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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Sep 30. 2015

#121 밥 먹은 값

찌기는 쉬우나 빠지긴 어렵다는 사실

요즘 나의 생활을 가만히 살펴보면 활동량은 제법 많은 반면, 섭취하는 음식의 양은 상당히 적다. 


하루 종일 먹은 음식을 한꺼번에 올려보면 밥이 한 그릇 반 남짓, 이런 저런 반찬 약간, 과일을 비롯한 간식 조금일 것이다. 예전 같으면 한 끼에 먹어치울 수도 있는 양이다. 물론 지금까지의 내가 다소 야만스럽게 폭식한 경향이 없지 않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최근의 식사량은 보통 사람들에 비해서도 꽤 적은 편이라고 생각된다.  


문제는 이렇게 먹으면서도 눈에 보이는 체중 감량은 기대보다 미미하다는 점이다. 하루 종일 부지런히 일하고, 티셔츠가 흠뻑 젖게 땀을 흘리고, 매일 1만보 전후로 열심히 걷는데, 그렇게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체중계에 올라보면 0.3kg 정도나 빠질까 말까다. 엊그제도 그랬다. 서울의 2호선, 3호선을 한 바퀴 돌고, 거기에 검도까지 하는 바람에 다리가 납덩이처럼 느껴질 정도로 움직였는데 줄어든 몸무게는 고작 몇 백 그램. 우리가 삼겹살 집에서 추가로 시키는 고기 한 접시 만큼도 되지 않았다.  


매일 저녁 1kg 씩 쑥쑥 줄어 주어야 소식하는 재미가 좀 있을텐데, 실로 답답한 노릇이다. 몸이 참 말을 안듣는 것 같다. 찌기는 쉬우나 빼기는 어렵다는 말이 이런 것인가.  


그런데 오늘 그릇에 절반쯤 담긴 하얀 쌀밥을 젓가락 끝으로 조심조심 집어먹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작 요것을 먹고 몇 시간씩 움직일 수 있다니 몸이란 참 효율이 좋은 녀석이구나." 


그렇다. 약간의 쌀과 몇 가닥 되지 않는 나물, 옥수수 기름에 부쳐낸 계란 한 개만 섭취하고도 우리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10km를 달릴 수도 있고, 두세장 짜리 에세이를 써낼 수도 있고, 수 십명 고객의 바코드를 찍을 수도 있다. 얼마되지 않는 끼니를 먹고도 말이다.  


예전에 징키스칸이 이끄는 몽골족들은 말 안장 아래에 말린 고기 약간을 넣고 다니며 세계를 정복했다고 한다. 제대로 된 상차림은 커녕, 우물우물 씹어먹는 육포 조각만 가지고도 대륙을 누비며 전쟁을 했다. 그들의 몸은 얼마나 효율이 좋았던 걸까. 그 사람들은 말 그대로 '밥 먹은 값'은 충실히 하고 살았다.  


만약 그 때의 몽골족들이 나의 식사량을 보면 혹여 이렇게 묻지는 않으려나. 

'그렇게 많은 음식을 먹고, 네가 해낸 일은 무엇인가?' 


문득 줄지 않는 체중에 대한 조급함이 아주 약간 사라졌다. 조금 먹고도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다는 것은, 많이 먹을 필요가 없었다는 뜻이겠지. 적어도 무언가를 먹었다면, 먹은 만큼 가치있는 무엇인가를 만들어내야 옳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문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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