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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Oct 05. 2015

#130 노가리 노가리 노가리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노가리를 아십니까

노가리가 먹고 싶었다. 


내가 먹고 싶은 노가리는 동네 구멍가게에서 파는 멸치 따위를 닮은 그런 쪼질쪼질한 노가리가 아니었다. 작년인가, 을지로의 노가리 골목을 갔었다. 골뱅이 골목 건너편에 있는 노가리 골목 말이다. 우선 주먹만 한 양념장과 다진 마늘을 '턱' 하니 얹어주는 골뱅이 무침 한 대접에 하이트 맥주를 병으로 두 개 비우고 나서 '입가심이나 할까' 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슬쩍슬쩍 옮겼던 노가리 골목이었다.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500ml짜리 생맥주야 내가 아는 그 맛일 테고, 노가리야 기껏해야 황태포보다는 못한 말라 비틀어진 생선 아닌가. 대학교 1학년 때 선배들이 우리를 잔디밭으로 '노가리나 까자'고 끌고 갔을 때, 한 번도 맛있는 녀석이 나온 적이 없었다. 쥐포보다 딱딱하고, 오징어보다 심심한, 그저 그런 안주 노가리. 내가 아는 노가리는 그런 녀석이었다. 


그런데 웬걸. 노가리 골목의 노가리는 달랐다. 그곳의 노가리에는 '다른 무엇'이 있었다. 


원래 가려고 했던 OB베어가 일찍 문을 닫은 날이었다. 우리나라의 첫 OB 맥주집이라 해서 약간 기대를 했건만, 어쩔 수 없이 그 다음 집으로 향했다. 이름이 '만선'인가 그랬을 것이다. '뮌헨'과 더불어 노가리 골목의 손님들을 양분하고 있다고 알려진 '만선 호프'였다. 둘이 자리에 앉자, 종업원은 아무  말없이 맥주와 노가리를 내왔다. 맥주 두 잔, 노가리 두 마리. 초등학교 앞 떡볶이 가게에서나 쓸 법한 초록색의 길쭉한 플라스틱 접시에 노릇노릇한 노가리가 누워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노가리보다 제법 큼지막했다. 어른의 손바닥 넓이는 되는 것 같았다. 가스불에 구워 군데군데 탄 자국은 있었지만, 그런 게 거리 음식의 참맛이니까. 칠성급 호텔의 일류 셰프가 와서 일체의 탄 부분 없이 곱디 곱게 쥐포를 구워 내온다면 그건 이미 쥐포가 아니지 않은가. 


노가리의 대가리를 떼어내고 살을 쭈욱 찢는데, 거기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오징어 채처럼 인위적이지 않은, 북어포처럼 넉넉한 것도 아닌, 땅콩처럼 손쉬울 리도 없는 무언가가 노가리에는 있었다. 크지는 않더라도 허접하진 않았고, 작지는 않더라도 가죽만 남을 만큼 앙상한 것은 아니었다. 양으로 따지면 생맥주 한 잔을 마시기에 조금은 부족했고, 맛으로 치자면 맥주를 술술 부를 만큼 기똥찬 것도 아니었지만 노가리는 심심한 듯, 부족한 듯, 있는 듯 없는 듯, 일부러 누추하게 차려입은 겸손한 들러리처럼 맥주를 서포트해주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맛'이라고 딱히 꼬집어 말하기에는 어려운 그런 서민스런 '맛'이 노가리에는 있었다. 


갑자기 나는  그때 그 노가리가 먹고 싶었다. 주말이었다. 



그렇다고 4000원어치 맥주와 노가리를 먹기 위해 내가 을지로까지 갈 만큼 부지런한 성품은 아니었다. 그래서 타협한 것이 '동네에서 가장 큰' 마트를 가기로 했다. '장을 보러 가자'는 것이 명목상 이유였는데, 마트로 향하는 나는 사실 알고 있었다. 당장 장을 보지 않아도 냉장고 안에는 과일이니 두부니 넉넉하게 있다는 사실을. 


