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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Sep 30. 2015

#119 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나의 인격을 말해주는 체중계여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물만 먹어도 살쪄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새 모이처럼 밥을 먹는데도, 좀처럼 살이 빠지지 않아." 라고 불평하는 이들도 있다. "저주받은 체질이야." 라고 화내는 분들도 종종 있다. 핑계없는 무덤은 없다지만, 때지 않은 굴뚝에 연기나는 법은 없다. 0kcal인 생수 대신에 과일주스나 우유를 마신다던가, 새 모이같은 식사량으로도 일상을 영위할 수 있을만큼 활동량이 적거나, 기초대사량이 눈을 크게 뜨고 보아야 겨우 보일 정도로 근육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만 먹어도, 새모이만 먹어도 살이 찌는 체질은 단지 어떤 이유들이 합쳐져 그리 되었을 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뷔페를 가보면 안다. 뷔페는 일상에서 꽁꽁 묶어두었던 식탐 귀신들이 마음껏 풀려나는 장소다. 무한하게 먹을 수 있고,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 과일과 아이스크림으로 마무리를 한 후에, 배부른 자들 가운데서 3분 만에 부활하듯 다시 접시를 들 수도 있다. 남들 먹듯이 먹는데도 몸이 더 후덕한 사람의 접시를 보면 분명 다르다. 고기와 회, 튀김과 중국음식. 조금이라도 더 살찌는 음식을 한 번이라도 더 먹는다. 우리의 모든 잘못된 식습관은 뷔페 앞에 무릎꿇려 낱낱이 만천하에 드러나기 마련이다. 


내가 그랬다. 사실 나는 점심 식사 시간에 많이 먹는 편이 아니다. 그저 남들처럼 백반이면 백반, 칼국수면 칼국수. 내 몫을 한 그릇 먹을 뿐이다. 아침도 자주 거르며 살아왔다. '아침에는 해장국에 밥을 말아 한 대접 뚝딱' 하는 이야기는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미션 임파서블이다. 그렇다고 간식을 자주 하느냐. 그렇지도 않다. 나는 책상에 주전부리를 올려두는 스타일이 아니다. 직장인이 되어 겨우 아메리카노에게 자리를 허락한 정도다. 그래서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너는 그렇게 많이 먹는 편도 아닌데, 왜 살이 찌니?" 


우리는 모든 사람을 잠깐 속일 수도 있고, 약간의 사람을 오랫동안 속일 수도 있지만,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는 찰나의 순간도 속일 수 없다. 나는 많이 먹는다. 아침에는 네 발로 기어다니던 입맛이, 점심에는 청년이 되어 두 발로 걷다가, 지팡이 노인으로 꼬부라질 차례인 저녁이 되면, 자연의 순리를 거스른 채 분노한 헐크로 변한다. 폭식과 야식을 많이 했다. 그나마 검도를 꾸준히 했기 때문에 이 정도 몸을 유지했을 뿐. 운동마저 없었다면 이미. 아, 생각하기도 싫다. 


그러므로 지금의 내 몸무게가 나의 인격이며, 나의 투실투실한 배가 나의 쿠크다스처럼 약한 인내력의 증거다. 핑계를 타고 도망친 곳에 길은 없다. 나의 체중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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