내음이 진동했다. 치료를 받고 나면 크레마가 스폰지같이 두터운 아메리카노와 함께 치즈 케이크라도 주문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무시무시한 의자에 누운 채 나는 은색 포크로 케이크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자르는 상상을 했다.



"캐비티 같은데."


내가 비닐에 담아 온 금조각을 스탠드 아래 비춰보며 간호사 두 명이 이야기를 나눴다. 캐비티? Cavity? 족히 15년은 한 번도 쓴 일 없이 기억 속에 잠자고 있던 스펠링이 갓 갈아낸 칼날처럼 번득였다. Cavity? 충치? 엄습한 불안감에 긴장하고 있던 내게 의사 선생님이 최종 선고를 했다.


"충치가 진행되었네요. 금과 치아 사이에 공간이 있었어요. 거기로 음식물이 들어가서 안쪽은 썩었던 겁니다. 그래서 힘을 못받은 금이 떨어진 거구요."

"그럼 다시 금을 해넣어야 되나요?"

"접착제로 붙여만 달라고 하면, 그럴 수야 있는데. 그 안쪽에선 계속 충치가 진행될겁니다. 그러면 나중에 신경치료를 해야지요. 제대로 치료하려면 당연히 충치먹은 부분을 갈아내고 다시 해넣는게 맞습니다."


나는 잠시 천장을 바라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쉬익쉬익. 시큰시큰.

위잉위잉. 시큰시큰.


치료는 채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틀을 떠놓았으니 며칠 후에 다시 병원을 오면 된다고 했다. 마취가 덜 풀린 잇몸에서 고무 맛이 났다. 
그런데 입안 구석구석을 손톱만한 거울로 훑어보던 의사 선생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와 잇몸이 만나는 부위가 파였네요. 송곳니도 그렇고 어금니도 그렇고. 어이구 꽤 많네. 여러 군데입니다. 칫솔질을 옆으로 하지요?"

나는 그렇다고 했다. EXID의 히트곡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위 아래 위위 아래로는 닦지 않는 나다. 대신 양치는 아주 부지런히 한다. 과자를 간식으로 먹어도 칫솔을 든다.


"그게 더 문제에요. 부지런히 닦으니까 치아를 감싸고 있는 보호막이 더 빨리 떨어져 나간거에요. 

사포로 이를 문지르는 격이란 말입니다. 

여기가 파였다는 건 이미 보호막이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계속 옆으로 닦으면 계속 파일 거에요. 신경이 뿌리 쪽에 있는 건 알지요? 이러다 전부 신경치료를 할 수도 있어요."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 두려웠다. 사람들이 끔찍이도 싫어하는 치과 치료. 그 중에서도 최강이라는 신경치료 아닌가.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물었다.

"칫솔을 미세모로 쓰시고요, 칫솔질 방향은 당장 바꿔야 합니다. 그리고 시간 날 때 다시 한 번 와서 떨어져 나간 부분 해 넣으세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3층 치과에서 내려오는 길에 카페에서 조각 케익을 사는 대신 편의점에 들어갔다. 하나는 집에서 쓰고 하나는 회사에 둘 요량으로 미세모 칫솔을 두개 샀다. 벌써 손상된 치아가 적게 잡아도 예닐곱. 이대로 계속 갔다가는 한꺼번에 시큰시큰 신경치료 지옥에 떨어질 뻔 했던게다. 갈아낸 치아에 바람 줄기가 부는 것처럼 등골이 서늘했다.



칫솔 두 개를 달랑달랑 들고 집으로 오는 길에 고개를 숙이고 생각했다. 

자잘한 습관의 축적이 얼마나 사람을 망칠 수 있는가.

내가 위 아래 위위 아래로 칫솔질을 하지 않은 것은 다만 귀찮았기 때문이었다. 손목을 돌리는 일이 귀찮아서, 익숙하지 않은 궤적으로 칫솔을 움직이면 치약 거품이 질질 흐르는 것 같아서 나는 어릴적부터 칫솔을 치카치카 좌우로 움직였다. 올바른 양치질 방법에 대해 귀가 지루할 정도로 들었지만 결국 습관을 고치지는 않았다. 그렇게 닦는다하여 별 문제는 없었기에 그저 부지런히 닦는 것만을 능사로 여기며 서른 해를 넘게 살아왔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치루어야 할 대가가 발목 언저리까지 다가와 있었다.


이것이 비단 칫솔질만의 일일까.


아직은 젊은 나이다. 5km를 힘들지 않고 내달릴 수 있고, 근골이 부서지도록 죽도를 휘두를 수 있다. 여차하면 하루 정도는 어떻게든 밤을 새울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몸의 여기저기서 노란색 경고등이 들어오는 중이다. 이따금 혈압 수치가 높아질 때도 있고, 지방간이라는 낯선 이름을 듣기도 한다. 야식을 잔뜩한 다음 날이면 점심 때까지 속이 더부룩해 입맛이 없는 것도 전에 없던 일이다. 학생일 때 나는 라면 두 개를 먹고 자도 아침밥을 양푼째 퍼담을 수 있었다.


인스턴트. 과식. 야식. 기름진 것과 찬 것들. 내가 즐기는 습관들이 분명 나의 몸을 갉아 먹고 있을게다. 그리고 마치, 아직은 통증이 없는 치아 뿌리처럼, 조금씩 조금씩 신경치료를 향해 나아가고 있겠지. 그러다 한꺼번에 여러 군데서 지옥불이 타오를 것이 분명하다. 습관을 고치자. 일단 체중부터 줄이자, 그렇게 되뇌면서 나는 터덜터덜 걸어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것이 한 달 전의 일이다.



나는 그 때 그 결심을 지켰어야 했다.


칫솔질 방향은 고쳤으되, 다시 쥔 음식들은 입에 달았다. 야식과 과식과 인스턴트는 여전히 즐거운 벗이었다. 한 달 동안 나의 체중은 변화가 없었다.


어제였다. 멀쩡하던 왼쪽 종아리에서 '툭' 하는 소리가 났다. 


느낌이 이상했다. 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전에 아킬레스 건이 끊어졌던 선배에게 들은 바가 있어서 상황을 직감했다. 나는 무리해서 움직이는 대신 얌전히 주저 앉았다. 그리고 살살 기어서 집에 들어왔다.


비복근 파열. 쉽게 이야기하자면 인대가 끊어진거라고 정형외과 전문의는 진단했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나인데, 게다가 지금까지 13년 동안 검도를 해온 나인데 이유없이 이렇게 끊어지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의사 선생님은 씨익 웃었다.


"그 점이 중요합니다. 그 자리 인대는 없어도 괜찮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살던대로 똑같이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끊어졌다는 것, 그 사실을 인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건 몸이 굳어간다는 뜻입니다. 

슬슬 인대가 경직되기 때문에 일상 생활 중에도 툭 하니 끊어질 수 있는 겁니다."


조깅과 스트레칭을 의식적으로 해야한다고 선생님은 조언했다. 20대 때는 쿨쿨 자다가 눈 뜨자마자 호구를 입고 검도를 나가도 멀쩡하지만, 서른 중반이 넘으면 횡단보도를 걷다가도 인대가 끊어질 수 있다는 말이 서러웠다. 온 몸이 나이들어간다고 쉰 소리로 비명을 질러대는 중이었다. 선생님은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체중을 좀 줄여야 겠네요. 그래야 몸이 괜찮습니다."


OK. 이제는 진짜.



작가의 이전글 #11 출근길, 만원버스, 아주머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