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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Sep 05. 2015

#110 음식 감수성의 함정

'적게 먹자'가 아니라 '건강하게 먹자'

늘 경험하는 일이지만, 일단 체중에 신경 쓰기로 결심하면 성격이 약간은 예민해진다. 


그렇다고 남들에게 빈번하게 짜증을 부린다거나 화를 낸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원래 바다코끼리처럼 둔하고 느린 대신 갈등이 일어날 소지는 웬간해서 만들지 않는 편이다. 다른 사람에게 인상을 쓰는 일도 드물다. 굼뜬 바다코끼리가 사람들 사이에서  손가락질받지 않고 살아가는 나름의 기술인 것이다. 


내가 예민해진다 함은 음식에 대한 감각이 예민해진다는 뜻이다. '음식 감수성'이라고나 할까. 잔뜩 성이 난 송충이처럼  온몸의 가시를 빠릿빠릿 곧추세워 가공할만한 상상력으로 음식을 떠올린다. 어디서 누가 음식에 대한 작은 힌트라도 '툭'하니 던져주면, 내 머리 속에서 이미 코스로 된 만찬 요리가 후다닥 차려지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교복을 입은 소녀들이 "서울대입구역에 내리면 어쩌고 저쩌고"하고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치자. 음식 감수성이 높아진 나는 그 말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한다. 단번에 서울대 입구역 3번 출구 앞에 차례로 놓인 부침개 포장마차, 체리를 파는 행상,  4000원짜리 떡볶이와 튀김 순대 세트까지 주루룩 펼쳐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내 "떡볶이 국물에 적신 오징어 튀김!" "단단하고 반짝거리는 체리 딱 하나만!" "맥주 캔 하나와 빈대떡 한 장!" 같은 간절한 마음의 소리가 들려온다. 


실로 엄청난 집중력이다. 그 정도의 집중력으로 다른 주제, 이를테면 신규 사업 아이템 같은 것에 매달렸다면 어쩌면 지금쯤 괜찮은 CEO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아마 '이제부터 덜 먹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무의식에 부담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평상시처럼 먹고 마시노라면, 무의식은 "음, 평화로운 시대다." 하면서 그다지 긴장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체중을  감량해야겠어."라고 결심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먹는  것부터 줄여야지." 하는 생각이 들고, 그동안 일정량의 음식을 규칙적으로 꼬박꼬박 상납받아온 우리 몸도 "비상사태로군." 하고 허리띠를 바짝 조인다. 


관성에는 힘이 있다. 눌린 스프링은 반드시 튀어 오른다. 무의식은 관성에 흠뻑 젖은 스프링과 같아 '덜 먹는다'고 인지한 순간, '모자란 것'을 보충하려고 아등바등 이다. 갑작스러운 결핍이 폭발적인 집착을 부르는 이유다. 초인적인 음식 감수성은 그렇게 생겨난다.


한때 크게 유행했던 자기계발 다큐 <시크릿>에서는 말하길, '성공하고 싶다면 문제가 아닌 목표에 집중'하라고 했다. 빚에 허덕이는 사람이라면 '이 빚을 어떻게 없앨까'를 고민하는 대신 '어떻게 하면 경제적인 자유를 얻을까'에 초점을 맞추라는 이야기다. 이 조언을 체중을 감량하고 싶은 사람에게 적용하면 이렇게 된다. 


"살을 빼야 해." 하고 '살'에 집착하는 것은 실수다. 
"건강해져야지." 하고 '건강'에 집중하면,
체중 감량은 그 결과로써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덜 먹어야겠다' 고 결심하여 쓸데없이 음식 감수성이 높아지자 기억 저 편에서 <시크릿>의 조언이 떠올랐다. 


'건강과 늘씬'이라는 목표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인내와 고통'에 의한 보상심리가 줄어들면서 음식에 대한 날카로운 더듬이도 조금은 누그러질 것이다. 잔뜩 움츠린 스프링처럼 '간헐적 폭식'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무의식도 "뭐, 꼭 그럴 필요까지야." 하면서 느긋하게 등을 기댈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일부러라도 되뇌어보려 한다. 


'나는 지금 덜 먹는 게 아니라, 건강하게 먹는 중이다." 



지방 출장을 오는 바람에 체중 측정을 하지 못했다. 

"과식하지 말자.  과식해봤자, 우리가 알던 그 느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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