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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Jul 31. 2015

#13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내가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 확인하는 날이 되리라

우리 검도장 사범님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를 읽으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고래에게 검도를 시킬 생각이 없는 것만은 분명해보인다. 

켄 블랜차드(Ken Blanchard)가 이야기한 비결과는 정반대로 우리를 가르치기 때문이다. <칭찬은 고래도...>는 이렇게 말한다.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아무런 피드백을 주지 마라. 철저한 무관심으로 일관하라. 그러나 제대로 해낸다면, 그래서 목표에 단 1cm라도 가까이 다가간다면, 엄청난 칭찬을 폭포처럼 쏟아부어라.


하지만 우리는 마치 '열 두시 삼십 분의 시계바늘처럼' 극단적인 반대 스타일로 검도를 배운다. 


잘하는 날은 아무 피드백이 없고 못하는 날은 무시무시한 꾸중을 각오해야 하는 식이다. 80년대 드라마에 나올법한 전형적인 호랑이 선생님이랄까. 그래서 계고(稽古, 검도장에서 사범님과 1:1을 대련을 통해 배우는 것을 '계고'라 함)를 마친 뒤 아무 지적을 받지 않으면 아주 기분이 좋다. 그날은 꽤 괜찮게 해낸 셈인 게다. 물론, 그렇게 '무사히' 넘어갈 수 있는 날이 일년을 가야 손으로 꼽을만큼 적긴 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느 검도인의 자리에 가건 '우리 사범님은 훌륭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한 가지다. 사범님은 거의 매일 호구를 쓴다. 수많은 관원들과 일일이 칼을 맞댄다는 뜻이다.



관원들이야 자신의 주업이 따로 있고 검도는 피자에 딸려오는 피클같은 취미 생활이니 일주일에 정말 많아봤자 2~3번 운동이다. 즉, 한 시간 검도하고 하루이틀 쉬는 셈. 체력적으로는 거의 무리가 없다. 나올 때마다 호구를 쓰고 캥거루처럼 뛰어다녀도 괜찮은 이유다. 


하지만 도장 지도자의 경우는 다르다. 주 5일 내내 도장에 있어야 하고 하루에도 수련 시간이 몇 타임씩 있다. 물론 그 일로 밥을 버는 것이고 평생 운동을 해온 진짜 운동 선수지만 그래도 피로는 피로. 어떤 동기부여가 있지 않은 한 슬금슬금 '호구 쓰고 싶을 때만' 쓰는 지도자가 되기 쉽다.


사범님은 이미 공인 7단. 승단하는 재미에 운동을 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클래스다. 잘 하는지 못하는 지 매일매일 보아줄 스승도 없다. 직업 선수 경력도 마무리하신지 오래니 메달을 따기 위해 열을 올리지도 않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한 두 시간씩 무거운 호구를 쓰고 숨을 헉헉 대는 이유가 무엇일까.


직접 질문한 적은 없지만(아까도 말했다시피 전형적인 호랑이 선생님), 술자리에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었다. 


"중학교 시절, 처음 죽도를 손에 쥔 날부터 지금까지 검도가 재미있지 않았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사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것은 아니고, 연줄로 높은 자리 하나를 차지한 것도 아니다. 국가대표처럼 번쩍거리는 타이틀도 (내가 알기로는) 없다. 달달한 칭찬이나 은근한 다독임으로 관원들을 구슬르는 기술 역시 (내가 느끼기에는) 부족하다. 그런 분인데도 사범님을 따라 도장을 옮기는 관원이 여러 명이요, 여기 관악산 아래 새 둥지를 틀었다고 달려오는 사람도 여러 명이다.


그렇게 인연의 끈을 이어 스승과 제자로 10년을 훌쩍 넘긴 사람들이 이제 하나둘씩 칼이 무르익고 있다. 우리 도장은 4단만 13명. 그것은 아마도 검도를 진정으로 좋아하는, 거칠지만 묵직한 사범님의 마음이 맺은 열매일게다.


어제였다.


나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온몸 전체가 곤충의 더듬이인양 감각이 날카롭게 살아 있었다. 열 개의 손가락과 열 개의 발가락이 각각 느껴질 정도였다. 오늘은 사범님에게 들어가 칼을 맞대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 확인하는 날이 되리라. 한 뼘씩 그렇게 내 칼은 익어가는 거다.  


15분. 계고 시간은 길었다.

그 시간은 한마디로 이랬다.


내가 기억하는 한, 몇 안되는 최고의 움직임.


나는 사범님의 머리를 두 번 쳐냈다. 제대로. 완전히. 바다를 들어 태산을 뒤덮는 듯한 머리. 내가 어떻게 쳐낸 것인지 복기하고 싶어 수없이 영상을 되감았다. 불행히도 기억은 단편적이었다. '거리가 꽤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 다음 순간 이미 나는 머리를 치고 지나간 뒤였다. 단지 그 이미지 뿐이었다. 그 사이에 내 몸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중간 과정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내게도 이런 날도 있구나. 사범님은 두 번째 머리를 맞으시고는 그대로 계고를 끝냈다.


운동을 마치고 인사를 하는 시간이었다. 사범님을 마주보고 그날 계고를 한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앉았다. 대개는 무시무시한 꾸중, 그리고 아주 가끔씩 뿌듯한 무관심을 듣는 시간. 나는 아무 피드백도 없는 '좋은' 날이 될거라고 생각했다. 순간, 사범님은 마주 앉자 마자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단 한 마디 말씀이었다.


쳐. 너는 치면 이긴다.


나는 범고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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