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나온 고릴라가 되고 싶지 않다면
나는 달리기에 젬병이었다.
고등학교 때 까지는 그랬다. 그러니까 가장 생명력 넘치는 시기, 아무리 뛰어도 지칠 줄 모르고 '돌멩이를 씹어도 소화시킬 수 있는' 그런 나이에 나는 느려터진 거북이였던 것이다.
학교에서는 해마다 체력장이란 것을 했다. 던지기, 100m 달리기, 제자리 멀리뛰기, 윗몸일으키기, 그리고 오래달리기. 100m 달리기는 나중에 50m로 바뀌었던 기억도 나고, 없던 턱걸이가 새로 추가되었던지 아니면 있던 턱걸이가 사라졌는지 그랬다. 요컨대 체력장이란, 학생들의 기초체력을 측정하는 행사였다.
체력장에서 나는 늘 중간 정도의 점수를 받았다. 매 종목마다 20점 만점으로 평가했던 기억이 나는데, 나의 총점은 대략 50점 전후였던 것이다. 그 점은 아주 확실하다. 그렇다고 내가 적당히 달리고, 적당히 던지고, 적당히 뛸 수 있는 학생이었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는 않았다. 나의 몸은 양극화. 잘하는 것은 잘하고 못하는 것은 아주 못하는 불균형 신체 발달의 전형이었다.
자신있는 것은 대개 상체로 하는 운동이었다.
첫 손에 꼽히는 것은 던지기. 내가 던지는 공은 마치 하늘을 가로지르는 홈런공처럼 쭉쭉 뻗어나갔다. 그래서 하얀 석회가루로 그린 맨 끝 선을 훌쩍 넘기곤 했다. 한 때는 나도 류현진이 될 가능성이 있는 강견强肩이었던 것이다. 윗몸일으키기도 마찬가지. 사춘기 시절에는 복근을 만든답시고 매일 밤 장롱 아래에 발을 넣고 300개씩 윗몸일으키기를 하곤 했다. 그러니 그까짓 체력장 따위야 일도 아니지. 물론 항상 투실투실한 아랫배에 갇혀서 단 한 번도 여섯 조각의 복근이 존재를 드러낸 적은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상체와는 정반대로 하체로 하는 운동은 완전히 엉망이었다. 100m 달리기는 겨우 20초를 넘기지 않았고, 제자리 멀리뛰기는 숫제 살찐 펭귄의 점프 같았다. 오래달리기는 더 심했다. 1km였나 1.6km였나 기억이 오락가락한데, 등수 안에 들어오는 것은 차치하고, 완주 자체가 고역이었다. 운동장을 두 바퀴쯤 돌면 이미 심장은 폭주기관차의 엔진처럼 과열되어 Danger!! 라고 비명을 질러댔다.
상체 운동은 모조리 만점을 받고, 하체 운동은 죄다 0점을 받아, 나의 평균은 대략 중간. 가슴은 크고 다리는 가느다란 고릴라 같은 모습이 고등학교 시절의 나였다.
아 맞다.
배도 나온 고릴라.
사람은 노력하면 바뀐다는 것을, 심지어 운동 능력에서도 분명히 그렇다는 것을 나는 아주 잘 안다. 바로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대학에 간 이후에는 운동에 재미를 붙여서 열심히 했다. 4km쯤 되는 교내 순환도로를 매일 뛰다시피 했고, 주 5일 검도도 나갔다. 배 나온 고릴라였던 10대의 내가 보았다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군대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아직 짬이 안되는 일병 때였다. 상급부대에서 감독관이 내려왔다. 특급전사가 몇 명이나 되는지 조사하러 나왔다고 했다. 종목은 세 개. 윗몸일으키기, 팔굽혀펴기, 3km 달리기. 3km 달리기에 대한 특급전사의 기준은 12분 30초 이내였다. 시속 14km가 넘는 속도로 3km를 달려야 했다.
정식 측정일에 감독관이 보는 앞에서 내가 세운 기록은 12분 23초. 내 평생의 가장 빠른 속도였다. 우리 부대에서 유일한 특급이기도 했다. 나이 스물 아홉에 열 살 가까이 어린 전우들과 함께 뛰어 얻은 '쾌거'였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 짬밥을 먹던 때보다 군기가 빠져서 그러는지 지금은 약간 느려졌지만, 그래도 꾸준히 달리기를 하는 중이다. 달리기 하는 재미를 조금안 알았다고 할 만하다. 혹시 검도장도 없고, 마땅히 할 것도 없는 시골에서라도 살게 되거든, 나는 그저 매일 달리기를 하면 된다. 운동화 끈을 묶고,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로,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것 만으로도 컨디션을 조절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하체가 상체보다 튼튼한 것도 같다.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드디어 '고릴라'의 탈은 벗은 셈이다.
물론 아직 '배'는 나왔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