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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Oct 05. 2015

#129 국수 사리 추가와 스콘 반 조각

단 1kg의 체중도 줄이기 힘든 이유

정체기다. 확실히 그렇다. 


지난 글을 뒤적여보니 처음 감량을 시작하기로 결심한 것이 양력 초하루. 20일 만에 5kg을 감량하는 기염을 토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럭저럭 먹을거리도 챙겨 먹으면서, 틈틈이 맥주도  한두 모금씩 꼴깍꼴깍 하면서 20일에 5kg이면 나쁘지 않은 페이스였다. 혼자서 손가락을 꼽아보았다. '앞으로 열흘이 지나 한 달이면 대략 7kg?' 연예인들처럼 환골탈태는 아닐지라도, 스트레스 없이 7kg이면 제법 끄덕끄덕.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는 수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열흘 째 제자리다. 오늘이 7월의 마지막 날이니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한 달이 된 셈. 그러나 방금 전에 올라 선 체중계는  20일째에 찍었던 무게와 큰 차이가 없다. 명백하게 정체기다. 


예전에 어느 강연에선가 들었던 이야기다. 공부를 할 때 실력은 계단처럼 오른다고 했다. 기울기가 양의 값인 일차함수처럼 시간에 따라 실력이 정비례 관계로 계속 향상되면 얼마나 좋으랴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처음에 열심히 하면 한  계단쯤 '팟' 하고 오르곤, 계속 그 높이를 유지한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실력은 지지부진, 점수는 제자리걸음. 그렇다고 거기서 좌절하면 안 된다. 반성과 수정을 통해 다시 한 번 가열차게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면 또 다시 한  계단쯤 '팟' 하고 오르는 날이 온다. 그리고 또 다시 제자리. 여기서 절망하지 않고 다시 한 번 가열차게 해야만 다시 '팟'이 온다. 


결국, 가열 - 팟 - 제자리 - 가열 - 팟 - 제자리 - 가열...의 무한 반복이 실력의 향상 과정인 셈이다. 



체중감량의 과정 또한 실력의 계단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면, 나는 지금 저 과정 중에서 '제자리'에 있다고 볼 수 있다. 5kg짜리 계단을 하나 올랐으니 다음 계단을 오르려면 '가열'에 접어들어야 할 차례인 것이다. 가열찬 노력의 핵심은 반성과 수정이다. 똑같은 행동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오기를 바라는 것은 미친 짓이나 다름없다고 말한 사람이 아인슈타인이었던가. 열흘 동안 정체기였다면, 변화하지 않는 한 더 이상 줄어들지 않을 지도 모른다.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열흘 동안, 마치 저팔계처럼 벨트를 끌러놓고 마음 편히 푸지게 와구와구 먹은 일은 없다. 글을 쓰지 않은 날도 적어도 4,5km 씩은 꾸준히 달렸고, 회식이라도 했다 치면 다음 날은 적당히  한두 끼쯤 굶기도 했다. 하지만 뭐랄까. 차이가 있었다. 백제 진영으로 말을 타고 달려간 화랑 관창처럼 기상이 굳세다 못해 시퍼렇던 처음 20일과는 약간 달랐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점심에는 부서 회식이 있어 봉평 메밀국수 집을 갔다. 세숫대야처럼 커다란 그릇에 살얼음이 사르르 가득한 것이 한 여름에 제격인 음식이었다. 보통 물막국수나 비빔막국수를 시키는데, 같이 갔던 한 분이 "물막  곱!"이라고 외치시는 게 아닌가. 물막국수 곱빼기란 뜻이다. 곱빼기는 국수 사리가 한 덩어리 더 나온다. 불광동 맛집인 봉평 메밀국수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다 먹고 나서 신발을 신는 순간 배가 푹 꺼진다는 것. 아무래도 국수다 보니 순식간에 소화가 되어버리는 탓에 남자들은 종종 곱빼기를 시키곤 했다. 


분위기를 탄 것일까. 부서비로 먹는 회식이기 때문이었을까. 34도를 넘나드는 폭염에 정신을 살짝 풀어버린 것일까.


"물막 곱이요."


나도 그렇게 주문했다. 그리고 두 덩어리 메밀 국수 사리를 다 먹었다. 두 덩어리 먹는다고 해서 '배가 터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한 덩어리만 먹어도 그럭저럭 허기는 면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곱빼기를 불러 사리 하나를 추가로 뱃속에 욱여넣은 셈이었다. 


저녁 때도 마찬가지였다. 검도를 가기 전에 아우와 함께 빵집을 들렀다. 단팥빵이 맛있기로 유명한 동네 제과점이었다. 고로케 한 개를 사서 아우와 나누어 먹을 요량이었는데, 쟁반에 고로케를 담으면서 충동적으로 크랜베리 스콘까지 하나 집었다. 그리고 아우와 함께 고로케에 스콘을 냠냠냠 나누어 먹었다.  


'스콘이 커다란 놈이냐?' 하고 누가 묻는다면, 뭐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여자 손바닥 만한 삼각형의 스콘이었다. 고로케에 스콘까지 먹었다해서 배가 불렀느냐, 하면 그런 것도 결코 아니다. 검도를 하면서 몸이 무겁다거나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 


'고로케만 먹어도 되었는데, 스콘까지 한 조각 먹어버렸다.' 


메밀 국수 사리 하나도 그랬다. 크랜베리 스콘 한 조각도 그랬다. 그것들을 먹어서 살이 쪘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 '안 먹어도 괜찮은' 음식을 나는 식탐을 이기지 못하고 먹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점이었다. 



밤에 돌아와 체중계 위에 올라보니  지난번 측정 때와 변함이 없었다. 나는 체중계의 숫자를 보며 국수 사리 하나와 크랜베리 스콘 한 조각을 떠올렸다. 그 둘을 먹지 않았다면 200g 정도, 아니 적어도 100g이라도 줄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전일 대비 -0.1kg의 기록을 남길 수 있고, 비록 속도는 느릴지언정 가치 있는 한 걸음을 오늘도 내딛었을 것이다. 하지만 약간의 식탐은 최소한의 전진도 허락하지 않았고, 나는  제자리걸음뿐인 오늘의 성적표를 받아 들어야 했다. 


전진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아주 조금만 참으면 나아갈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국수 사리 하나, 크랜베리 스콘 한 개. 아주 간단한 것을 절제함으로써 한 발자국을 내딛을 수도 있고, 아주 간단한 것에 무너짐으로써 어제보다 한 치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을 수도 있다. 열흘간 막지 못한 것은 이런 자잘한 욕심들이었다. 그것이 내가 5kg에서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문제를 알고, 원인을 알았으니, 해결하는 수밖에. 다시 예전의 모습이 필요하다. 결심이 흐트러지면 빈틈이 생기고, 빈틈이 있으면 변화될 수 없다. 변화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시퍼렇게 긴장해야, 고작 하루 몇 백 그램. 그것들이 열흘이고 한 달이고 쌓여 의미 있는 숫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내일부터 다시 양력 초하루. 다시 시작해야겠다. Round 2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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