전에도 언급한 적 있던 '중앙 식자재 마트'를 향했다. 고시촌 한 가운데 자리 잡은 700평 대 지하 매장이다. 가지 10개에 990원을 받는, 피망 다섯 개를 300원에 팔기도 하는, 그리고 이전에 이야기한 대로, 책상 절반 크기의 판두부를 1500원에 내놓기도 하는 그런 중앙 식자재 마트 말이다. 나는 기대했다. 그리고 내심 확신했다. '식자재 마트'니까 반드시 노가리도 있을 거다. 고시촌의 호프집들은 여기가 아니면 어디서 노가리를 떼어다 팔겠느냔 말이다. 


그래서 식자재 마트를 이 잡듯이 뒤졌다. 깡통 아몬드와 모둠 견과류가 있는 술안주 코너와 말린 오징어와 조미 오징어포가 옷가지처럼 주룩주룩 걸린 벽을 꼼꼼히 살폈다. 건표고버섯과 북어 대가리만 따로 모아놓은 국물 다시 코너도 찾았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노가리는 없었다. 세상에 이 넓은 식자재 마트에 노가리가 하나 없다니. 풍요 속의 빈곤인가, 아니면 이제 노가리 따위는 먹지 않을 만큼 고시생들도 고급화가 되었나. 


나는 근처의 점원에게 물었다. 


"여기는 노가리 없나요?"


점원이 대답했다. 

"거기 황태포 옆에 있을 거예요."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자리를 보았다. 제수용 황태포와 조림용 북어가 장작 쌓아놓듯 대충 쌓여있는 자리였다. 나의 시선은 건어물들 사이를 훑고 있었다. 그런 나의 눈에 상상하고 있던 노가리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그러나 아마도 '노가리'라는 이름을 달고 판매 중일 것이 분명한 생선 꾸러미가 보였다. 한 마리 한 마리의 생선은 마치 칫솔처럼 앙상했다. 작은 입을 한 껏 벌린 채 말라 비틀어진 녀석들이 노란 끈에 열 마리쯤 줄줄이 엮여 있었다. 


'이게 노가리란 말이야?' 


내가 을지로에서 본 노가리는 작은 황태에 가까웠다. 하지만 여기에 있는 노가리는 굵은 젓가락이나 다름없었다. 둥글게 뜬 눈과 비명을 지르며 굳어있는 입이 나의 심정을 대신하고 있었다. 아니야. 이건 노가리가 아니야. 



장을 보고 돌아오는 비닐봉투 안에는 결국 노가리가 들어있지 않았다. 우유니 스파게티 소스니 2000원에 파격 할인하는 새로 나온 소시지니, 쓸데없는 물건들이 잔뜩 있었지만 나의 마음은 허전하기 이를 데 없었다. 파울로 코엘류가 그랬던가. 우리의 삶은 마치 이웃나라에 파견된 특사와 같아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일을 하지 않는다면, 다른 모든 일을 하더라도 무의미한 것이라고. 노가리를 구하지 못한 나는 아무리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더라도 소용이 없었다. 그 노가리를 먹으려면 을지로까지 가야 한단 말인가. 힘없는 발을 하나씩 계단에 내던지며 터덜터덜 집으로 올라왔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냉동실 안에 넣어두었던 캔 맥주를 꺼냈다. ICE POINT라고 쓰여진 은색 하이트 캔이었다. 흔들어보니 사각사각 소리가 들렸다. 살얼음이 살짝 깃들기 시작한, 가장 맛있는 온도였다. 


치이익. 따개를 땄다. 총탄을 발사한 총구처럼 하얀 김이 따개에서 모락모락 솟아올랐다. 


꿀꺽 꿀꺽 꿀꺽. 나는 안주도 없이 맥주를 목구멍 속으로 부었다. 
나는 여기에 없는 노가리를 생각하며, 노가리의 몫까지 맥주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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