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집필. 그리고 운동.
누구나 황금같은 주말을 황금으로 만드는 나름의 방법이 있겠지만, 요즘의 나에게는 투썸플레이스의 모닝세트가 그 역할을 해주는 중이다.
학교 안으로 들어가면 관악산의 등산로가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투썸이 있다. 거기가 아마 자연대 건물인가 그럴 것이다. 내가 아직 학교에 등록금을 내고 있을 무렵에 생긴 카페인데, 그 때는 '대학의 상아탑 안에 자본의 물결이 들어오는 것이 옳은 일이냐'를 가지고 제법 찬반 격론도 있었던 기억이 난다. 어차피 있어도 가지 않을 (당시의 내 주머니 사정에 비추어 봐서는 퍽 비싼) 카페였으니까 나는 기본적으로 관심이 없었다. '커피집 따위 학교 안에 들어오거나 말거나' 였던 것이다. 그랬던 투썸이 불과 몇 년 사이에 나의 위크엔드 베스트 플레이스가 되었으니 역시 세상은 모를 일이다.
아무튼 주말의 투썸에서 택할 수 있는 최고의 메뉴는 모닝세트인 것 같다. 오전 10시 이전에만 주문이 가능한데, 루꼴라 샌드위치나 스크램블 에그 샌드위치, 아니면 베이컨에그 어쩌구 저쩌구 샌드위치를 아메리카노 한 잔과 함께 5000원에 판매한다. 학생증이 있다면 20%할인도 해준다던데, 이미 졸업한지 오래인 나에게는 해당사항 없음. 그래도 아메리카노 한 잔이 원래 4000원 정도인 것을 감안할 때, 모닝세트 정도면 제법 괜찮은 구성이다.
모닝세트를 즐기는데 단 하나 어려운 점이 있다면, 의외로 아침 10시까지 입장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주말 아닌가. 주중이나 주말이나 기상시간에 오차가 없는 칸트형 인간이나, 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종달새형 인간이라면 모를까, "와아! 불금이다 불금!" 하며 들뜨기 십상인 나같은 의지박약형 게으름뱅이 잠덩어리 코알라형 인간은 휴일 아침 10시라는 조건을 충족시키기가 꽤나 어렵다. "내일 아침은 투썸 가야지." 하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자야지나 가능하다. 내가 생각해도 한심한 성격이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모닝세트를 주문하게 되면 그만한 보상은 충분하다. 사기로 만든 작은 사각 도마에 갓 구운 샌드위치가 앉아 있다. 먹기 좋게 절반으로 썰어져 기름이 자르르 흐른다. 베이컨 한 장과 계란 약간, 혹은 치즈가 들어있는 심플한 맛이지만 진한 아메리카노와 함께 오물오물 먹으면 부족함없는 주말 아침의 만찬이다.
손바닥만한 샌드위치를 후다닥 먹어치운 후에, 그날의 작업을 시작한다. 배는 적당히 든든하고, 오른 손은 따뜻한 커피를 쥐고 있고, 눈 앞의 통유리에는 관악산이 펼쳐져 있다. 더할나위 없이 행복한 시간. 주말이 기다려진다는 것은 이런 의미다.
재미있는 것은 호기롭게 시작한 아침의 행복감도 고작 몇 시간 짜리라는 사실이다. 두세시간 쯤 노트북을 두드리다 보면 조금씩 혈당치가 떨어진다. 그 때쯤 되면 점심 시간 어금지금이라 카페 안의 손님도 갑자기 늘어난다. 학생들이 주류인 곳이라 번화가의 카페보다는 조금 덜하겠지만, 그래도 사람이 늘어나면 와글와글도 비례하여 증가한다. 생수만 계속 리필하여 부은 탓에 머그 잔 안의 카페인은 흔적만 남은지 오래고, 위장으로 들어간 샌드위치도 제 할 일을 다한 듯 깨끗이 사라졌다. 빈 속으로부터 허기가 새록새록 돋는다. 그 쯤되면 슬슬 두뇌 회전이 느려진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속도가 느려지고, 백스페이스를 눌러대는 숫자가 많아진다. 작업의 질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오늘은 네시간 반 쯤 앉아 있었던 것 같다. 원고의 한 문단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면서, '조각 케익으로 혈당을 보충할까' 하고 잠깐 고민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라며 일어서 버렸다. 책가방을 메고 밖으로 향하니 여름 한 낮의 열기가 와락 덤벼들었다. 후끈했다. 그래도 걸음을 옮기면서 머릿속의 체증은 가라앉는 듯 싶었다.
'그래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하루 다섯 시간만 소설을 쓰는 거였어. '
나는 중얼거렸다. 하루키는 그렇다. 새벽 다섯시쯤 일어나, 가장 왕성한 에너지를 가지고 다섯 시간쯤 소설에 전념한다. 그리고 나면 오전 열 시. 운동화 끈을 묶고 10km쯤 달리기를 하고, 제대로 된 식사를 먹는다. 오후에는 편지에 답을 쓰거나 간단한 에세이류를 집필. 그렇게 서너시간을 또 보내고 나면 수영을 하거나 자전거를 탄다. 저녁 식사 이후에는 읽고 싶은 책을 읽거나, 바에서 맥주를 홀짝이는데, 그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다 잠이 살금살금 기어오면 미련없이 침대로 들어간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다시 똑같은 일상을 시작하는 것이다.
아마 그것이 하루키가 터득한 가장 생산적인 리듬일 것이다. 네다섯 시간의 집필. 운동. 또 서너시간의 가벼운 집필. 운동. 나 역시 비슷한 것 같다. 아무리 행복과 함께 주말 아침을 시작하더라도, 100% 충전한 배터리는 네다섯 시간이면 충전기를 꽂아달라고 경고 메시지를 보낸다. 밥을 먹거나, 운동을 하거나. 그래야 다시 일을 시작할 힘이 생긴다. 가벼운 글이라도 말이다.
아무튼 글을 쓰고, 운동을 하고, 다시 글을 쓰고 운동을 하는 것은 충만한 시간을 보내는 최적의 방법이 아닌가 싶다. 여건이 마땅치 않아 늘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