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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Sep 30. 2015

#116 쥐 손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기는 쉬지 않았다

새벽 다섯시였다. 극심한 통증이 온 것은. 


눈도 제대로 뜨지 않은 상태에서 베게 옆에 놓인 핸드폰 화면부터 켰기 때문에 시간을 기억한다. 깜깜한 방에서 몸을 일으키려면 희미하나마 불빛이 필요해서였다. 나는 책꽂이에 기대 몸을 일으켰다. 마치 오른쪽 종아리 근육다발의 양쪽 끝을 힘센 장정 둘이 맞잡고 이불의 물기를 짜듯이 배배 꼬는 느낌이었다. 


'쥐'였다. 


요즘은 드문 일이긴 했다. 불을 끄고 이불 위에 몸을 뉘이면 알람이 울릴 때까지, 알람을 꺼두는 주말이면 해가 창문을 넘어와 방의 한 가운데 양반다리를 하고 앉는 시간까지 거의 깨는 일 없이 쿨쿨 잘 자곤 했다. 다른 사람들은 잠을 자다가 화장실도 가고 갈증도 나서 종종 깨기도 한다는데 나는 그런 것은 거의 없는 편이다. 잠이란 녀석은 늘 내게 넘쳐서 문제일 뿐 모자란 적도, 흐름이 끊기는 일도 아주 드물다. 물론 과유불급이라 했으니 그것도 자랑할만한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잠자던 중에 다리에 쥐 손님이 찾아오는 것은 아주 오랜 만이었다. 


손님이 오면 나는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 선다. "쥐 손님이 오시면 벌떡 일어나는 게야. 그러면 오냐, 하면서 소란을 피우지 않고 사라지거든." 하는 식의 옛날 이야기를 들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언젠가 기립하여 서자마자 금세 쥐가 풀렸던 적이 있었다. 종아리를 주무르는 사람도, 다리를 쭉 뻗은 채 엄지 발가락을 몸쪽으로 당기는 스트레칭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 식으로 해도 풀리는 사람이 있긴 있겠지. 그저 벌떡 일어나는 것이 쥐 손님을 대하는 나만의 노하우다. 


혼자서 곰곰이 생각해보건대 노하우의 과학적인 메커니즘을 따져보자면 이렇다. 쥐가 나는 것은 일시적으로 근육에 혈액이 잘 돌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쥐난 사람에게 과감한 마사지를 권하는 이유도 근육을 마구 꾹꾹 누르면 자극을 받은 게으른 피들이 혈관을 타고 쭉쭉 들어가는 까닭이다. 그런데 피란 결국 액체다. 액체는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다리에 피가 부족해 쥐가 난다면, 상체에 있는 피를 다리로 내리면 된다. 내가 할 일은 단지 일어서는 것 뿐, 나머지는 중력이 알아서 해준다. 


맞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게는 효과가 있는 방법이다. 그러고보면 "쥐 손님이 오시면 벌떡..." 하는 이야기도 제법 설득력이 있다. 시골의 어르신 중에는 손주들에게 저런 말씀을 해주시는 분도 실제로 있지 않을까? 나는 그저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지만. 



효과만점인 나만의 노하우가 문제가 되었던 것은 군복무를 할 때 였다. 늦은 나이에 군대를 갔고, 막내 때는 청소다 작업이다 뛰어다니는 일이 많으니 다리에 쌓인 피로가 사라질 날이 없었다. 내가 지내던 생활관은 막사의 3층이었는데, 쓰레기를 버리든 창고에서 무엇을 들고 오든 계단을 원숭이처럼 오르내렸다. 두어번만 왕복하면 다리에 힘이 풀려버려 하체 힘을 기르려고 일부러 맨손 스쿼트를 매일 몇 백 개씩 하기도 했다. 원래 막내 때는 드러내놓고 울지도 못하는 법이다. 종일토록 고생한 종아리 근육이 비명을 질러대는 것은 모두 잠든 한밤중. 그것도 주로 새벽 무렵이었다. 깊은 잠에 빠져있다가 갑자기 쥐 손님이 오시곤 했다. 아주 억센 쥐님이었다. 


나는 빼곡하게 붙어 자는 옆사람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몸을 일으켜야 했다. 잠자는 고참을 깨워서 좋을 일은 하나도 없을테니까 말이다. 비좁은 매트리스 위에서, 쥐가 난 다리를 움켜쥐고 일어나자니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무리하게 힘을 주는 바람에 '으아아' 소리가 나올 정도로 고통이 심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겨우 관물대를 붙잡고 일어선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잠에서 깬 누군가가, 아니면 불침번을 도는 병사가 나를 보고 기겁하곤 했다. 


"야, 야 너 뭐하는 거야?" 


새벽 네다섯시. 붉으죽죽한 취침등 아래에서 관물대를 향해 일어선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병사 하나.  자그마하게 들리는 '끄으응' 신음소리. 그 때 나를 보고 놀랐을 몇몇 선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오늘 새벽. 잠시 서 있으니 역시 쥐 손님은 특별한 소동없이 젊잖게 물러가셨다. 아무래도 요 며칠, 빠짐없이 달리기를 했기 때문인 것 같다. 허허. 만일 그렇다면 앞으로도 종종 오신다는 이야기인데. 어떻게 하나. 귀찮은 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달리기는 쉬지 않았다. 오늘 밤에도 또 오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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