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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Sep 30. 2015

#122 와퍼 하나

사형 집행 직전의 사형수들은 햄버거를 찾는다

예전에 어느 신문 기사에서 본 이야기다. 


미국에서는 사형 집행 직전에 사형수들에게 마지막 만찬을 허용하는데, 그때 사형수들이 주로 고르는 메뉴 중에 하나가 햄버거라고 한다. 규정에 의하면 랍스터나 캥거루 꼬리찜처럼 값비싼 음식 역시 허용되지만, 대부분의 죄수들은 평범한 메뉴를 고른다고. 아무래도 생의 마지막 식사를 택할 때는 평소에 먹던 음식들이 그리워지나보다.  


그로테스크하다고 해야할 지, 슬프다고 해야할 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기사를 본 이후로 햄버거만 보면 손에 수갑을 찬 채로 말없이 두툼한 햄버거를 베어먹는 죄수가 떠오른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눈 앞에 놓인 햄버거가 더 맛있게 느껴진다. 비인간적인 연상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으려 노력할수록 더욱 그렇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자꾸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든다.   


나는 원래부터 햄버거를 상당히 좋아했다. '상하이 치킨 버거'나 '징거 버거'처럼 닭고기가 든 것은 별로. 닭튀김은 눅눅하지 않게 그것 자체로만 먹어야 제맛이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불고기버거 따위도 싫다. 데리버거 역시 내 취향이 아니다. 고추장떡이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착각하게 만드는 오징어버거나 약간은 비릿한 새우버거도 탈락.  


내가 좋아하는 것은 쇠고기 패티가 두툼하게 들어있는 오리지널한 버거다. 프랜차이즈 버거 중에서 합격 도장을 찍을 수 있는 녀석들을 꼽으면 빅맥, 콰트로치즈버거, 와퍼 정도다. 고작 2000원에 불과하지만 빅맥과 비슷한 맛이 나는 맥더블도 봐줄 수 있다. 그 몇 가지 버거만 남기고 세상의 모든 버거가 사라진다 해도 조금도 아쉽지 않을 자신이 있다.  


오늘은 오후 다섯시부터 회의가 있었다. 퇴근 시간을 넘겨 진행될 일정이라 한 분이 간식거리를 사왔다. 감사하게도 버거킹 와퍼. 과도를 들어 먹기 좋도록 와퍼 하나를 4등분으로 나누었다.  


나는 눈 앞의 와퍼를 보며 계산을 했다. 1인당 1개의 와퍼를 준비했으니, 내 몫이 와퍼 4조각인 것은 맞다. 내가 4조각을 우물우물 먹는다고 뭐라고 할 분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사실 그것보다 조금 더 집어먹는다고 눈총을 줄 사람들도 아니었다. 콜라도, 음료수도 마시지 않고 단품 와퍼로 저녁을 때운다면, 한 개쯤 고스란히 먹어도 그다지 많은 양이라 생각되진 않았다. 요컨대 나는 와퍼 하나를 먹을 자격이 있는 몸이었다.  


그러나 요즘의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 무려 지속적인 체중감량 중인 나 아닌가. 남들이 먹듯, 예전의 내가 먹었듯, 4조각의 와퍼를, 그래서 단품 하나의 와퍼를 고스란히 먹는다면, 무엇이 변하였으며 무엇이 달라졌겠는가. 어제 고기집에서 삼겹살도 절제한 나다.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차갑게 식은 와퍼 따위, 충분히 절제할 수 있다. 먹고 남으면 다른 사람을 줄 지언정, 아니 차라리 쓰레기통에 버릴 지언정, 지금까지 그래왔듯 4조각을 꿀꺽 먹어서는 아니된다. 그동안 작아진 나의 위가 와퍼를 향한 나의 손을 절제할 것이다. 나는 결심했다.  


그래. 세 조각, 아니 단 두 조각만이 오늘의 나에게 허락된 와퍼다.  



그러나,

나는 와퍼 다섯 조각을 먹고 말았다.


젠장.

대뇌에서 전달한 명령은 말초신경까지 닿지 않았다.  


손이 가요 손이가 와퍼에게 손이 가요.

아이 손 어른 손 자꾸만 손이 가. 

포장지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수밖에. 

오늘의 잘못은 오늘 털어내는 것이 마지막 보루다.

속죄하는 의미로 대림역에서 내려 신림동 집까지 뛰어왔다.  

아아, 절제란 이다지도 힘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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